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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영 May 04. 2024

일만 시간의 법칙

시간의 힘

내게 9학년은 매년 풀어야 하는 관계 숙제였다. 나는 9학년(중3)을 처음부터 어려워했고 그 경험이 지금까지도 긴장감을 준다.


결혼하고 삶의 근거지를 옮겨오고 첫 근무지가 남중이었다. 그때 중3을 가르쳤고 나는 쌍욕을 먹거나 책상에 무릎을 찍히거나 이상한 그림을 보는 등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5살이 어렸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그 뒤로도 중3은 어려웠다. 그래서 할 수 있다면 중3을 피했고 그러느라 주로 고등학교에서 일했다.


지금 우리 학교 구조에선 9학년을 피할 수 없다. 올해도 고군분투 중이었다. 아이들의 탐색하는 듯한 똘망한 눈이 버거웠다. 그래도 우리 학교 9학년은 일반학교의 중3과는 느낌이 다르다.  어렸을 적부터 전자 미디어를 많이 접하지 않았다는 게 그 차이를 만든다.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핸드폰이 없는 아이들이다. 함께하는 것을 좋아하여 몸으로 하는 단체 게임을 잘한다. 질풍노도를 둥글게 보내는 중이라고 할까. 그렇지만 이것과 상관없이 9학년은 어색하기 마련이다. 내가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서 더 그럴 것이다. 교사지만 자꾸 살피고 눈치를 보게 된다.




올해 9학년 소풍을 따라갔다. 함께 산을 오르며 나는 꽤나 헉헉댔다. 불안했다. 이대로 퍼지면 민폐다. 넘어져서 다치면 민폐다. 적어도 교사가 문제를 일으켜선 안 된다. 한 발 한 발 집중하며 내디뎠다. 잠깐 쉴 만한 곳이 나온다며 지도교사가 그곳에서 물 한 잔 마시자 했다. 너무 반가웠다.


"아, 거기 물이 있어요?"


지도교사도 모를 일이다. 가 본 적이 없으니. 그냥 싸 온 물을 마시자는 취지의 말이었다.


"나 물 다 마셨는데..."


물이 간절한 나는 실망감에 절로 혼잣말을 해 버렸다. 앞에 걷던 A가,


"선생님 거기서 제 물 드세요."

"오, 고마워."


우린 다시 열심히 올라갔고 드디어 중간 쉼터에 도착했다. 원으로 둥그렇게 앉았는데 자리가 섞였다. 저기 떨어져 앉은 A가 다시 날 부른다.


"선생님, 물 드셨어요?"

"아니..."

"여기요~ 드세요."

"고마워. A야."


A물을 받아서 내 텀블러에 조금 따라 마셨다. 끝까지 신경 써 줌이 어른보다 낫다. 너무 고마웠다. 다시, 정상에 올랐고 우리는 환호하며 담소를 나누고 사진을 찍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아이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음식을 덜어 먹었다. 즐거웠다. 그리고 해변으로 가 모래사장에서 햇빛을 쬐고 물과 모래에 발을 담그고 함께 게임을 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해산할 때,


"지금이 다섯 시 십 분, 우린 대략 열 시간을 함께했습니다."


지도교사의 마침 인사말에 그렇지, 오늘 종일 같이 있었구나. 새삼 깨달으며 아이들을 바라보는데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우리 9학년은 인사할 줄 알고 서로 챙길 줄 알며 자기의 일을 해낼 줄 아는 너무도 예쁘고 훌륭한 아이들이었다.




오늘, 하루를 꼬박 쉬었다. 시간이라는 게 이렇다. 내가 무엇을 하든 잘만 흘러간다. 어제는 열 시간을 꼬박 9학년 아이들과 자연을 누렸는데 오늘은 열 시간을 꼬박 집에서 생존 활동만 하였다(물론 이것도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어제 하루 9학년과 친해진 느낌이다. 나만의 착각일 수 있으나 적어도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더 깊이 파악한 것은 사실이다.


무엇이든 시간이 필요하다. 한 번에 가까워질 수 없다. 함께하는 시간이 쌓여야 우리는 친밀해진다. 일도 공부도 글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시간이 들어가야 잘한다 인정받을 실력이 될 것이다.


9학년 포비아에서 이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낯설고 어색한 것은 당연하다. 처음 만났으니까. 함께하는 시간들이 우리를 가깝게 만들어 줄 것이다. 챙길 줄 아는 우리 9학년을 보며 나도 세심하게 챙기는 교사여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참 귀하다. 문득,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들이 어떻게 성장할지가 궁금했다. 시간의 힘을 얻어 매우 잘 성장하기를 바라며 아이들의 성장을 도와야겠다.


함께한 시간들이 나의 마음을 충만하게 채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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