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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예수를 숭배하게 했나?

예수는 숭배를 요구한 적이 없다

by Francis Lee


사실 예수는 지상에 머무는 동안에 제자나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을 숭배하라는 말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리고 자신이 신이라고 말한 적도 없다. 그러나 그의 사후 30~40년이 흐른 이후부터 기독교 공동체에서 그를 숭배하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로마제국의 유일한 국교가 되면서 다른 모든 사상과 종교를 철저히 탄압하면서 오히려 이교도들이나 로마 황제들이 한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에 대한 숭배를 체계화한 기독교가 탄생하게 된다. 오늘날 가톨릭교회가 유지하는 고위 성직자의 복장과 법 제도는 대부분 로마제국 황제들과 귀족들의 것을 모방하고 있다. 팔레스티나 지역에서 태어나 살다 죽은 예수와는 전혀 무관하다.


그런데 기독교 이전의 많은 종교에서도 신에 대한 숭배가 있었지만, 기독교만큼 배타적이고 절대적인 숭배의 관행이 이루어진 경우는 매우 드물다. 가장 큰 문제는 예수 자신이 이러한 배타성을 단 한 번도 요구한 적이 없다는 사실에 있다. 왜 교주의 의사와는 무관한 이런 극단적 배타성을 지닌 종교가 탄생하게 된 것일까?


그 근본적 이유는 바울의 등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수를 실제로는 단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인물인 바울은 자신이 박해한 기독교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예수의 모습을 나름대로 만들어 낸 장본인이다. 그래서 예수의 직제자인 베드로나 야고보와 대치 국면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사실 예수를 직접 보고 그를 따라다닌 이들이 체험한 예수와는 어느 정도 다른 예수를 바울이 이야기하고 돌아다니는 것은 사도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모독에 가까운 일이었다.


더구나 스스로를 예수가 직접 선발한 사도들과 맞먹는 사도적 존재로 여기니 말이다. 말하자면 예수가 공인한 적이 전혀 없는 ‘짝퉁 사도’가 설치고 다니는 꼴이 역겨웠을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의 인기가 올라가고 예루살렘 밖의 기독교 공동체에 대한 그의 영향력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가 되자 예루살렘 공동체도 그와 타협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결국 예루살렘 공동체에서 쓸 돈을 가져다주는 것도 그였으니 말이다.


원래의 교회라고 할 수 있는 예루살렘 공동체는 엄밀히 말해서 예수를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기억’하는 모임이었다. 그리고 이런 예수에 대한 기억과 그를 기념하는 것이 예배의 원래 의미였다. 예수를 신으로 숭배하며 그에게 소원을 비는 행위는 초기 기독교 모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유일신인 야훼 이외에는 누구도 숭배하면 안 되는 유대교 전통에서 출발한 기독교 아닌가? 야훼 이외의 존재를 숭배한다는 것은 신성모독이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런 극단적인 변형이 나타나 결국 기독교의 신앙 체계로 공고화된 것일까?


가장 일차적인 원인은 교회의 제도화에 있다. 초대교회에서부터 이미 조직화되기 시작한 교회는 여느 조직과 마찬가지로 위계 조직과 자금이 필요했다. 그래서 원래의 ‘에클레시아’(ἐκκλεσία), 곧 예수 공동체가 아닌 종교 집단화가 되게 된다. 다른 종교 집단과 마찬가지로 기독교 교회는 이 조직을 운영하는 데에 신성한 존재, 곧 교주가 필요했다. 일반적으로 종교 집단은 반드시 신성한, 그래서 일반인이 접근하기가 불가능한 존재를 설정한다. 그리고 그에 관한 전설을 경전화하여 체계적인 위계질서를 갖춘 종교 단체의 조직 운영의 기본적인, 더 나아가 신성한 지침으로 삼아 버렸다.


불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부처는 원래 한 인간에 불과한 고타마 싯다르타였다. 그러나 그가 죽고 나서 그의 가르침을 공부하는 계파와 더불어 그를 숭배하는 계파도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특히 민간 신앙 차원에서는 매우 형이상학적인 부처의 가르침을 배우기보다는 인간의 일상적 어려움을 ‘간단히’ 해결해 주는 해결사가 되기를 바라는 경향이 나타났다.


