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는 유명한 로텐부르크가 2개 있다. 바덴뷔르템부르크 주의 Rottenburg와 바이에른주의 Rothenburg이다 발음은 똑같기에 독일 사람들도 이를 구분하여 말할 때는 테하(th) 로텐부르크와 테테(tt) 로텐부르크라고 추가 설명을 한다.
베르트하임에서 출발하여 타우버비숍스하임(Tauberbischofsheim)과 뢰팅엔(Röttingen)을 지나면 나타나는 로텐부르크는 다음 여정에서 만나게 되는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 못지않은 프랑켄 지역의 중세적 풍모를 그대로 간직한 도시이다. 사실 더 정확히는 중세의 상처를 가직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그 모든 쓰라린 역사를 뒤로 하고 이제는 여기를 찾는 이들에게 시간 여행의 기회를 주고 있으니 그것으로 그만이다.
로텐부르크의 정식 명칭은 Rothenburg ob der Tauber이다. 이는 독일어로 타우버 강 상류의 붉은 요새라는 의미이다. 이 지역의 역사가 대부분 그렇듯이 로텐부르크도 원래 켈트족이 거주하던 곳인데 게르만족이 대동을 하면서 그들을 몰아내고 차지한 지역이다. 1070년에 로텐부르크 성은 콤부르크-로텐부르크 백작 가문이 지었다. 그러나 성을 지은 지 50년도 안 되어 가문이 멸망하자 하인리히 5세(Heinrich V, 1088-1125) 황제는 이 영토를 그의 조카이자 나중에 콘라트 3세(Konrad III) 왕으로 등극한 콘라트(Konrad von Hohenstaufen)에게 넘겼다. 현재 모습의 로텐부르크가 본격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한 것은 1170년이다. 도시 중앙에는 광장과 성 야고보 성당(St. Jakob) 성당이 들어섰다. 유명한 성벽과 성탑은 13세기에 지어진 것이다. 원형으로 남아 있는 것은 백색 탑과 마르쿠 스탑이다.
로텐부르크 시내의 시버스토어와 코블렌처토어
그러나 로텐부르크도 역사의 비극을 비켜가지는 못했다. 종교 간 전쟁으로 당시 독일 인구의 20%인 8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30년 전쟁(1618-1648)의 와중인 1931년 로텐부르크도 가톨릭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온 틸리(Tilly) 백작의 손아귀에 넘어갔다. 전설에 따르면 틸리 백작은 이 도시를 불태워버리고자 하였으나 술대접을 받은 자리에서 누구든지 3.25 리터의 잔에 들은 포도주를 단숨에 마시면 그대로 살려둘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당시 시장이던 누쉬(Georg Nusch)가 이를 다 마셔서 도시를 살렸다는 것이다. 이 전설을 바탕으로 로텐부르크에서는 해마다 성령강림절에 ‘마이스터트룽크’(Meistertrunk)라는 축제를 벌인다. 그러나 사실은 전쟁의 후유증으로 도시가 피폐해진 데다가 1634년 퍼진 흑사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게 되었다. 그래서 로텐부르크를 찾는 사람이 없는 덕분에 오히려 17세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도 미군의 설득으로 로텐부르크를 방어하던 독일의 퇴메스(Tömmes) 소령이 히틀러의 명령에 불복하여 항복한 덕분에 도시의 상당 부분이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다.
유발 하라리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은 유럽에서 흑사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간 비극이 오히려 유럽의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고도 해석한다. 일단 인구가 현저히 감소하여 문자 그대로 사람의 몸값이 상승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인건비를 절약하기 위하여 인력 대신 기계의 도움을 받으려는 경향에 따라 과학과 학문이 비약적으로 발달하게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적어도 중세 이전에는 중국의 문명과 경제력이 유럽을 압도한 것이 사실로 여겨진다. 그러다가 중세 이후 서양의 과학 문명이 급격히 발전하고 식민지 개척에 성공한 이루 거의 500년 가까이 유럽이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를 제패할 수 있도록 촉발한 것이 과연 흑사병 하나였을 리는 없다. 그러나 흑사병과 30년전쟁으로 오랜 기간 동안 많은 희생을 치른 다음에서 인간의 가치와 과학적 지식의 필요성에 눈을 뜨게 되었으니 반드시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또한 흑사병과 전쟁이 야기한 죽음을 기독교의 신도 막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백성들이 기독교의 정신적 독재에서 벗어나 계몽된 근대적 인문주의 정신을 받아들인 것도 유럽의 세계 지배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근원적인 자유로운 정신을 최대한 보장하는 사회와 국가가 결국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는 사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런데 그렇게 성공적으로 기독교의 정신적 독재에서 벗어난 서양 제국이 세계를 제패하는 동안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에서는 서양에서는 이미 극복한 기독교, 자본주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여전히 극단적인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서양의 계몽된 정신을 배우러 유럽으로 가야 하는 모양이다. 그저 눈요기로 보름 동안 한 달 동안 주마간산식의 여행으로는 배울 수 없겠지만 말이다.
로텐부르크 라트하우스와 마크트플라츠
다시 오늘의 로텐부르크로 돌아가 보자. 도시 한가운데 있는 시청 건물인 라트하우스는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지만 그 뒷면은 원래의 1250년대에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도시 동쪽 끝으로 가면 뢰더토어(Roedertor)가 있다. 2유로를 내고 탑을 올라가면 도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또한 시내에 있는 각종 중세 고문 도구가 전시된 범죄 박물관도 볼만하다. 이외에도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여러 박물관이 보인다. 인형 박물관, 춤추는 목동의 박물관, 제국 도시 박물관들이 있다 그리고 11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수공예 박물관에서는 수공예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볼 것이 많아서 하루에 관광을 마치기에는 무리가 있다. 성곽 내부의 호텔들은 대부분 깨끗하고 가격도 적당하니 하루 정도 머물러도 좋을 것이다. 저녁을 먹고 느긋하게 주변을 산책하다 보면 정말로 시간 여행을 하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기념품 가게에는 매우 다양한 예쁜 물건들이 많으니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절제를 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가격이 만만치 않다.
추가로 흔히 로텐부르크에 오면 슈니발(Schneeball)을 반드시 먹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은데 생각 밖으로 호불호가 엇갈리는 과자이니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어 보인다. 맛에 비하여 가격이 센 것도 단점이다. 그러나 그 역사가 300년이나 된 것이고 축일에만 만들어 먹는 프랑켄 지방의 토속 과자이니 억지로 참을 것도 아니다.
로텐부르크의 명물 슈니발
유명 관광지답게 식당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요리를 제공하고 있다. 범죄박물관 근처에 있는 알터 켈러(Alter Keller) 식당에서 1인당 20유로 미만으로 상당한 수준의 독일 저녁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여기서 저녁을 먹고 구 도심을 한 바퀴 산책하는 것이 가장 무난한 일정이 될 것이다. 이탈리아식 요리를 먹고 싶다면 미켈란젤로(Michelangelo)를 권한다. 독일에서 먹는 이탈리아 음식은 나의 개인적 경험으로도 이탈리아에서 먹는 것보다 더 풍부하고 맛이 훌륭하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식당 창밖으로 탑과 성벽을 바라보며 이탈리아 음식을 먹다 보면 정말로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 것이다. 아우크스부르크까지의 약간 긴 여정을 앞에 두고 편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