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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월의 앤 Oct 09. 2024

감정의 소용돌이, 그 늪에 빠질 때

'사랑 후에 오는 것들'에 대한 생각

'사랑'이란 단어는 21세기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그렇게 굳게 믿고 있었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이 상대방이었는지, 나의 감정이었는지, 그때 그 타이밍과 환경, 그리고 분위기였는지 알 수 없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사랑했던 순간을 돌이켜보면, 객관적으로 냉철하게 그때 당시를 회상했을 때, 내 감정이 가장 사랑하고 싶었을 때 마음에 드는 상대방이 그때 그 시간에 '등장'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 그렇게 생각한다. 인간이란 모름지기 이기적이라고 믿는 나로서,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충만했을 때 등장한 상대방을 미끼로 내 감정에 충실하자고 마음먹었을 것이라 그렇게 믿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인간 수묵 담채화와 같은 이세영 배우와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청량음료가 연상되는 수채화 같은 사카구치 켄타로 배우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란 드라마의 여러 신을 보게 되었다. 나 같은 '사랑 불신론자'도 감정 주체가 어려웠던 소설 그리고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의 남자 작가인 츠지 히토나리와 한국의 대표 소설가, 나는 '봉순이 언니'의 원작자로 알고 있는 공지영 님이 공저한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란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드라마다.


이 두 작품은 설정과 구조가 비슷하다. 풋풋한 어린 시절 경제적으로는 어렵지만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순수하고 충만한 운명과도 같은 남녀커플, '홍과 준고' 그리고 '아오이와 준세'. 하지만, 처한 상황과 사랑하면 할수록 힘들어지는 감정을 부여잡지 못한 채 서로를 떠나버리는 두 남녀. 그리고 세월이 지나, 우연한 기회에 마주치는 그 둘, 홍과 준고, 그리고 아오이와 준세 모두 벚꽃이 아름답게 휘날리는 봄, 동경에서 사랑을 시작하고 그 사랑의 감정이 깊어갔지만, 여름이 지나 가을이 되면서 서로에게 오해 또는 상처만 남긴 채 여자는 같이 살던 공간을 벗어나고, 남자는 잡지 못한다. 그리고, 서로에게 상처주며 떠났던 가을에 홍과 준고는 서울에서, 아오이와 준세는 이탈리아 밀라노와 피렌체에서 재회한다.


그 어떤 말로도 형언하기 어려운 터질듯한 감정. 그 감정이 여과 없이 터져 나오는 대상이 준고에겐 홍, 준세에겐 아오이 인 것이다. 물론 준세와 준고 모두 이 둘을 조건 없이 좋아하는 보다 적극적인 여인들이 있고, 홍과 아오이에게도 사회적으로는 준세와 준고 보다 훨씬 다정하고 성공한 사내들이 그들의 곁은 말없이, 마치 키다리 아저씨처럼 지켜준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미련하다고 할지 몰라도, 홍과 아오이 모두 그들의 감정 DNA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복잡한 심경의 소유자 준고와 준세를 한시도 잊지 못한 채 꾸역꾸역 괜찮은 척 살아가고 있던 것이었다.


마치 준세와 준고는 츠지 히토나리 본인을 투영한 페르소나인 듯, 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막대한 순수함과 절대적인 감정을 최대한 아끼면서 적극적인 행동보다는 끊임없는 생각으로, 무언과 무형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표현을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여자들의 마음, 무엇인가 확인받아야만 안심이 될 것만 같은 여자들의 그런 마음과 조금 더 뚜렷한 용기를 기대했지만, 그것이 충족되지 못해 결국 '이별'을 선택한 홍과 아오이. 단순히 남녀의 감정이 다르다는 것을 표현한 것 이상의 감정의 소용돌이를 극단적인 슬픔과 고통의 방식으로 소설가들은 이야기를 풀어냈다고, 난 그렇게 해석한다.


그야말로 소설 같고 영화 같은 진부하다 못해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에 빠진 나는 마음속 깊이 묻어 둔 '고통스러운 사랑'이 체질인 나 자신의 어느 한 면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아서 이상한 안도감이 드는 동시에 자꾸만 그들의 애틋하고 소중한 사랑의 시간들을 찾아보게 된다. 수도 없이. '사랑 후에 오는 것들' 그리고 '냉정과 열정사이' 원작 모두 나름의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이 이야기가 아름다움에 극치를 다다르기 위해선 남녀주인공은 서로를 잊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하지 않았을까. 그 생각뿐이다.


변하지 않는 사랑이 아니라, 잊지 못하는 순간과 사람이 있다고. 그래서 그녀를 잊지 못해서 쓴 소설가, 준고. 그리고 아오이를 계속 생각하는 준세는 그의 자존심으로 망친 시간을 회복하려고 그림 복원사가 되었다. 그들은 눈앞에 사랑하는 사람을 보지 못한 고통을 택했지만, 그들을 잊지 못해서, 그리고 잊지 않으려고 기록하는 직업을 택한 것이다.


나는 이 두 작품을 보며, 홍과 아오이보다 준고와 준세의 심리와 감정에 깊은 공감을 했다. 잊지 못하는 사람과 그 순간이 내 인생에 얼마나 많은 슬픔과 고통을 안겨주는지, 하지만 숨어서 하는 표현 이외의 적극적인 표현을 서툴고 쑥스러워서 하지 못했던 나 자신이 참으로 옹졸하기 짝이 없단 생각뿐이다. 하지만, 그 표현을 할 수 있는 시간으로 되돌아가더라도, 성격 특성상 절대 표현하지 않았을 것이다. 표현하는 순간 사랑이라는 나의 진심과 순수한 그 열정이 멀리 날아가는 새들의 가벼운 깃털처럼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불안감이 마음 전체를 지배하고 있어서다. 이 것도 피상적인 이유지만, 왠지 사랑한다고 말하면 내 감정이 모두 물거품처럼 사라져서, 결국 내가 사랑하는 그 상대방을 잃을 것만 같단 불안감이 온 세포를 공격한다.


어찌 되었든, 오랜만에 먼지로 가득 덮인 내 감정이 조금 수면으로 떠오를 수 있게 해 준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누군가를 미치도록 사랑했던 그 감정들이 새록새록 올라오는 것을 보면, 나 역시 부정하고 싶어도 지독한 로맨티시스트로 세상에 태어난 것 같다. 사랑하는 감정에 조건없이 진심을 다할 수 있는 그런 체질이라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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