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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Aug 29. 2022

낭만가도의 숨은 보석 베르트하임

작지만 알찬 마을이 주는 기쁨이 있다

베르트하임 전경


낭만가도에는 유명한 도시가 많아 작은 마을을 소홀히 하기 쉽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뷔르츠부르크에서 30km만 가면 보이는 베르트하임 (Wertheim)이다. 인구가 22,000명 정도 되는 작은 이 도시는 바이에른이 아니라 바덴뷔르템베르크 (Baden-Württemberg) 주의 가장 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70km밖에 안 떨어져 있어서 비행기에서 내려 아우토반을 달리면 1시간도 안 걸린다. 마인강과 타우버강이 만든 계곡 사이에 자리 잡은 데에다 언덕이 많아 산책에는 그만인 곳이다. 마인강과 타우버강이 시내 한가운데에서 만나며 도시를 동서로 나누고 있다. 이 두 강이 만나는 지점에 이 도시의 유일한 요새가 있다. 강줄기가 도시 한가운데를 지나는 만큼 항구도 있다. 원래 타우버강 줄기에 항구가 있었으나 1960년대에 마인강 쪽의 항구로 대체되었다.

 

이 마을은 중세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독일의 주요 관광지의 면모를 유지하고 있다. 최초의 정착지는 마인강 오른쪽의 크로이츠베르트하임 (Kreuzwertheim)에 마련되었다. 그 후 이 도시를 베르트하임 백작 가문이 차지하면서 마인강 왼쪽에 오늘날 남아 있는 베르트하임 성이 건축되었다. 이 마을의 이름이 이 가문에서 유래한 것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다른 큰 도시들의 성에 비하여 비록 그 규모는 작지만 밤에 숙소에서 바라보면 상당히 낭만적인 분위기를 불러일으킨다. 독일의 낯선 도시에서 나그네로 보내는 밤에 이국적인 성이 창밖으로 바라보일 때 스멀스멀 솟아오르는 노스탤지어는 중독성이 있다. 바로 이런 맛에 여행을 특히 해외여행을 하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 우리는 모두 나그네다. 그리고 독일 여행과 달리 인생 여행은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로 가는지 전혀 모른다. 더 중요한 것은 인생이라는 여행은 내가 원해서 시작한 여행도 아니고 내가 원해서 마치는 여행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저 삶이 주어졌기에 살고 그만 인생의 무대에서 내려가라고 하니 내려갈 뿐이다. 어차피 내 노력으로 얻은 삶이 아니니 누구를 탓할 것인가?


그런데 여행은 그런 쓸쓸함을 달래주는 힘이 있다. 내가 원해서 택한 목적지이고 내가 원해서 택한 여행 방법이다. 내 의지대로 한 장소에 오래 머물 수 있고 내 의지로 특정 장소를 스쳐 지나갈 수 있다. 그리고 여행 중에 전혀 낯선 장소에서 우연히 만나는 사람과 뜻밖에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반대로 유명한 관광지라서 잔뜩 기대했지만 아무런 보람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결국 나의 선택에 따른 것이니 그 누군가를 원망할 필요가 없다. 그런 경험을 하면서 인생에서 겪게 되는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마치 나그네처럼 스쳐 지나가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자세를 배우게 된다. 그래서 여행은 삶의 지혜를 얻는데 매우 유용한 수단이 된다.


베르트하임 산동네 올라가는 골목길

 

