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대신 세울 수 있는 작은 신앙 공동체들

탈교회적 신앙의 관계 맺기

by Francis Lee

12장. 교회 대신 가질 수 있는 작은 신앙 공동체들


11장에서 보았듯, 탈교회 이후의 신앙은 필연적으로 단독자의 시간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람들은 다시 질문하게 된다.


“이 믿음을 누구와 나눌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결코 약함의 증거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근원적으로 관계적 존재라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자연스러운 요청이다. 신앙은 사적인 내면의 문제이면서도, 동시에 삶의 방향과 선택을 형성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이 힘은 혼자서만 감당하기에는 무겁다.


사실 교회는 오랫동안, 이 욕구에 대한 유일한 답처럼 기능해 왔다. 함께 예배하고, 함께 배우고, 함께 봉사하는 구조를 만들고 신자들이 그에 적응하도록 해온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함께함’ 자체가 아니라, 그 함께함이 특정 제도에만 종속되도록 설계되었다는 점이다. 교회를 떠난 많은 이들이 공동체 자체를 포기하는 이유는, 사실 공동체가 싫어서가 아니라 교회라는 형태의 공동체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신앙 공동체라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이 12장은 그 오해를 해체하는 데서 출발한다. 사실 신앙 공동체는 교회 이전에도 존재했고, 교회 이후에도 가능하다. 다만 그 형태와 작동 방식은 전혀 달라야 한다.


작은 신앙 공동체를 말하기 전에, 왜 기존 교회 구조가 반복적으로 실패하는지를 먼저 짚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탈교회 신자들은 무의식적으로 교회의 축소판을 재현하게 된다.


첫째, 권위의 집중이다. 규모가 작아도 반드시 누군가는 가르치고, 누군가는 듣는 구조가 빠르게 고착된다. 직함이 없어도 영향력은 생기고, 그 영향력은 곧 해석의 독점으로 이어진다.


둘째, 성장 강박이다. 모든 교회는 성장해야 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시작한다. 숫자가 늘지 않으면 실패로 간주된다. 더 나아가 성장하지 못하는 것이 신앙의 부족한 증거라는 논리가 교회 안에 널리 퍼져있다. 이 논리는 소그룹에서도 그대로 작동해, 어느 순간 “더 많은 사람을 초대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변질된다.


셋째, 정체성의 동질화다. 신앙의 깊이나 질문의 방향이 조금만 달라도 ‘불편한 사람’이 된다. 결국 다양성은 줄어들고, 안전하지만 얕은 관계만 남는다. 이렇게 획일화된 신앙의 개념이 퍼진 공동체는 예수가 바라는 생명의 공동체가 아니다.


권위 집중, 성장 강박, 정체성 동질화라는 세 가지 요소가 제거되지 않는 한, 어떤 공동체도 교회의 대안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교회 대신 가질 수 있는 공동체는 무엇이 달라야 하는가. 여기에는 몇 가지 최소 조건이 있다.


첫째, 신앙의 수준이 아니라 삶의 정직함을 기준으로 만난다. 이 공동체는 “얼마나 성경을 잘 아는가?”나 “얼마나 오래 믿었는가?”를 묻지 않는다. 대신 “지금 무엇이 가장 흔들리는가?”를 묻는다.


둘째, 정기성은 있지만 의무성은 없다. 만남은 반복되지만, 참석은 평가되지 않는다. 사라졌다가 돌아와도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관계는 관리 대상이 아니라 선택의 결과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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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오래 살면서 종교와 여행과 문화 탐방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 지식으로 농사를 짓게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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