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윤석열의 아내인 김건희의 논문과 관련된 소란이 정점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소셜 미디어에서는 MZ세대의 선택적 분노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글이 넘치고 있다. 왜 조민의 ‘겨우’ 고딩 표창장 정도에 대해서는 나라 전체가 들썩거릴 정도로 그리 난리를 피우더니 그보다 급이 훨씬 다른 박사학위 논문에 대해서는 조용하냐는 것이다. 특히 SKY대학교의 학생들이 집단행동을 마다하지 않고 조민과 그의 아버지 조국을 비난하고 나서면서 김건희와 그의 남편 윤석열에 대해서는 그리 조용하냐고 비웃는 글들이 넘치고 있다. 그러면서 왜 MZ세대는 선택적 분노만 할 줄 알면서 정의와 공정을 내세우냐는 것이다
일견 논리적인 주장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는 MZ세대, 특히 한국 MZ세대의 특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무지에서 나온 주장에 불과하다. 선택적 분노는 ‘내로남불’의 연장선상에서 해석될 수 있는 인간의 보편적 심성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MZ 세대만의 특성이라고 볼 수 없다. 모든 인간은 편견적이다. 곧 보편타당하고 불편부당한 판단과 언행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가치중립적 태도(value-free attitude)를 지니는 것은 인간에게 완전히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편견과 이기주의는 인간의 보편적 특성이다. 그러나 이를 인정하는 것은 매우 껄끄러운 일이다. 전통적인 도덕 교육에서 편견과 이기주의는 금기시되는 태도이기에 그렇다. 그리고 편견과 이기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람은 집단에서 배척당한다. 왜 그런가? 편견을 지닌 이기주의자와 거래하는 경우 십중팔구 손해를 볼 것이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 내게 손해를 끼치는 인간을 최대한 배척하고 내게 이익을 주는 인간을 최대한 확보하려고 우리는 노력한다.
문제는 모든 인간이 본능적으로 이기주의자인데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척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고 있기에 현명한 선택과 판단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왜 인간은 모두 이기주의자인가? 그 근본 원인은 바로 이기주의가 인간의 생존본능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대로 정신적 문제가 있는 인간을 제외하고 모든 인간은 맹목적으로 살고 싶은 의지(blinder Wille zum Leben)를 타고났다. 이 의지가 없다면 우리 종, 곧 homo sapiens sapiens는 진작 멸종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연에서 관찰된 모든 생명체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이 생의지(生意志)를 지닌다. 그리고 이 생의지는 종족 보존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모든 생명체의 종족 보존 의지는 도킨스(Richard Dawkins)가 명명한 ‘이기적 유전자’의 명령에 충실한 덕분이다.
이렇게 생물학적으로 정향 된 인간의 이기주의는 역사적으로 윤리도덕의 가르침으로 제한을 받아왔다. 모든 인간이 자신의 이기주의에만 충실할 경우 사회적 질서가 붕괴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보편 교육이 확대되면서 그러한 사회 질서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정확히 인지하게 된 인류는 더 이상 사회적 질서를 절대 가치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개인주의가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넓은 의미에서 이 개인주의는 사회주의와 대립된다. 그래서 마르크스를 시조로 하는 공산주의자들은 개인주의를 극도로 혐오했다. 그러나 개인의 이기적 탐욕을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가 공산주의에 완승을 거두면서 개인주의가 인간의 본성에 속할 뿐 아니라 사회 안의 개인의 생존에 더 유리한 이념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런데 서양의 개인주의는 공산주의를 극복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정한 법제도의 제재를 받는 형태로 사회적 조화를 위하여 조건화되었다. 한국 사회도 그런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 중이지만 아직 덜 정리된 모습을 갖추고 있다. 