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친구' 포토그래퍼 유정아님의 인터뷰
3년 전 해외 건축 봉사활동에서 만난 친구가 있다. 나는 성격이 급해서 사람을 설득할 때도 주저리주저리 말만 많은 편인데, 3년 전의 나는 정아를 보며 행동으로 신뢰를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이제야 밝히는 너에 대한 나의 첫인상). 그런 정아가 '친구의 친구'를 기록해주기로 했다. 그리고 정아는 이번에도 행동으로 신뢰를 주었다. 카메라를 가지러 직접 창원 집으로 간 것이다. 나는 그런 정아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사람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어서.
Q. 정아야 오랜만에 집에 가니까 어때?
좋아. 오랜만에 오니까 이유 없이 그냥 좋네. 우리 집 만의 냄새가 나. 어제는 필름 카메라 맡기러 갔었어. 창원에 '누비자'라는 공용자전거가 있는데, 그거 타고 혼자서 창원을 즐기면서 -
Q. 오, 필름 카메라? 자주 찍어?
음. 나름? 인터넷으로 필름 카메라를 주문하는데, 주문한 카메라가 오면 한 번에 다 찍기보다 두고두고 찍는 편이야. 1 롤에 6천 원 정도? 한 번에 다 찍기에는 은근히 장수가 많거든. 목에 걸고 다닐 때도 있어.
요즘도 사진관에서 필름 카메라 사진 인화를 하나?
필름 카메라 인화하는 사진관은 잘 없지. 우리 집 근처에는 딱 한 군데가 있어서 겨우 갔다 왔어. 그것도 매일 하는 게 아니라 월수금만 인화작업을 하신다고 하더라고. 요즘은 필름 카메라 맡기는 사람이 잘 없으니까 하루에 작업을 몰아서 하나 봐.
귀찮을 수도 있는데, 굳이 필름 사진을 찍는 이유가 있어?
거창한 이유는 없고, 그냥 그 느낌이 좋아서 찍는 것 같아. DSLR 카메라도 가지고 있는데, 일반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웬만하면 보정을 하는 것 같아. 그렇게 조금이라도 보정을 해서 내가 원하는 색감을 만들어내는데, 필름 카메라는 그 과정을 안 거치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그 자체로 예뻐. 못 고치는 걸 알아서일까?
Q. 필름 사진을 인화했을 때 느낌이 어때?
사실 필름 사진 인화를 맡길 때부터 기대가 돼. 왜냐하면 필름 카메라는 하루에 다 찍어버릴 때가 거의 없으니까, 사진 한 장 한 장마다의 텀이 길어져. 그래서 어쩔 때는 한 롤에 사계절이 다 담기기도 하더라고. 겨울에 인화를 맡기면 내가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던 여름에 찍은 사진이 나오는 거지. 나는 어떤 걸 찍었는지 기억도 못하는데, 사진을 인화할 때면 그때의 기억을 소환시키게 되는 것 같아.
Q. 넌 카메라를 처음 어떻게 접하게 되었어?
내가 중학생일 때, 언니가 올림푸스 디카를 갖고 있었어. 그거 기억 안 나? 싸이월드 한참 하던 시절에 좀 유명한 애들 보면 DSLR목에 걸고 거울 셀카 찍고 그랬잖아. 그때쯤이었던 것 같아. 언니 디카를 빌려서 놀러 갈 때 한 번씩 썼던 것 같네. 수학여행 때도 카메라를 들고 갔었어. 대학교 오기 전까지는 포토샵이나 영상 프로그램도 다룰 줄 잘 몰랐고, 단순히 추억 남기기용으로만 생각했지.
영상으로도 추억을 많이 남겼었나 보네.
그렇지. 나는 나 스스로가 '추억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어떻게 보면 구질구질한 것 일수도 있고(ㅎㅎ) 어렸을 때부터 나는 시간이 지나가는 게 아깝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 너 나랑 봉사활동 같이 갔었잖아. 그때 다들 정말 힘들어했지만 나는 그 순간들이 힘들면서도 시간이 흘러가는 게 아쉬웠어. 커가면서 많이 느끼지 않아? '아 그때 정말 좋았는데'라는 것. 중학생 때는 초등학생 시절을 그리워하고, 고등학생 때는 중학생 시절을 그리워하잖아. 이 순간이 지나면 이 순간을 그리워할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야. 그래서 영상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는 없는데 생생하게 남길 순 있으니까?