그런데 이 시골스러운 동네에 어울리지 않게도 대형 명품 아웃렛으로 2003년 지어진 ‘베르트하임 빌리지’ (Wertheim Village)가 있다. 약 27,000m2의 면적에 110여 개의 명품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1년에 약 250만 명이 이곳을 찾는다. 중국인을 포함한 외국 관광객들도 많다. 2020년 이후 몇 년 동안 코로나 때문에 타격이 컸지만 여전히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명품 아웃렛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쇼핑을 하면서 적당한 식당에서 간단한 음식을 즐길 수도 있다. 아침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개장을 하니 천천히 둘러볼 만하다. 특히 ‘Mon Amour’라는 이름의 가게에서 파는 유기농 크레페는 한번 맛 볼만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곳 입구에 있는 초콜릿 가게를 꼭 들러 보아야 한다. 가격이 좀 비싼 것이 흠이지만 매우 다양한 종류의 수준 높은 초콜릿을 맛볼 수 있다. 이 가게에서 좀 더 위로 들어가면 세계적인 캠핑카 제작사인 하이머 (Hymer) 회사의 에르빈 하이머 월드 (Erwin Hymer World)도 있어 캠핑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들러 구경할 만하다. 카라반 전문 회사인 GÜMA가 이 자리에 하이머 이외에도 Niesmann+Bischoff, Dethleffs, Sunlight, Goldschmitt 등의 회사 상품도 다룰 예정이라고 하니 말이다. 요즘 한국에서 크게 불고 있는 캠핑카 열풍의 원조로 알려진 데트레프 (Arist Dethleff)가 1931년 독일 최초의 ‘집차’ (Wohnauto)를 만든 것이 그 오랜 역사의 시작이 되었다.


베르트하임 요새

 

시내로 들어서면 볼만한 것이 더 많다. 우선 12세기에 마인강 서안에 지어진 베르트하임 요새 (Wertheim Burg)와 그 주변 건물들에서 중세의 흔적을 여전히 찾아볼 수 있다. 1383년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교회인 슈티프트키르헤 (Stiftkirche)도 꼭 보아야 한다. 독일 남부의 다른 많은 지역에서 볼 수 있듯이 이 교회도 원래 가톨릭 성당이었으나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교회가 차지한 건물이 되었다. 시내에 있는 ‘천사의 샘’ (Engelsbrunnen)은 이 지역에 흔한 붉은 사암으로 만든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대기에 있는 두 천사가 베르트하임 가문의 문장을 들고 있다. 그래서 천사의 샘이라는 명칭이 붙은 것이다.  

 

시내 강가에 있는 유리공예 박물관도 반드시 들러 보아야 한다. 이 박물관의 건물은 1577년에 지어진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20세기에 들어와서 현재의 용도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베르트하임이 처음부터 유리공예로 유명한 마을은 아니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리공장이 구동독 지역의 튀링겐 (Thüringen)과 일메나우 (Ilmenau)에서 이곳으로 이전한 이후 주요 산업이 되었다.


베르트하임 시내의 마르크트플라츠

 

그 이전에는 목재 가공과 아이젠베르크 (Eisenwerk AG)와 같은 회사를 중심으로 한 기계 제작이 주요 산업이었다. 그러나 동독이 공산화되면서 그곳에 있던 사업가들이 서독으로 이주하면서 자연스럽게 유리공예 산업이 이 마을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이 마을이 자랑할 만한 사업이 되었으니 박물관을 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독일의 여러 도시와 마을에는 다양한 박물관이 있다. 규모도 다양하다. 많은 경우 규모가 작아 약간은 실망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미리 충분히 정보를 얻고 나서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독일은 아주 작은 것도 소중히 여기는 전통이 있어서 한국에서 온 여행객의 눈에는 사소해 보이는 것도 박물관을 만들어 보존하는 전통이 있기에 기대가 크면 실망이 그만큼 따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은 것에서도 의미를 찾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뜻밖의 보물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일단 관광 후에는 식사를 해야 하는데 베르트하임 요새 바로 밑에 있는 ‘베르트하임 요새’ (Wertheim Burg) 식당을 추천한다. 지역 토속 요리를 맛보면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하이델베르크 못지않다. 다만 그런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가파른 길을 오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저렴한 가격에 이국적인 요리를 맛보고자 한다면 시내에 있는 ‘아시아복 식당’ (Asiawok Restaurant)도 추천한다.  

 

더 많은 정보는 물론 시가 운영하는 공식 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주소: https://www.wertheim.de/startseite.html) 독일어로만 운영되기에 영어가 익숙한 사람에게는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구글의 영어 번역 서비스를 이용하면 큰 불편은 없을 것이다. 이 도시에 관한 최신 정보, 특히 관광 정보를 얻는 데는 공식 사이트만큼 편한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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