가장 커다란 원인은 유교적 가부장제도가 근현대적 법치제도로 넘어가는 과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유럽에서도 한국의 가부장제도와 같은 제도가, 특히 기독교가 사회적 영향력을 강력하게 미치던 시기에 군림했었다. 그러나 근대화의 과정에서 기독교의 독점적 권위와 권력이 귀족 제도와 함께 무너지면서 법이 모든 권력의 중심이 되는 과정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도 법치 국가의 틀을 갖추었지만 유교적 잔재, 특히 가부장제도와 지연, 혈연, 학연 중심의 패거리 문화가 사회 전반에 걸쳐 여전히 강력하게 남아 있어서 법이 공정하게 집행되는 정의로운 사회가 실현되기까지 시간이 좀 더 걸릴 모양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인주의는 서양의 것, 곧 '계몽된 이기주의'(enlightened self-interest)와는 다른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현재 한국의 MZ세대에게서 이러한 현상이 특히 강하게 나타난다. 곧 이 MZ세대에게는 이른바 '바른' 원칙이 중요하지 않다. 모든 원칙이 상대적인 가치를 지녀서 나의 의견, 나의 행복이 더 우선되는 것이다. 그래서 MZ세대는 이른바 꼰대들이 내세우는 그 ‘바른’ 가치를 믿지 않는다. 그것이 꼰대들의 이익을 위한 이데올로기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꼰대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 MZ세대의 판단기준은 '나'의 행복이다. 그리고 이 행복은 나의 몸과 마음이 편할 때 누리게 된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쿠스윤리학>에서 갈파한 행복과는 질이 다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란 개인의 잠재성이 현실화될 때 파생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궁극적 행복은 진리의 관조에서 온다고 하였다. MZ세대에게는 너무 어렵고 비현실적이다. 플렉스 할 여지가 없어 보이는 것이다.
MZ세대에게 행복은 내가 원하는 것을 ‘소유’할 때에 비로소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울할 때 나를 위로하기 위하여 MZ세대는 사치품, 이른바 '명품'을 구매한다. 나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하여 여행을 ‘구매’한다. 이들에게 행복은 주로 이렇게 유형, 무형의 ‘상품’의 구매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 상품은 MZ세대가 극도로 혐오하는 꼰대들이 이미 생산하여 제시한 것이 불과하다. MZ세대가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하여 ‘자유로운 선택’으로 구매한 ‘상품’은 사실 이미 꼰대들이 수립한 구조적 ‘시장’에서 유통되는 것일 뿐이다. 그 선택은 결국 주어진 상품의 구매와 소비라는 제한된 틀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MZ세대는 자신이 자유롭게 ‘선택’하여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충족한다고 생각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꼰대들이 수립하고 통제하는 자본주의 시장의 논리에 충실한 이른바 ‘노예적 소비자’에 불과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모든 인간이 처한 구조적 모순이다.
그러나 MZ세대에서 이 자본주의 시장의 구조적 모순은 별 관심의 대상이 안 된다. 그들의 개인적 노력으로는 이 구조적 모순을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리 포기한다. 그리고 철저히 그 시장에 적응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면서 돈을 많이 벌어서 명품을 소비하며 플렉스 하는 인생을 목표로 삼는 것이다. 꼰대들이 보기에 이러한 태도는 자본주의의 물질주의에 경도된 것이겠지만 사실 꼰대들도 MZ세대의 물질주의와 별 차이가 없는 가치 태도를 보일 뿐이다. 적어도 MZ세대가 보기에는 말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MZ세대가 그토록 혐오하는 꼰대들이 후보로 나오는데 MZ세대들은 적극적으로 선거에 참여한다. 그들의 부모세대인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나 X세대가 체제에 저항하면서도 선거에는 무관심하던 행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바로 이들에게 정치는 또 다른 소비할 수 있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곧 MZ세대는 자신들의 힘을 플렉스 하는 데 필요하다면 정치도 소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바로 윗세대 곧 40대 이상의 X세대의 이념적 ‘의식화’는 이들에게 찾아볼 수가 없다.