과거에 그리운 기억이 많아? 너랑 얘기하면서 지금 생각해봤는데, 나는 솔직히 딱히 떠오르는 게 없네.
나름대로 괜찮게 니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는 거 아닐까? 보통 사람들은 힘들 때 과거를 회상하잖아. '그때 그랬었지. 참 행복했는데'라고. 나는 내 현실이 재미가 없으면 그런 생각에 빠져. 그 생각에 빠지기 시작하면 진짜 헤어 나올 수가 없거든. 그러니까 과거를 추억하되 너무 빠지면 안 돼.
Q. 갑자기 궁금한 건데, 너에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언제로 갈래?
갑자기 오글거리는 질문이네. 음. 나는 행복했던 시간보다는 아쉬웠던 순간으로 가고 싶어. 할아버지가 나한테 자전거 가르쳐줄 때?
몇 살 때야? 초등학교 저학년 때야. 갑자기 왜 생각났냐면, 얼마 전에 할아버지가 갑자기 위독하셔서 첫차를 타고 창원에 내려가고 있었거든. 기차 안에서 할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갑자기 스쳐 지나가더라고. 그런데, 내가 잊고 있었더라. 할아버지가 나한테 처음 자전거를 가르쳐줬다는 걸. 할아버지랑 나랑 함께한 추억이 많겠지만, 잘 생각이 안 났었는데 거슬러 올라가 보니까 유일하게 자전거 가르쳐주신 게 기억나더라. 딱 한 장면만 생각이 나더라고. 할아버지 댁 옆에 초등학교가 있었거든. 주말에 아무도 없는 운동장에서 할아버지가 두 발 자전거 뒤를 잡아주고, 나는 '할아버지 놓지 마. 놓지 마!' 하는 장면이 생각이 나. 할아버지한테 자전거 배우길 잘한 것 같다. 평생 기억하려고 이제.
찡하다. 나는 조카들이랑 우리 아빠를 보면서, 할아버지를 가끔 떠올리거든.
그체. 그렇다고 하더라 조카 있는 사람들. 그때 할아버지랑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는데도, 막상 돌아가시니까 실감이 잘 안 나더라. 계속 떨어져 살아서 그런가?
Q. 그때 네가 나한테 살짝 말해준 다큐멘터리 이야기. 해줄 수 있어?
아, 내가 만들고 싶다고 했던 다큐멘터리? 내 주위에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어른들이 많았어. 아빠가 고모들이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나셔서, 고모들이 나에게는 거의 할머니뻘이었지. 그래서 나는 나이 많은 어른들이랑도 잘 지내고 할머니 할아버지랑도 유대감이 깊었거든. 그런데 언젠가부터 어른들이 번갈아 편찮으시기 시작하면서 죽음이 다가오는 걸 느낄 때가 있었어. 너무 겁이 나더라고.
그때부터 어른들과 함께하는 일상적인 것들을 많이 남겨두어야겠다고 다짐했어. 내가 특히 겁이 났던 것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기억이 안 날까 봐 였어. 그런 생각이 점점 쌓이면서 제대로 다큐멘터리 영상 기획을 구상하게 됐지. 잠시 머물렀다가 떠난 생각들이긴 한데, 언젠가 본격적으로 해볼 예정이야. 내 생각들을 엮어서 한번 해보고 싶어. 우리 할아버지한테는 못 해 드렸지만 노인분들을 대상으로 해보면 좋을 것 같아. 그분들도 우리 같은 시절이 있었을 텐데, 누군가의 할머니 할아버지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할머니 할아버지로서의 이야기 말고, 진짜 그분들 자체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어.
Q. 마지막으로 생각나는 대로 질문해볼게.
유정아에게 카메라란? 잠금 버튼 오른쪽 하단. 순간을 붙잡을 기회를 주는 기계.
유정아에게 과거란? 보내야 하는 것.
유정아의 사진과 영상 많이 좋아해주세요:)
2019.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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