부처의 상 앞에서 오늘도 수많은 불교도가 절을 하고 자신의 소망을 빈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제자들에게 그런 숭배를 요청한 적이 없음에도 말이다.


그래서 그의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전설은 물론 그의 전생과 미래에 대한 전설까지 포괄하는 커다란 숭배 체계가 완성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과거불, 현세불, 미래불의 전설까지 확립되었다. 그리고 불교 철학에 대한 학문적 깊이가 없는 대부분의 일반 신자들은 불교의 교리와 경전의 역사비평적 분석보다는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존재의 힘에 의존하여 현세적 복을 바라는 기복주의적 신앙에 빠져들게 된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불교 신자들은 부처가 제시한 인간 삶의 근원적 의미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에는 큰 관심이 없고 불상 앞에서 세상적 복을 기원하고 있다. 그것이 공부보다는 훨씬 편한 일이니 말이다.


예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의 생존 기간에 단 한 번도 가까운 제자에게조차도 숭배를 요구한 적이 없다. 그러나 그의 사후 여러 전설과 더불어 숭배의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는 예수를 신격화하는 교리의 발달에 민간 신앙의 기복주의가 더해지면서 지상에서의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역사비평적 이해보다는 지상에서의 복을 비는 대상으로 예수를 숭배하는 데에 더 몰두하는 상황을 만들게 되었다.


이런 기복주의적인 숭배의 패러다임은 사실 모든 기성 종교의 특징이다. 곧 거의 모든 종교에는 신성시하는 인격적 존재, 곧 교주가 있고 그를 대변하는 사제단이 신자들과 교주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사제단이 교리서와 예식서를 작성하여 신자들을 교육한다. 그리고 정기적인 모임으로 이들의 신앙을 강화하여 결속을 다진다. 조직의 운영은 대부분 신자들의 기부금으로 충당한다. 예수는 조직을 구성한 적도 없고 기부금을 걷은 적은 더더욱 없는데도 말이다.


성경에 보면 주변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예수 무리에게 돈을 마련해 주었다. 그런데 이의 활용 방도를 이야기하던 유다에게 예수는 일갈한다. 당장 문밖에 나가 그 돈을 가난한 이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라고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나 불교나 나누어 주는 것보다는 자신이 내부에 쌓는 재산이 훨씬 많다. 특히 부동산은 기독교나 불교나 엄청나게 축적되어 있다. 왜 이리된 것일까? 교주인 예수나 부처는 재물을 쌓으라고 권유한 적도 없고 그 자신도 단 한 푼도 재물을 소유한 적도 없는데 말이다.


그 근본 이유는 바로 성직자들의 간계에서 시작된다. 그들은 이른바 ‘in persona Christi’ 또는 ‘in persona Budddae’의 논리를 내세운다. 곧 그들이 예수를 ‘대신’하고 부처를 ‘대신’하는 존재이니 예수와 부처에 버금가는 경배를 받아 마땅하다는 논리이다. 그래서 그들은 오늘날 예수나 부처가 경멸한 높은 자리, 권위, 재물이 집중되고 보장되는 조직관리에 몰두하고 있다.


2020년 가을 한국의 어떤 유명한 승려가 부동산을 소유한 것이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사실 승려라고 부동산을 취득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더구나 그는 신자들의 직접적인 기부금이 아니라 간접적인 기부금인 인세나 앱 판매 금액으로 축재를 한 사람이다. 그러니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유재산을 자신의 의지로 사용하는 기본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왜 문제가 되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세상을 거룩하게 만들 것을 약속한 성직자가 오히려 세속에 물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동산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그 부동산을 세속적인 자본주의의 세밀한 법망을 이용하여 전혀 불법을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법보다 훨씬 더 근본적이고 종교적 교리와도 직결되는 양심을 거스르는 행위를 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면 왜 법을 최대한 활용하여 이른바 ‘무소유’를 흉내 낼 것인가? 자가는 무소유가 아니고, 자신이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는 법인에 판매하여 자신이 전세를 들면 무소유란 말인가? 거의 부동산 투기꾼의 모습을 보였기에 부처 앞에서 부끄러워해야 한다.


