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가 '라때'만 외치는 것은 아니다...
동양에서 60 갑자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60년이면 다 살았다는 것이다. 물론 과학과 의학의 발전으로 평균 수명은 늘었지만 여전히 인간은 60년 정도 살면 ‘다 살았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몸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마를 더 살든 한번 돌아보는 시점이 60인 것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돌아보니 몇 가지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지혜는 나이와 더불어 오는 것이 자연의 이치 아니던가?
첫째, 인생 별 것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뭔가 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젊어서도 뭔가 이룩할 수 있겠지 하면서 열심히 노력한다. 그러다가 30대 이후 어느 정도 자신의 능력과 한계가 서서히 드러나게 되면 모험보다는 안주를 모색하게 된다. 그렇게 직장에 다니든 자영업을 하든 30여 년 지나다 보면 60이 된다. 그리고 깨닫는다. 인생 별 것 없다. 이러려고 그렇게 고생했나?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노력을 해서 엄청난 업적을 쌓아도 적당히 생존을 유지해도 결국 죽음은 똑 같이 찾아온다. 그러니 출세나 영달에 몸 바칠 것이 아니라 주변을 둘러보며 나눌 생각을 좀 더 해야 한다. 별 것 없는 인생에서 선행만큼 좋은 것은 없다.
그런데 이런 단순한 진리가 50대까지만 해도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아직도 할 일이 많고 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50대가 되면 막연히 사회에서 퇴출되는 일에 대한 강박관념이 심해져서 오히려 반발심리로 더 노력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운칠기삼의 원리는 연령대를 가리지 않는다. 노력만으로 성공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노력을 하지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노력하면 뭔가 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만으로는 성공을 할 수 없다. 어차피 저승으로 가는 길에 내가 이룩한 것 가운데 단 하나도 짊어지고 갈 수가 없다. 그냥 맨몸으로 온 대로 맨몸으로 가는 것이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이를 마음이 저리도록 깨닫기 위해서는 나이가 들어야만 한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이다. 그래서 그날이 오기 전에 서둘러 남에게 나의 것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인간은 근원적으로 이기주의자라서 내일 죽는 것을 알아도 오늘 재물을 지상에 쌓는 버릇을 고치지 못한다. 뭔가 이 세상에서 더 이루어야만 할 것 같아서 이다. 그러나 살아보면 안다. 인생 별거 없다. 고관대작도, 아이돌도, 유명 가수도 다 이 세상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떠나야만 한다. 죽음 앞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러니 너무 안달복달할 일 아니다.
둘째, 인생이 별로 길지 않다는 것이다. 정말로 시간이 쏜살 같이 지나간다. 하루 이틀은 감이 잡히는 데 1년 단위로 10년 단위로 지나는 시간은 전혀 느낌이 없이 지나가 버린다. 그러다가 어느 사이 60살이 된다. 그래서 별 생각이 다 든다. 지구가 물리적으로 자전과 공전 속도가 빨라진 것이라는 망상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 세월이 빠른 것이다. 10대일 때는 60살이 영원히 멀리 떨어져 있어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코앞에 있다. 그러니 어른들 말씀대로 일촌광음 불가경(一寸光陰不可輕)이다. 그럼에도 어쩌랴. 거의 대부분의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은 오늘 하루도 게임, 놀이, 유흥, 모임으로 하루를 보내는 것을. 60이 되기 전에는 시간이 무한히 있을 것 같아 그런다.
특히 40대부터 시간이 매우 빨리 흘러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물론 과학자들은 인간의 인지력이 줄어들면서 시간의 흐름에 둔감해져서 그렇다고 이야기한다. 사실 이는 인간의 노쇠와 시간의 관계를 잘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과학적으로 시간이 흐르는 현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몸이 노화되어 육체적인 변화가 일어날 뿐이다. 그 노화를 보면서 인간은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생각보다 빨리 노화한다는 말이 되겠다. 그런데 육체는 빨리 노화하는 데 비하여 정신은 그러지 못하다. 형체가 없기에 판단의 대상이 되기 힘들다. 그래서 몸은 늙었지만 마음은 청춘인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육체와 정신의 부조화가 심해지면 문제가 커진다. 이미 늙었는데 '나는 아직 청춘이야!' 이런 소리나 하는 꼰대가 되어 주변에 폐를 끼치게 된다. 이런 부조화가 매우 심각한 수준에 이르면 정신병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이른바 '나잇값'을 못하는 사달이 벌어지는 것이다. 60이면 60의 육신에 담기는 영혼과 정신이 있는 법인데 아직도 자신이 20대의 육신을 지니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런 못난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40대부터 마음을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 한다. 한창 일할 나이에 무엇을 내려놓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내려놓기 습관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 20년은 걸린다. 그러니 미리 시작하는 것이 좋다. 그러지 않으면 욕심 사납고 자기 고집만 피우는 꼰대가 되기 십상이니 말이다.
