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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영 May 11. 2024

나의 유년 시절

<앵무새 죽이기>를 보다 추억하다.

오빠와 동네 친구들과 골목에서 뛰어놀았었더랬다. 다방구, 술래잡기, 숨바꼭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이 우리의 놀이였다.   숨바꼭질을 하다가 자꾸 술래가 돼서 심통이 나서 혼자 집에 들어가 버린 적도 있다. 오빠가 매우 어이없어하며 화를 냈고 나는 울었다.     


학교에 다니기 전에는 오빠랑 온종일 붙어 다녔다. 공터에서 쓰레기를 태우는데 우린 불이 났다고 돌과 모래를 퍼다 날라서 껐고, 아빠 차에서 아빠를 기다리며 산타클로스 선물을 상상했었더랬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방과 후에도 오빠랑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었다.  커서도, 심심하면 오빠 방에 가서 수다를 떨었다. 사춘기 시절, 오빠는 나를 귀찮아했으나 내쫓진 않았었다.     

수업 준비로 다시, <앵무새 죽이기>를 읽다가 울컥했다.

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

나도 스카웃처럼, 스카웃 나이 때는, 오빠가 내 인생의 전부였다. 이 소설이 너무 좋은 이유는 이 남매의 모습이 나의 어린 시절을 닮았기 때문이다. 우애 좋은 남매. 스카웃을 챙기는 젬, 나를 챙겨 주던 오빠.     

같이 놀다가 내가 졸려하거나 재미없어하면 오빠는 꼭 나를 집에 데려다주고 다시 놀러 나갔다. 한 살밖에 차이가 안 났는데, 늘 오빠였다. 생일이 빠르고 머리가 좋았어서였나. 나는 오빠를 어리다고 느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커서도 아빠차를 갖고 나를 데리러 와 주었던 사람. 학원으로, 학교로. 그렇게 집으로 오다 종종 길을 잘못 들어서 동부간선도로나 강변북로를 달리며 졸지에 드라이브를 했었다. 그저 재밌었고 좋았더랬다.    

     

헤어졌기에, 좋은 추억만 남았을 것이다. 좀 더 같이 있었다면 각자의 삶에, 가정에 충실하면서 서운함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경제적 차이로 사이가 멀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헤어짐이 위로가 되진 않는다. 서운함도 서먹함도 일시적이었을 것이리라. 내게 오빠는 기댈 곳이었고 버팀목이었다. 그의 부재는 여전히 힘들고 어렵다.  

   

아직도 나는 종종 운다. 오늘처럼 책을 읽다가도, 가끔은 운전하다가, 어떤 때는 오빠 꿈을 꾸고.  그래도 횟수는 줄었다. 이제는 꿈도 잘 꾸지 않는다. 다시 열린 싸이월드에서 오빠를 발견했다. 그래도 울지 않았다. 울지 않는 내가 낯설었다. 그리움이 짙어지고, 슬픔은 옅어진다.

     

이제는 추억으로, 기억으로 생생하게 살아 있는 나의 오빠. 지금의 내가 되는데 어쩌면 생각보다 더 큰 영향을 줬을 사람. 여전히 나는. 그가 보고 싶다. 그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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