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6세 무렵 영국으로 떠났던 나는 한국에 돌아오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할 때 즈음, 누구나 고민하는 취업이라는 장벽에 봉착했고, 결국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다. 내 평생 단 한번 꿈꾸지 않았던 직장생활. 나는 현실과 타협하며 다시 '돈 주는 학교'로 돌아갈 방법을 생각했다.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았기에 취업시험이니 공채니 이런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이곳저곳 '영어 우대'하는 곳에 서류를 넣었고, 며칠 뒤 신사동에 있는 미국계 광고회사와의 30분 남짓 면접 후, 인턴으로 시작하여 지극히 무미건조하고 정말 별 것 아닌 건방진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1년 후, 별생각 없이 벨기에로 갔다. 귀엽고 작은 나라, 벨기에. 이름 조차 달콤한 이 나라는 내가 영국에 살면서 처음 가본 유럽 대륙에 있는 국가였는데, 여행했던 매 순간이 좋았다. 그래서 정말 별 이유 없이 공부하겠다는 핑계를 삼아 석사를 위해 벨기에로 떠났다. 국가 면적 대비 미슐랭 레스토랑이 가장 많다는 이 미식의 나라에서, 나는 학업보다는 음식과 술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1년간의 석사를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고, 국내 호텔 마케팅 홍보 부서에서 돈을 벌었다. 출퇴근조차 귀찮았던 회사생활.
그나마 나를 자극했던 것은 불시에 찾아온 연애였는데, 그렇게 사랑했던 남자와 안 좋게 헤어진 후 도망치듯 자카르타에 왔다.
자카르타.
2020년 8월, 나는 지금 자카르타에 있는 재외공관에서 연구직으로 일하고 있다. 1도 관심없는 무의미한 일. 내 평생 이런 조직생활 또는 직장생활에서 자아를 실현하기엔 글러먹었다. 사내 정치도 모르겠고, 한국에서 신봉하는 정규직에도 관심이 없다. 이상하게도 나는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준다는 이 소속감(belongingness)에 대해 알수없는 거부감이 있다. 심지어 이 '외교부'란 조직은 아무리 봐도 '우리와 외부인'이라는 그 선이 소름 끼칠 정도로 분명하다. 우리나라 외교의 8할을 오찬과 만찬으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는데, 유쾌하지 않은 이 식사시간에 '나는 어느 나라에 근무했고, 어떤 직책을 맡았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마치 어린애 자랑이라도 하듯. 외교관을 장래희망으로 생각한 적도 없지만, 정말이지 나는 이들을 보며, '그래 절대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만 수차례 되뇌며, 마음을 잡는다. 게다가 그 누구도 이 조직에서 나를 그들의 일원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다시 한번 '돈 주는 학교'에 '대체 가능한 외부인'으로 출퇴근하고 있다.
이 짓을 한지도 어느덧 8년이 다 되어간다.
다시 온전한 나를 찾아서, 먹고 마시는 기쁨이여.
사람들은 저마다 인생에서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고, 이 가치관을 토대로 친구를 사귀고 인생의 동반자를 찾기도 한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란 무엇인가'란 자문에 나는 '소속감이나 사회적 지위보다는 온전히 나 다운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고 가꾸어나가는 것'이라고 자답한다.
어리섞은 어린날. 나의 기준은 항상 남들이었지만, 고독한 해외생활을 15년 넘게 하며 깨달은 것은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아 그 시간에 투자하고 그것을 통해 나를 실현하고 정리하는 시간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는 것이다. 다방면에 관심이 많지만, 특히 먹고 마시는 걸 좋아하기에 이 분야의 조예를 기르고자 한다. 최소한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문자 그대로 '깊은 경지에 이르는 정도'에 다을 수 있게 말이다.
조예를 위한 첫걸음은 바로진토닉(Gin and Tonic).