셋째, 평생 할 만할 일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평생직장도 60이면 나가야 하고, 자영업도 60이 넘으면 체력적으로 힘들다. 그러나 21세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무항산(無恒産)이면 인간 대접도 못 받는다. 그리고 돈도 돈이지만 할 만한 일을 찾지 못하면 잡기에 빠지게 되고 그러면 인생만이 아니라 인성도 망가지게 된다. 그래서 일찍부터 어느 한 가지라도 탁월하게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인간의 본능인 성취감을 충족하는 데에 이만한 방도가 없다. 일은 삶의 보람을 느끼도록 하는 데 가장 좋은 수단이 된다. 그것도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것인 데다가 경제적 보상까지 따른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가 아닐 수 없다. 글쓰기, 사진 찍기, 목공예, 도자기 공예.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일이라는 것이 단순히 금전적 보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젊을 때 일을 열심히 해서 돈을 빨리 모아 40대에 이른바 'FIRE족', 곧 경제적 안정을 이루어 일찍 은퇴하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에는 일이 곧 돈이다. 일정 수준의 돈이 모이면 그때부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Yolo족이 된다는 것인데. 세상 일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 남의 돈을 먹는 일은 매우 힘들다. 그래서 시간을 정해서 돈을 모을 생각으로 일을 하다 보면 빠른 시간 안에 burn-out 되는 경우가 많다. 40대부터 놀기보다는 죽는 날까지 일을 하겠다는 마음자세를 가져야 삶이 좀 더 편하다. 그리고 80까지 번 돈을 후손이든 이웃이든 물려주고 가는 삶도 나름 보람이 있다. '내 돈 내산'으로 플렉스 하는 삶은 어차피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소비문화에 세뇌된 삶이기에 보람이 없다. 그런데 이 사실도 60이 되어야 깨닫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이니 어쩌랴.
넷째, 오랫동안 마음을 둘 수 있는 상대를 찾아야 한다. 아내든, 자식이든, 친구든, 하다못해 반려동물이라도 마음을 둘 수 있는 상대가 있어야 한다. 인간의 사회적 동물이기에 정을 주고받지 않으면 병이 나게 되어 있다. 이러한 본능을 안정적으로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믿을만한 대상이 필요하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을 하면서 알게 되는 것은 그런 상대를 만나는 것도 타고난 복이라는 사실이다. 단 한 명의 배우자, 단 한 명의 친구, 단 한 명의 자녀라도 그런 '영혼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찾으려면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그런 영혼에 위로가 되는 사람을 찾고 있지 정작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될 생각을 안 하기에 '영혼의 동반자'를 찾는 것이 그리 어려운 것이다. 행복의 파랑새가 밖이 아니라 집 안에 있었듯이 그런 동반자는 멀리 가서 찾을 것이 없이 바로 내 안에서 먼저 찾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면 마치 소리굽쇠가 공명을 일으키듯이 나와 주파수가 맞는 사람이 주변에 나타나게 된다. 이를 어려운 말로 sympathy라고 한다. 그리스어로 같음을 의미하는 syn과 마음을 의미하는 pathos가 결합된 단어다. 한국말로 同情으로 정확히 번역된다. 그런데 흔히 이 동정을 불쌍한 사람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으로 이해하는 데 정확한 해석이 아니다. 동정은 문자 그대로 마음이 서로 맞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사람을 만나려면 내가 원하는 사람의 마음을 내가 먼저 품으면 된다. 그러면 낚시 미끼를 보고 물고기가 쫓아오듯 나의 영혼의 동반자가 나를 찾아오게 되어 있다. 그런데 젊을 때는 내 마음 다스리는 일을 게을리하고 먼저 밖에 뛰어 나가 온 사방을 돌아다니며 그런 사람을 찾는데 에너지를 소비한다. 그러면 더욱 만나기 힘든데 말이다. 이 또한 나이가 들어야 알게 되는 일이다.
