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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영 May 25. 2024

아껴 쓰는 중입니다.

소비 줄이기

갖고 싶은 것은 가져야 했다. 하고 싶은 것은 해야 했고 배우고 싶은 것은 배워야 했다. 주고 싶은 것은 줘야 했고 가고 싶은 곳은 가야 했다. 그게, 나였다.


나는 그렇게 살았다. 눈팅하다가 예쁜 옷은 샀고, 효과 좋아 보이는 화장품을 샀고, 읽고 싶은 책을 샀다. 좋아 보이는 강의는 무조건 신청했다. 힘들어 보이는 지인에겐 선물을 줬다. 고맙거나 생일인 지인에게도 선물을 줬다. 그러다 사놓고 안 입는 옷도, 표지도 못 넘겨 본 책도, 듣지 못한 채 날려본 강의도 수두룩 뻐쩍지근했다. 그러다 빈곤해졌다.


한 번도 여유롭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저런 소비 패턴을 유지하고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아이는 컸고 물가는 치솟았고 이직을 하면서 월급은 줄었다.


삶에 경고등이 켜졌다. 적금을 해지했고 비상금을 털었으며 마음이 불안해졌다. 큰일 났다. 이제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할 수 없게 되었다.


친구들 생일 선물을 끊었고(그래도 우리 우정은 괜찮을 거라 생각하며) 물질로 위로하지 않고(그래도 내 마음이 전해질 거라 생각하며) 읽고 싶은 책을 사지 않는다(도서관에서 욕심 내서 빌려 본다). 철철이 옷을 사지 않고(살이 빠지면 사야지 맘먹으며)  효과 있어 보이는 화장품 말고 꼭 필요한 화장품만 산다. 강의도 들을 수 있는 것만 고민고민 하다가 결국 신청하지 않고 책을 찾아본다(들을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그러다 우울해졌다. 나는 아침도, 저녁도, 가끔은 주말도 없는 삶을 사는데 돈도 없구나. 뭔가 불공평해 보이면서 매우 억울하다. 소비가 늘어서 그렇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분이 좋지 않다. 여전히 하고 싶은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갖고 싶은 것도 주고 싶은 것도 많아서이다.


빌어먹을 자본주의. 어느 시인은 자본주의를 형형색색의 어둠이라고 표현했다. 맞다. 정말이지 형형색색의 어둠이다. 아이의 학원비를 결제할 때마다 나는 빌어먹을 자본주의라고 생각한다. 무상 교육인 이유가 학원을 보내라는 것인가라는 생각까지 했다. 학원을 안 보낼 수 없는 사회 구조다. 예전에는 학원비를 내면서 내 힘으로 아이를 교육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좋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임계치를 넘은 느낌이다.


남편과 나는 담당할 생활비 영역을 나눠서 감당하는 중이다. 내가 아이 교육비를 맡으면서 파이가 커졌다. 남편은 필요하면 말하라 하는데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보조해 줬음 좋겠다고 생각했다. 손을 내밀기가 눈치도 보이고 자존심도 상하고 잔소리가 올 거 같기도 하고 참 어렵다.


오늘도 카드값과 월급을 맞춰 보았다. 아껴 쓴 보람이 있었다. 여전히 씁쓸할 정도로 내 것이 없다 싶지만 그동안 내 것 많게 살았으니 지금은 좀 졸라매 보자. 그러다 보면 나아질 때가 있지 않을까.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없고 갖고 싶은 걸 다 가질 수 없다. 하물며 신도 그러하실 것이다. 자유 의지가 있는 인간이 뜻대로 안 될 터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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