진토닉은 개인적으로 가장 영국스러운 - Very English - 칵테일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진(Gin)'은 서유럽과 아시아 등지에서 주로 서식하는 쥬니퍼베리(Juniper Berries)라는 향신료를 주원료로 만든 술인데, 쌉싸름하고 떫은 이 향신료에 안젤리카 루트(Angelica Root), 코리안더 시드(Coriander Seeds)등 적게는 6개 많게는 40개의 보타니칼과 허브를 넣어 증류한 술이다. 100퍼센트 비동물성으로 만든 술이기에 엄격한 채식주의자(Vegan)들도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다. 진은 벨기에 북부지방인 플랜더스와 네덜란드 지방에서 주로 증류하던 제네베르(Jenever)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가장 신빙성이 있다.
진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음료인 토닉(tonic water)은 퀴닌(quinine)이라는 키니나무 껍질에 있는 원료를 활용해서 만든 음료인데, 끝 맛이 쓰다. 요즘 시판되는 토닉워터는 퀴닌보다 설탕 함량이 훨씬 높고 청량감을 위한 인공 탄산도 과거에 비해 높다. 진과 토닉의 만남은 과거 대영제국(Imperial Britain)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영국 군인들이 인도에 주둔하고 있었을 당시 말라리아, 티푸스 등 풍토병으로부터 예방하기 위해 퀴닌을 군 식량(ration)으로 보급했고, 이 퀴닌을 진과 함께 섞어마신 것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내가 진토닉을 처음 접했던 것은 2007년이었던 것 같다. 잉글랜드 동부 노리치(Norwich)에서 대학을 다녔는데, 내가 살던 집 근처에 프랭스 바(Frank's Bar)란 곳이 개업했다. 2층 바였고, 초록색과 빨간색이 정말 잘 어우러진, 영화 아멜리아(Amélie)가 연상되는 동화 같은 바였다. 물론 거기에서 일하던 남자들은 하나같이 시크했으며, 검은색 반발 티와 검은색 앞치마를 두른 모습을 보기만 해도 시간 가는 줄 몰랐었다. 이 바에 들어서면 대형 칠판 메뉴판을 볼 수 있는데 그 중간에 Gin Tonic이란 큰 글자와 함께 보기만 해도 청량감이 느껴지는 칵테일 그림이 있었다. 당시엔 그게 정확히 먼지도 모른 채 단지 가격이 3파운드(당시 한화 5800원) 정도였다는 이유로 내가 부담 없이 시도해볼 만한 칵테일이라 시켰다. 첫맛은 좀 강했지만, 이내 단숨이 들이킨 진토닉. 프랭스 바의 진토닉은 고든(Gordon) 진이랑 슈웹(Schweppes) 토닉, 라임 한 조각이었다.
그렇게 지난 후 몇 년 뒤, 나는 인도네시아로 도망치게 했던 남자를 만났는데, 그와 함께 갔던 서울의 한 바에서 핸드릭스(Hendrick's) 베이스의 진토닉을 처음 마셔봤다. 그는 자기 어머니가 스코틀랜드 출신이기에 헨드릭스 진을 자주 마신다고 했다. 이 진은 드라이진(Dry Gin-감미료, 향미료가 최대한 첨가되지 않은 채 증류하는 방법)은 아니지만, 은은하게 퍼지는 로즈워터 향이 혀끝과 입안 전체에 맴돈다. 그리고 화룡점정이란 말은 좀 과하지만, 얇게 썬 오이 슬라이스가 쓰고 단맛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의 마지막은 매우 못난 순간으로 남아있지만, 나는 아직도 그가 알려준 핸드릭스 진토닉을 자주 즐겨 마신다.
누군가를 기억할 수 있는 칵테일. 내 기분은 초연해지지만, 정말 모든 게 끝나버렸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그 날을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생각한다. 나의 어리석음으로 그를 탓하고 증오했지만, 열대지방에 살고 있는 지금, 나는 하루를 마무리할 때 그 때문에 알게 된 핸드릭스 진토닉을 만들어 마시며 안 좋은 그와의 마지막 순간, 그 기억도 내 머릿속 한 켠의 추억으로 보관하기 위해 노력한다. 헨드릭스는 내 홈바(Home bar)의 필수 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