이들에게는 ‘빨갱이’나 ‘자본주의’조차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자신들의 개인적 만족을 위하여 소비하는 상품이다. 그래서 이들은 게임 아이템을 구매하고 소비하듯이 정치가나 이념도 구매하고 소비한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시청각 매체를 통하여 접한 이웃의 고통마저, 이들이 즐겨 보는 가요 프로그램과 아무런 근본적 차이가 없는 구매와 소비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구매의 기준은 사회적 공동선과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내 관심을 끌면 그만이다. 그리고 나를 희생해 가며 사회를 개선할만한 역량도 없지만 관심도 없다. 그저 어떤 정치가가 내 맘에 들면 그만이다. 그래서 나중에 그 정치가가 무슨 짓을 하는가는 사실 큰 상관이 없다. 이미 소비하고 버린 물건이니 말이다. 이제 관심은 '신상' 정치 상품일 뿐이다. MZ세대에게 중고품은 플렉스 하는데 '뽀대'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MZ세대에게 이준석이 맘에 드는 것이다. 사실 그는 1985년생이니 정확히 밀레니얼 세대이다. 그러나 꼰대의 원조인 박근혜를 연줄로 정계에 입문하였으니 꼰대를 무조건 증오하며 맞서는 ‘순수’ 밀레니얼과는 약간 다르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조차 가볍게 ‘소비하고 버리는’(comsume and throw-away) 그의 행태는 전형적인 밀레니얼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기성 정치인들은 그의 행태에 제대로 대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꼰대 정치가들이 전혀 경험하지 못한 ‘정치 소비’ 세대의 특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준석은 자신이 보유한 것을 플렉스 하며 우월함을 보이고자 하는 것에서 MZ세대의 시대정신을 정확히 간파하고 이용하고 있다. MZ세대는 명품, 곧 아벤타도르, 에르메스, 파텍으로 플렉스 하는 연예인들을 숭배하듯이 하바드로 플렉스 하는 이준석을 경배하는 것이다.
그러나 MZ세대는 단순히 경배만 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플렉스가 공정하지 않다고 여기는 순간 분노하는 것이다. 권위가 정의롭지 못하면 MZ세대가 극단적으로 증오하는 권위주의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래서 숭배의 이면에는 질투의 감정이 늘 함께한다. 숭배와 질투는 일종의 동전의 양면과 같다. 가장 숭배하는 대상이 ‘타락’하면서 결국 극단적인 분노를 야기하게 되는 논리가 여기에서 나온다. 그런데 MZ세대가 말하는 공정은 객관적 잣대가 자신의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지 여부에 달려있다. 그리고 이 잣대는 정서적인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이 현재 계속 헛발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MZ세대의 분노를 달래는 법은 직관적이고 정서적인 것이어야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민주당은 구태의연한 명분과 논리에만 매달리고 있다. 사실 아는 것이 그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예를 들어 MZ세대가 조민에게 분노하는 이유는 한국 상위 0.1%도 안 되는 부모를 만나 나머지 99.9%의 MZ세대에게 열패감을 안겼다는 사실에 있다. 사실 그 유명한 고딩 ‘표창장’을 진심으로 문제 삼는 MZ세대는 별로 없다. 그런데도 민주당과 조국은 표창장 정도의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MZ세대의 태도를 탓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국이 보기에는 사소할 수 있으나 MZ세대는 아니다. 여기에서 바로 ‘내로남불’의 논리가 수립된다. MZ세대는 조국이 의도적으로 내로남불을 하는 것에 화내는 것이 아니다. 조국과 조민이 내로남불을 자행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그 '관성적 플렉스'에 압도되어 분노하는 것이다.
게다가 조민 사태는 MZ세대가 뼈저리게 체험한 명문대 입시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문제와 연관된다. 이는 숙명여고 쌍둥이의 시험 문제 유출 사건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 MZ세대가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내신과 관련된 문제이기에 쉽게 '공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학교 입학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에 이들은 '공분'하는 능력을 상실했다. 궁극적으로 이는 8차에 걸쳐서 '교육 개혁'을 추진한 기득권 세력인 교육부와 서울대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이른바 '교육 마피아'와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형성된 재벌들의 취업을 무기로 한 자본주의 통제 카르텔이 성공했다는 표징이다. MZ세대의 머리에는 명문대와 대기업 입사 외에는 생각할 겨를이 었는 것이다.