다섯째, 베풀어야 한다.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을 받아야 하나를 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니 받고 싶으면 주어야 한다. 그런데 하나가 가면 하나가 오는 것이 인생 법칙이 아니다. 주는 사람은 다 기억하지만 받는 사람은 기억을 잘 못한다. 그래서 10번 정도 받아야 받았다는 기억을 하게 된다. 그러니 기왕 줄 맘이 있다면 열심히 주어야 한다. 그리고 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주어야 한다. 그러면 받게 된다. 처음부터 받을 생각으로 주면 마음만 상한다. 상대방이 기억을 못 하니 말이다.
사실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은 준 것은 잘 기억하고 받은 것은 쉽게 잊는다. 인간의 본성인 이기주의 때문이다. 그리고 또 많은 사람은 주었으니 받아야 한다는 계산을 하면서 내가 준 것을 과장해서 생각하게 된다. 내가 그것을 준 과정을 세세히 다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이 내게 무언가 주었을 때도 그와 마찬가지의 과정이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모른다. 못 보았으니 말이다. 모든 것을 바라보는 주체인 나와 객체인 타인 사이의 관계에서 나의 의식은 내게 명료하지만 타인의 의식은 알 길이 없기에 다른 사람의 마음을 모른다. 그래서 베풀 때 마음을 내려놓고 마음껏 베풀어야 한다. 그러면 언젠가 그 보답이 온다. 그런데 내가 생각한 때와 장소에 보답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잊고 있으면 오히려 그때가 더 빨리 온다.
여섯째, 집착을 할 필요가 없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다 마찬가지이다. 물론 소중한 인연을 맺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인연이 되면 만나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되 결국 인연이 안 되어 나를 떠난다면 매달리지 말라는 것이다. 억지를 부리면 사달이 나고 맘을 상하게 된다. 미신으로 치부될 수도 있겠으나 살아보니 인연이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수준의 전생의 인연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이나 물건이 나와 관계를 맺는 데에는 나의 의지만으로 안 되는 변수들이 많이 작용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내가 간절히 원한다고 다 얻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젊을 때에는 내가 노력만 하면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환상에 젖게 된다. 그러나 안 되는 것은 백번을 찍어도 안 된다. 물론 열 번 찍어 넘어오는 것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내 인연이 아니면 나를 떠나게 되어 있다. 그러니 억지를 부리지 말고 순리대로 사람과 물건을 대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 또한 나이가 들어야 알게 된다. 인간은 시행착오를 통하여 쌓은 지식으로 지혜를 다듬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과정이 순조롭지 못하면 나이만 들었을 뿐 삶의 지혜를 전혀 깨닫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 일단 집착을 버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이 또한 40대부터 하는 것이 좋다. 집착이 없으면 이 세상에서 성공도 출세도 돈벌이도 못하고 머리 깎고 산에 들어가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핡 수도 있다. 그러나 지혜로운 집착, 곧 이른바 '무심한 관심'으로 노력하는 것이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을 얻는 첩경이라는 사실을 일찍 깨달을수록 삶이 행복해질 것이다.
일곱째, 장기 계획을 세울 필요가 없다. 흔히 인생이 짧으니 계획을 잘 세워 시간을 쪼개어 써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10년 이상의 장기 계획은 매우 무의미하다. 세상은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변한다. 특히 20세기 이후에는 예측 불가능성이 시대정신이 된 지 오래되었다. 그래서 길어야 3년 정도의 계획을 세워 실행하고 그것도 상황에 따라 언제든 융통성 있게 바꿀 마음 자세가 되어야 한다. 이는 학업이든, 취업이든, 하다 못해 부동산 투기도 마찬가지다. 치고 빠지는 재주가 있으면 좋지만 그것이 힘드니 너무 가볍지도 너무 늘어지지도 않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
특히 ICT 산업의 발달로 사회경제적 변화가 급격히 이루어지는 21세기에 장기 계획은 무리가 아니라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정밀한 계획과 이론을 수립해도 현실에서 실천하는 데에는 반드시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니 어느 정도 얼개가 마련되면 바로 시행착오의 과정에 돌입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다. 계획에 몰두하다 보면 계획 자체의 완성도에 몰두하는 것인 인간의 본성이다. 이것이 습관이 가져오는 병폐이다. 계획만 세우는 습관에 빠지면 정작 계획이 실천을 위한 준비라는 사실을 잊고 계획 수립에 '중독'되어 버린다.