이렇게 오늘날 종교가 세상을 거룩하게 하기는 고사하고 세속의 때가 묻은 모습을 드러낸 것이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세속적인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보다는 교회나 절을 세속화시키는 것이 훨씬 쉬운 모양인가 보다.


더 큰 문제는 이른바 신흥종교의 교주들이다. 그들은 예수를 대신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가 자신을 예수와 동일시한다. 그리고 죽기도 전의 살아 있는 자신에 대한 개인숭배를 강요한다. 그리고 이 숭배는 지극히 세속적인 조직관리 기법을 통한 정교한 제도로 확립된다. 그리고 한번 확립된 제도는 신의 섭리로 자리매김하여 신성불가침한 것이 되어 버리고 있다.


도대체 왜 성직자들이 이렇게 당당하게 세속화되어 가는 것일까? 이것은 최근의 현상인가? 아니다. 기독교의 경우는 이미 바울이 그 선례를 남겼고 그 이후 기독교는 원래 예수가 선포한 것과는 전혀 다른 교리를 바탕으로 하는 제도화된 교회의 역사가 이어졌다.


바울은 너무나 잘 알려진 것처럼 예수를 직접 만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가르침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스스로를 사도라 부르며 예수의 직제자들을 대신하여 주로 소아시아 지역에서 예수의 말씀을 전파하였다. 무엇보다도 예수는 유대교의 개혁을 중점으로 활동하였지만 바울은 스스로를 이방인의 사도로 자처하며 헬레니즘과 융합된 새로운 양식의 기독교, 곧 유럽식 기독교를 전파하고 나섰다. 그런데 바울의 기독교와 별도로 존재하던 팔레스티나식 기독교, 곧 예수의 직제자를 중심으로 한 예루살렘의 기독교가 완전히 붕괴하였다. 그러고 나서 이후 바울의 유럽식 기독교는 유일한 기독교의 전범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원조 기독교는 사라지고 ‘짝퉁’ 기독교만 남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물론 신앙적으로 이는 신의 뜻이 되었다. 그리고 그 유럽을 중심으로 한 신의 뜻이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 바울의 기독교는 철저히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조직 관리적 교회를 중심으로 확립되었다. 지극히 남성중심주의적인 권위주의의 특징을 지닌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와 전혀 다르게도 여성을 모독하고 여성을 비하하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정작 기독교의 교주인 예수는 단 한 번도 여성을 비하하거나 비난한 적이 없는데 말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바울은 예수가 자신을 숭배하라는 이야기를 단 한 번도 안 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를 신과 동일시하고 절대적으로 ‘숭배’할 것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예수를 대신하여 예수의 ‘참 가르침’을 선포하는 자라고 선언한다. 예수를 본 적도 그의 말을 직접 들은 적도 없는 사람이 말이다. 그리고 그의 교회는 예루살렘의 초대교회와 같은 원시 공산주의적 공동체로서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기보다는 조직화된 교회에서 예수의 가르침을 선포하는 것에만 집중한다. 그리고 이미 그 당시부터 시작된 교회의 분열을 막기에 급급해한다. 조직관리가 진리에 앞설 수밖에 없는 상황 논리에 밀리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근원적인 방책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교주를 대신하기보다는 교주를 닮아야 한다. 곧 ‘in persona Christi’나 ‘in persona Buddhae’가 아니라 ‘in imago Christi’나 ‘in imago Buddhae’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 이는 교회의 이해에 핵심이 되는 개념이다. 곧 예수의 교회인가 아니면 성직자의 교회인가의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잣대가 된다. 문제는 그러한 이른바 성직자 중심주의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하여 교회는 이른바 ‘정경’을 만들어 놓고 오로지 성직자만이 그 책을 해석할 수 있는 배타적인 신성한 권한을 부여받았다는 원칙을 정해 놓았다. 과연 그 정경을 누가 만들었나? 좀 더 깊이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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