그런데 입시와 내신 비리에는 그리 '광분'하면서 정작 더 큰 문제인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에서 파생되는 문제에는 무감각한가? 근본적으로 아는 것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명문대 입시만을 위해 사육된 10대까지의 교육이 이들의 사유를 그렇게 제한했다. 기득권 층이 볼 때 매우 성공적인 '길들이기'가 이루어진 셈이다. 이들의 공통분모는 명문대 입시이다. 그리고 그것뿐이다.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배운 적이 없다. 입시에 관한 한 MZ세대는 전 세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수준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입 이후의 공부나 그 이후의 인생의 삶에 대한 지표는 누구에게도 배운 적이 없다. 아는 것이 있어야 분노할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대입이 성공적 완료되면 서양의 학생들처럼 그때부터 '진리'를 궁구하기보다는 대학 생활을 '즐기고' 취업 준비에 몰두해야 하니 공동선, 정의, 공정, 그리고 무엇보다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과 답을 구하는 일에는 관심을 기울일 시간이 없다. 물론 그런 근원적 질문에 대한 답을 줄 '선생'도 없지만 말이다. 그러니 MZ세대는 대학교 입학 이후의 문제에 대해서는 선택적 분노밖에 못하는 것이다. 어느 모로 기득권 세력과 자본가들의 '음모'가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을 바로 그러한 MZ세대의 선택적 분노 현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 사회의 '쓰고 버리는' 소비문화 진입할 때 MZ세대는 이미 대입 준비로 모든 에너지를 소비하여 가치판단을 할 힘도 의욕도 없는 상태가 되었으니 기득권자들이 마음대로 조정할 여지가 많은 것이다. 더구나 유치원때부터 '실력 줄세우기'에 길들여진 MZ세대는 오로지 '실력'만이 모든 판단의 잣대가 되어 버린지 오래다. 그리고 그 실력의 내용을 들어가보면 결국 국영수 점수로 환원된다. 게다가 MZ세대는 주체적 판단이 가능한 개인주의자가 아니라 본능에 충실한 이기주의자이고, 창의적인 사유와 판단을 하는 개체가 아니라 대입 제도에 순치되어 기존 질서에 순응하는 집단이 되고 말았다. 입시제도가 아무리 바뀌어도 그 제도 자체의 모순에 분노하고 저항하기 보다는 그 제도에 최적화된 '몸 만들기'에 바로 착수한다. 그래서 남보다 더 빨리 제도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자가 '승리'하는 프레임에 갇히게 된 것이다. 여기에 엄마의 정보력과 발품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MZ세대가 정치적으로 '보수' 성향을 보이고, 특히 남성 MZ세대도 '페미닌'의 특성을 보이는 것이다. 곧 모험과 투쟁보다는 육체적 안락과 물질적 안정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최근 서울 시장 보궐 선거에서도 남성 MZ세대가 '보수' 세력을 자임한 오세훈을 광적으로 지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당이 대선 전략을 근본적으로 수정하지 않으면 내년 선거에서 MZ세대에 특히 고전하게 될 것이다. 이 세대는 현재 대한민국 인구의 44%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이 일치한다면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유권자층이다. 소셜 미디어로 플래시몹을 시연하는 것과 같은 플렉스의 경험이 충분한 세대이다. 이들의 힘의 플렉스는 이미 오세훈의 당선으로 확인되었다. 이들과 30% 정도의 콘크리트 보수 세력이 더해지면 민주당의 필패는 불을 보듯 뻔하다. MZ세대와 보수 세력이 중첩되는 부분을 감안하여도 최종 득표에서 50%는 충분히 넘을 것으로 보인다. 작년 총선의 압승의 달콤한 기억에서 서둘러 벗어나 정신을 차려야 할 이유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제 저물고 있다. 5년 동안 많은 것을 바꾸고자 노력했다. 사실 이명박과 박근혜가 저지른 과오를 청산한다는, 정확히 말해서 적폐 청산을 기치로 출발한 정부였다. 그러나 적폐 청산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검찰 개혁은 시작부터 삐걱거렸고, 언론 개혁은 시작도 못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커지는 법.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 여당에 대한 지지도 줄어들었다. 부동산 정책의 실패로 특히 남성 MZ세대가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되었다. 당분간 전세가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부동산 문제는 국내적 요소만으로 야기된 것이 아니라서 정부로서도 뾰족한 대책 마련이 어려운 상황이다.