여덟째, 여행을 많이 해야 한다. 단순히 유흥을 위한 여행이 아니라 보고 배우기 위한 것이다. 한 곳에만 너무 오래 있다 보면 사고가 경직되어 사소한 것에 집착하기 쉽다. 이런 잘못을 범하지 않으려면 유연한 사고를 길러야 하는데 여행만큼 좋은 것이 없다. 여행을 하여 다른 사람, 다른 문화, 다른 환경을 많이 접하다 보면 다양성을 존중하게 되며 다른 사람의 다른 생각도 편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요즘처럼 코로나로 여행이 어려울 때에는 다른 사람의 여행기를 읽어도 좋을 것이다. 간접적으로라도 ‘나’ 아닌 ‘타인’의 삶을 보고 배우는 것은 도움이 된다.
인간의 사유는 방안에서도 우주를 넘나들며 안드로메다의 은하계들도 담을 수 있다. 그리고 우주의 시작과 끝에 대한 숙고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인간은 정신과 영혼을 육체에 담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존재이다. 그리고 그 육체는 반드시 경험을 통하여 지식을 쌓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지혜를 얻게 된다. 그런데 인간의 뇌는 새로운 자극이 없으면 금방 타성에 빠져 지식의 호기심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된다. 몸이 타성에 젖으면 정신도 늘어지게 된다. 늘어진 정신에는 지성과 지혜가 자리 잡을 수가 없게 된다. 그러니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새로운 체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홉째, 근검절약은 여전히 유효하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생존과 직결된다. 복지사회가 완비되면 노후 걱정을 안 해도 되겠지만 유럽의 많은 복지국가들이 1990년 대 이후 신자유주의로 경도되는 경향을 많이 보이고 있다. 복지의 미래는 결코 밝지가 않다. 노동력은 60을 고비로 급격히 주는데 평균 수명만 살아도 20년 이상을 더 생존해야 한다. 특별한 수입원이 없는 경우 자신의 그동안 모은 것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모아야 한다.
사실 요즘 같이 초저금리 시대에 은행에 돈을 묻어두는 것은 물가 상승을 계산해 볼 때 마이너스가 된다. 그러니 투자를 해야 한다.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투자와 투기는 종잇장 한 장 차이라 쉽게 구분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60년을 살아보니 투자는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주식과 부동산 그리고 최근 유행하는 크립토 코인에도 관심을 두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가는 반드시 오른다. 그래서 실물에 투자하는 습관을 어릴 때부터 들여야 한다. 일찍 시작할수록 좋다. 그러나 FIRE족이 목표인 사람처럼 단기간에 평생 쓸 돈을 모으겠다고 작정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80까지 투자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해야 한다.
열째, 희망을 놓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종교적인 믿음의 대상이든 아니면 철학적 신념에서 나온 것이든 관계없다. 나의 삶이 내일 내년 10년 후에는 지금보다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 어차피 별 것이 없는 삶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가지고 살아볼 만한 것이 인생이다. 이와 연관하여 Albert Camus가 Le Mythe de Sisyphe에서 주장하는 것을 맘에 새겨볼 만한다. 어차피 세상은 부조리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곳이다. 그래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매일 든다. 그러나 그럴수록 언덕 위에서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바라보며 크게 웃고는 다시 그 바위를 언덕 위로 굴려 올리려고 당당히 내려가는 시지프스처럼 살아볼 일이다. 인생 별 것 없다. 그러니 인생의 의미는 남이 아닌 바로 내가 주는 것이다. 그러면 그 인생은 내 인생이 된다.
물론 희망은 그리스 전설의 판도라 상자가 말해주는 대로 인간에게 이른바 '희망 고문'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품어야 한다. 기독교 전통에서 희망이란 앞이 전혀 안 보이는 캄캄한 밤에 길을 나서며 어딘가에 따스한 불 빛이 새어 나오는 아늑한 집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한 걸음씩 앞으로 걸어가면서 품는 마음이다. 뭔가 보이면 이미 그것은 희망이 아니라 현실이다. 희망은 희망이 없고 가망이 없어도 가지는 인간의 마음의 소중한 등불이다. 젊을 때는 이런 것이 어치피 가망 없는 말기 환자에게 헛된 기대를 하도록 만드는 고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60살이 되어보니 희망을 가지는 것이 미리 절망하는 것보다 낫다. 그러니 희망은 품어봄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