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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영 Jun 01. 2024

선이 선을 부른다

기막힌 타이밍

한 선생님의 초대로 그분이 가꾸시고 운영하시는 화훼농장에 아이들과 갔다.

꽃이 만발한 자연 속에서 우리는 구워주신 고기와 사간 과일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처음 먹어보는 항아리 구이. 어쩜 이리 담백하게 쫄깃한지 너무 맛있었다. 베푸는 걸 좋아하시는 선생님 부부가 참으로 멋지다.

숲 속에서 요가도 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며 공간이 주는 힘을 느꼈다. 자연이 주는 에너지는 실로 크다.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초대해 주신 선생님과 나는 아이들을 전철역까지 바래다 주기로 했다. 나눠서 차에 태우는데 학생 한 명이 그 선생님 차문을 너무도 세게 연다. 쿵.


"야!"


문콕을 당했다. 바로 옆에 있던 내 차에 하얀 페인트가 묻으며 내 차 문 일부분이 정말 콕! 들어갔다. 세상에.


"죄송해요~"


그녀는 정말 안 죄송한 모습이다. 내차를 타려던 학생 A가 차문을 보고 그녀에게 묻는다. 놀란 목소리다.


"어머, 이거 네가 그랬어?"

"..."


그녀는 대답이 없다. 나는 조심했어야지! 만을 말하고 운전석에 앉았다. 속상했다. 낡은 차라 더 아끼는 마음으로 애지중지하는 중이었다.


그래도 오늘 받은 대접에 감사하며 문콕 까이꺼~ 문제 삼지 않고 집으로 왔다.


"나 학생한테 문콕 당했어. 그 애가 옆 최쌤 차 문을 어찌나 세게 열었던지, 내 문짝 콕 찍었어."

"헉. 뭐 어쩌겠어. 그냥 넘어가. 애가 그런 걸. 문콕 정도야 뭐."


남편의 쿨함이 다행이다. 엄밀히 말하면 남편 차다. 남편이 사서 타다 내게 준 거고 여전히 관리와 유지를 남편이 해 준다. 그래, 주인이 괜찮다니 되었다. 오늘 하루의 충만한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야! 문을 그렇게 세게 열면 어떡해? 옆차에 부딪힐라!"


예배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가는데 아들이 성큼성큼

앞서더니 차 문을 쾅 열었나 보다. 남편이 놀라 소리쳤고 나는 그런가 보다 했다. 자기 생일이라고 교회를 가지 않겠다던 아이를 억지로 데리고 왔는데 하필 오늘따라 예배가 늦게 끝났고 아이는 입이 대빨 나왔다. 그 화풀이를 차 문에 한 것이다. 남편의 짧은 잔소리와 함께 우리는 집에 잘 왔다.


평화로운 주일 저녁이다. 나는 아들의 생일 상을 세팅 중이었다. 샐러드를 플레이팅하고 케이크를 꺼내는데  남편 핸드폰이 울린다.


"응? 목사님이 왜 전화를?"


남편이 들어가 통화하는 사이에 식탁 세팅을 마쳤다. 이제 초를 꽂고 불을 붙이면 된다. 아들과 나는 각자 딴짓을 하며 남편이 나오길 기다렸다. 통화가 꽤 길었다.


"꿍이야, 아까 차 문 옆 차랑 부딪혔어?"

"...."

"차 주인이 CCTV 확인하셨대. 도색해 달라는데?"


꿍이는 당황스러운 표정이 역력했고 남편은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아이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우린,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지 못했다.


"어떡해... 그래도 초는 꽂아야지..."


남편이 무슨 노래냐며 화를 냈다. 아이는 되는 일이 없다며 엉엉 울었다.


절묘한 타이밍이다. 왜 하필 이때 연락이 오냐고. 갑자기 요즘 다시 보고 있는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이준하가 드디어 재 취업에 성공하고 첫 출근 날 저녁 온 가족이 축하파티를 해 주기 위해 거대한 상을 차리고 샴페인을 터뜨리려는 찰나, 회사로부터 함께할 수 없다는 통보 전화가 오고 온 가족은 침묵한다. 인생의 타이밍이 가끔은 참 잔인하다.


"네 생일 선물은 그분 차 도색이야. 부분 도색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어. 그 좋은 새 차를 얼룩 남게 하겠니. 전체 도색해 달라 해도 아빠는 보험으로 해 줄 거야. 넌 오늘 일로 배우는 게 있길 바라. 감정 내키는 대로 행동하면 안 돼. 그만 기분 풀고 먹자."


상대 차가 또 너무도 좋은 차였다. 게다가 나온 지 얼마 안 된 거란다. 남편은 교회에서  일어날 일이어서 서운하게 하면 더 안 된다 했다. 보험은 이럴 때를 위해서 든 거라고. 멋지다, 그 큰 마음이.


그래도 아이는 아이였다. 눈물을 그치고 케이크를 먹기 시작하더니 맛있는지 참 잘 먹는다.


"아들, 천천히 먹어. 심호흡 크게 하고. 체할 수 있어."


불안 불안한 마음에 한소리 했다.


셋 다 기분이 좋지 않다. 아이는 아이대로 놀라고 당황스럽고 속상하고 억울하기도 했을 거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 절대 못하는 남편은 기분이 상할 대로 상했을 것이다. 나는, 세상이 좀 서운하다.


"좀 서운해. 내 차는 낡아서 그냥 넘어가도 되나. 어제 문콕 그냥 넘어갔고 지난번에 누가 스크래치 낸 것도 넘어갔고 후진하다 살짝 부딪힌 것도 넘어갔는데 우린 물어줘야 하네."


며칠 전에도 차가 이렇게 되어 있는걸 굳이 누가 그랬는지 찾지 않았다. 이미 도망간 사람을 찾아 누군지 확인하기가 싫었다. 그런데 우리는 고스란히 물어 줘야 한다.




다음 날, 출근 후 오후에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차 연락 있어?]

[그냥 넘어가 주신대.]

[진짜?]

[응. 보험 처리해 준다고 해 줘서 고맙다 하셨대. 그냥 넘어가자셔.]

[우와, 좋다.]


감사했다. 마음이 풀리셨나 보다. 그분도 교회에서 일어난 일이라 양보하시기로 했나 보다. 나는 그분이 누군지도 모른다. 세상에 서운한 마음이 풀렸다. 나도 문콕을 문제 삼지 않길 너무 잘했다.


남편이 아들에게 다음 주 교회에 가면 중간에서 애써 주신 목사님께 고맙습니다 인사드리라고 했다. 웬일로 사춘기 아들이 끄덕인다. 지도 마음이 좋은가 보다.


아직은 따뜻하기도 한 세상이다. 아이가 용서받는 경험을 하게 해 줘서 더 좋다. 나도 선하게 살아야겠다. 그분의 아량이 나의 아량을 한 뼘 넓혔다.


우리 가족은 저녁 상에서 아이의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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