사실 지나간 일이지만 조국 사태의 처리가 좀 더 현명하게 이루어져야 했다. 실질적으로 조국 일가가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하여도 ‘적페 세력’이 여전히 장악하고 있는 검찰과의 대결 구도를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이 사회의 구성원 가운데 문자 그대로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순수성을 강조한 결과 결국 내로남불 정권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이다. 이 세상에 ‘순수’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상위 0.1%의 ‘귀족’은 결코 순수할 수 없다. 그것도 ‘강남 좌파’인 조국의 경우에 말이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진리를 박근혜 정권의 몰락에서 배웠을 것인데 벌써 잊은 모양이다. 애석한 일이다. 검찰 내의 적폐 세력을 척결하는 일을 하기에 조국은 너무 유약했다. 원래 가족에 대한 사랑이 큰 사람은 국가 대사를 다루기에 부족한 법이다. 지금 윤석열이 보여주는 ‘강인함’이 그러한 조국의 '유약함'을 오히려 더욱 두드러지게 만든다.
사실 검찰 개혁은 학자가 아니라 검찰 내에서 산전수전 다 겪어낸 권력의지가 강한 인물이 주도했어야 했다. 가진 것이 많은 그래서 잃을 것도 많은 유약한 학자에게 검찰 개혁을 맡기는 것은 패착이나 다름없었다. 특히 조국은 가진 것이 너무 많은 만큼 모든 것을 내던지기가 전혀 불가능했다. 정치는 때로는 모든 것을 내 던져야 하는 게임이다. 그래서 조국은 아무리 억울한 점이 많아도 결국 사법 개혁에서 근원적인 역량의 한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조국 사태로 실망한 MZ세대는 부동산 사태로 말하자면 '완전히 정이 떨어지게' 되었다. 이 분노한 MZ세대의 마음을 돌리기가 이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내년 대선에서 남성 MZ세대는 현 정부를 비난하는 세력에 표를 줄 것이다. 그리고 그 표는 서울 시장 보궐 선거 때만큼이나 강한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물론 아쉬운 일이다. 더구나 수구 세력이 장악한 언론은 전혀 여권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상황이 이처럼 ‘엄중’한데도 여권은 긴장하는 모습이 안 보인다. 이 ‘근자감’은 과연 그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이제 몇 달 후면 알 수 있다. 얼마 안 남았다.
정치는 유기체와 같다는 말이 있다. 유기체의 생존과 성장에는 너무나 많은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작용한다는 의미이다. 한국의 정치도 좌우 대립만이 아니라 동서 대립, 빈부 대립, 세대 간 대립이라는 다양한 변수가 작용한다. 그리고 이러한 대립은 반드시 진영 논리를 낳는다. 그래서 조국과 평생 만나 볼 기회조차 없는 사람도 조국 옹호에 나서고 윤석열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강력한 지지자가 되는 것이다. 내 진영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진영 논리는 분노를 먹고 산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는 현재 분노가 충분히 넘치고 있다. 언제든 불꽃만 있으면 폭발할 준비가 된 폭탄들이 사회 여기저기에 놓여 있다. 안 보이거나 봐도 못 본 척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 선거철이 되면 그 모든 폭탄들이 터지며 사회가 사분오열된다. 누군가는 이기겠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승자나 패자나 다 상처를 크게 입게 될 것이다.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다행히 대한민국의 국운은 상승 중이니 그것을 굳게 믿을 뿐이다. 공식적으로 선진국이 된 것이 그 하나의 징표가 아닐까? 5000년이 역사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이리 서로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대면서도 우리나라는 버텨왔다. 당장 조선 후기의 사화와 당쟁을 떠올려보자. 이 문자 그대로 '피비린내 나는' 권력 투쟁으로 조선 시대의 엘리트들이 무수히 사라졌다. 그런 여파로 조선은 사라졌지만 한민족은 버텨냈다. 그러니 앞으로는 더 잘 될 것이다. 아무리 파벌 싸움이 지연, 혈연, 학연을 중심으로 벌어지지만 적어도 지금은 3족이 멸하는 일은 안 일어날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어느 모로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한국 사회의 분열상은 더 큰 고난이 와도 견디는 내성을 기르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엉뚱한 생각까지 해본다.
내가 어릴 때 근심에 빠질 때마다 어머니께서 해 주신 말씀이 떠오른다. “다 때가 있단다. 그리고 견디면 모든 것이 다 지나가고 잘 될 거야. 걱정마라.” 사실 그렇다. 지금 큰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MZ세대도 때가 되면 꼰대가 되고 다시 알파, 베타, 감마 세대로부터 꼰대 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렇게 세월은 갈 것이고 그러면 다 지나가고 다 잘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