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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영 Apr 20. 2024

사춘기 아들과 공생하기

지금도 그리워질 때가 있겠지

꿍이가 코를 훌쩍인다. 머리가 아프단다. 병원에 가 보라고 했더니 그 정도는 아니란다. 상비약을 먹으며 버텼는데.. 오늘, 학원에 갔다 오더니 바로 코를 풀면서 코가 너무 심하단다.


병원에 가 보라고 하니 또 버틴다. 안 간단다. 머리가 커지니 병원도 못 보내는구나 생각했다. 그러면서 에라이 모르겠다. 진짜 아프면 가겠지. 뒀다.


점심을 먹는데 감기가 심해 보였다.


"꿍이야, 병원을 가야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미안했다. 고작 한다는 말이 아프지 않아야 시험공부를 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첫 시험을 앞두고 꿍이는 많이  예민해져 있다. 중 1 자유학년을 보내고 이제 중 2, 생애 첫 1회 고사를 앞두고 있는 셈이다.


"병원을 가더라도 혼자 갈 거야."

"뭐, 그렇게 해. 근데 지금 병원 문 열었나?"


검색을 해 봤더니 주말이라 동네 병원이 다 진료가 끝났다. 도보로 갈 수 있는 병원이 없었다.


"00 이비인후과 가자. 여기는 오후 네 시까지 하네."

"전철 타고 갈게."

"그냥 같이 가. 비도 오고 힘들어."

"아냐. 혼자  전철 타고 갈래."


슬슬 짜증이 다. 남편은 그냥 혼자 보내라 한다. 차로 가면 10분이면 될 걸, 전철은 역까지 도보로 10분이다. 남편은 전철 타고 찾아가는 방법이나 알려주란다. 애는 코감기로 표정까지 멍해져 있는 상태다. 기침도 하고 잔뜩 피곤한 얼굴로 맛도 잘 모르겠다 한다.


"그 컨디션으로 전철로 가겠다고? 됐어. 태워줄게."

"아냐, 나 혼자 갈 거야."

"고집 그만 부려. 내가 차에서 안 내리면 되잖아. 엄만 주차장에 있을  테니까 타고만 가. 너 혼자 병원 들어가면 되잖아."

"엄마랑 가. 아빠는 그 병원 어딘지도 몰라서 못 가겠다. 아빠랑 같이 갈래? 데려다줄까?"

"아니, 전철 타고 가면 돼."


저...고집텡이. 근데 나는 왜 애를 혼자 못 보내겠지? 꿍이는 방에 들어가 버렸고 남편은 혼자 보내란다.


"그럼, 같이 전철 타고 가서 가는 법이나 알려 줘. 다음에 혼자 가게."

"쟤 전철로 충분히 찾아가. 전에 나랑 전철로 간 적 있어. 못 찾을까 걱정되는 게 아니라 컨디션이 저렇게 엉망인데 더 힘들까 그러지. 무슨 고집이야."

"그렇긴 하지."


아들을 준비시키고 나도 준비했다. 내 고집도 만만치 않다. 네 고집이 어디서 나왔겠니.


꿍이는 결국 엄마랑 같이 가는 걸 승낙? 했다. 우리는 말없이 차를 탔다. 이 자식이...  자연스럽게 뒤에 탄다.


네, 상전님 그러시지요. 속으로 뇌이며 뒀다. 내차를 타는 이 거의 없으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우리 셋이 탈 때 늘 뒤에 탔으니 그런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들을 만한 음악을 틀고 말없이 운전했다. 우리는 정말 아무 말 없이 병원까지 갔다.


"꿍이야, 주민 번호 외워?"

"응. 0000000."

"자, 이 카드 가져가고. 문 열고 들어가면 키오스크 있어. 엄만 ㅇ원장님께 진료받거든? 대기 시간 비슷하면 너도 그 원장님으로 선택해."

"응"


주차를 마치고 카드를 들려서 진짜 아들만 들여보냈다. 나는 기사였다.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정말 사춘기 아들은 저런가? 아니면 내가 창피한가?




어린 시절 꿍이는 엄마밖에 모르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4학년까지만도 엄마랑 노는 게 세상에서 젤 좋다던 아이였다. 친구를 더 좋아할 나인데 너무 엄마만 찾아서 걱정까지 했던(그야말로 사서 걱정한) 나였다.


너무나 작고 너무나 귀여웠던 어린 시절 꿍이가 요즘은 너무 그립다. 언제 이렇게 컸단 말인가.

접때는 그걸 모르고 빨리 크면 좋겠다고 했었다.

네 살까진 오로지 아이만 키웠다. 초1 때도 나는 일을 쉬고 아이를 돌봤다. 그 시절들이 자꾸 생각난다. 참 좋았던 시절이었다.




상념에 빠져 있는데 카드 사용 알림 문자가 왔다. 진료가 끝났구나. 아차차. 병원에 전화를 걸어서,


"꿍이 환자 지금 진료 봤을 텐데 주차 등록 부탁합니다. 1234요."


병원에서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을까. 보호자가 들어오지 않고 차에 있었다니. 아이는 약까지 잘 사서 차로 왔다.


"뭐라셔?"

"목 부었고 코 심하대."

"그래, 병원 잘 왔어. 가자."


다시,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집으로 왔다. 오는 길에 백밀러를 보니 아이가 눈을 감고 있다. 자는 모습이 괜히 짠하고 예쁘다.


주차를 마치고 아이를 깨웠다.


"아드님, 올라가서 약 먹고 한숨 자."


두 숨, 세 숨 자도 괜찮다. 공부가 중한가. 몸이 중하지. 집에 들어와서 약을 챙겨 먹자마자  다시 방으로 직행한 아들이 낮잠을 잤는지 안 잤는지는 모르겠다.


모든 걸 알려하지 않는다. 기사 노릇만 한 게 내심 서운하긴 하지만 뭐 어쩌겠나. 나도 너와 같은 시절이 있었는걸. 그런데 나는 병원 혼자 가는 건 참 싫었었는데 넌 다르구나. 같이 가 주지 않는 엄마가 그렇게 야속했었는데... 꿍이는 나랑 다른 가 보다. 그래, 너의 마음이 무엇이든 존중한다.


아이는 감사하게도 쭉쭉 큰다. 훗날엔 또 이때가 그리울 것이다. 이 만큼이라도 함께해 주는 지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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