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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Mar 31. 2024

독일 가톨릭교회가 결국 바티칸과 갈라지는가?

제2의 종교 개혁은 이미 시작되었다.

개신교와는 달리 가톨릭교회는 바티칸을 중앙본부로 삼아 각 국가와 지역 교회를 지점처럼 운영하고 있다. 누구 말대로 가톨릭교회는 프랜차이즈 구조를 이룬다. 그래서 해마다 중앙본부에 일종의 로열티를 지급하고, 중앙본부에서는 모든 지역 교회의 인사권을 독점하고 있다. 이렇게 강력한 인사권을 무기로 교회를 가톨릭, 곧 하나로 묶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독일 가톨릭교회는 바티칸과 다른 목소리를 더욱 크게 내고 있다. 사실 독일과 바티칸은 중세 때부터 서로 권력 싸움을 벌여온 역사가 길다. 독일의 신성로마제국이 보기에 바티칸은 그저 이탈리아 사람들이 모인 권력 집단에 불과한 적도 있다. 물론 독일만이 아니라 프랑스도 바티칸과 척진 때가 많았다. 그래서 한때는 바티칸과 프랑스가 따로 교황을 세워 2명의 교황이 동시에 존재한 적도 있다. 다 권력과 돈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런데 지금 독일 가톨릭교회와 바티칸이 불협화음을 내는 이유는 돈과 권력이 아니라 생존 때문이다. 독일 가톨릭교회는 지금 문자 그대로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고 있는 중이다. 신자는 해마다 50만 명 이상 떨어져 나가고, 사제의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행 범죄가 지속해서 드러나 국민의 손가락질을 받는 가운데 교회의 존재 의미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 교회는 결단을 내려 이른바 der Synodale Weg, 곧 시노드의 길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시노드의 길에서 채택한 조치에 대해 바티칸이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왔다. 특히 격렬한 반대에 부딪힌 것이 바로 Synodaler Ausschuss, 곧 시노드 위원회다. 이 위원회는 성직자만이 아니라 평신도가 함께 교회 문제를 논의하고 추진하기 위해 구성된 회의체다. 그런데 철저히 계급주의적인 가톨릭교회는 지금까지 교회의 문제를 오로지 성직자만이 독단적으로 결정해 왔다. 그런데 독일 가톨릭교회가 평신도도 교회 문제 해결에 의결권을 지니도록 하는 조치를 추진한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당연히 잘 알려져 있다. 신부들과 주교가 짜고 치는 고스톱을 하다 보니 사제의 아동에 대한 성폭행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고 감추어진 것이다. 어느 조직이나 폐쇄적이고 독재적인 지배 체제가 만들어지면 반드시 부패하게 되어 있다. 가톨릭교회도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유럽과 미국의 많은 가톨릭교회가 사제의 아동 성폭행 사건으로 스스로 증명했다.     


이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가톨릭교회가 여러 가지 조처를 했지만, 근본적으로 남성 성직자 중심으로 교회를 운영하는 이른바 성직주의가 타파되지 않는 한 구조적 부패와 타락을 막을 길이 없다. 그래서 독일 가톨릭교회가 제2의 종교개혁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바티칸의 늙은 남성 성직자들이 이를 놔둘 리가 없다. 이들이 독일 주교회의에 보낸 서한에는 반대하는 이유가 분명하다. 곧 교회법에 안 나와 있는 조직을 만들고 있는 불법을 독일 가톨릭교회가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맞다. 시노드 위원회는 교회법에 어긋난다. 그러나 그 교회법은 남자만이 성직자가 되고 성직자만이 교회를 통치할 수 있다는 시대착오적인 대원칙에 따라 만들어진 규칙일 뿐이다. 한 마디로 예수가 교회법을 만들지 않았다. 그런데도 예수를 기독교 교회 설립자로 주장하는 가톨릭교회가 예수가 만들지 않은 법을 들먹이며 위기에 처한 독일 가톨릭교회의 생존을 위한 노력을 방해하고 나선 것이다.     


물론 독일 가톨릭교회 안에도 보수주의자들이 있다. 특히 주교들 가운데 몇몇은 이 시노드의 길에 노골적인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독일 가톨릭교회의 대세는 제2의 종교개혁이다. 가톨릭교회가 이대로 남성중심주의, 교계주의, 성직주의에 집착하면서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버티면 결국 다 망한다는 인식이 독일 가톨릭교회의 평신도만이 아니라 성직자들 사이에도 공유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바티칸에서 독일 주교회의 의장에게 보낸 서한을 살펴보자. (참조: https://www.dbk.de/fileadmin/redaktion/diverse_downloads/presse_2024/2024-02-16_Brief-aus-Rom_sds.pdf)     


내용의 요지는 간단하다. 독일 가톨릭교회가 중앙본부인 바티칸의 말을 듣고 시노드 위원회 설립 절차를 중단하라는 것이다. 특히 다음 구절은 명백히 독일 가톨릭 주교회의가 수립 절차에 들어간 시노드 위원회를 반대하고 있다.     


“Die Approbation der Satzung des Synodales Ausschusses stünde daher im Widerspruch zu der im besonderen Auftrag des Heiligen Vaters ergangenen Weisung des Heiligen Stuhls und würde ihn einmal mehr vor vollendete Tatsachen stellen.”     


한 마디로 바티칸이 말한 대로 군말 말고 취소하라는 말이다. 시노드 위원회 규정을 절대로 승인할 수 없으니 말이다. 물론 바티칸이 개별 교회의 결정을 맘대로 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다음 문장이 다음과 같이 이어지고 있다.     


In dieser Hinsicht wurde im vergangenen Oktober gemeinsam vereinbart, die ekklesiologischen Fragen, mit denen sich der Synodale Weg befasst hat, einschließlich des Themas eines überdiözesanen Beratungs- und Entscheidungsgremiums, beim nächsten Treffen zwischen Vertretem der Römischen Kurie und der DBK zu vertiefen. Sollte das Statut des Synodalen Ausschusses vor diesem Treffen verabschiedet werden, stellt sich die Frage nach dem Sinn dieses Treffens und ganz allgemein des laufenden Dialogprozesses.


Wir geben Ihnen die hier geäußerten Hinweise zu bedenken und vertrauen darauf, dass sie in der Diskussion bei der bevorstehenden Vollversammlung der DBK Berücksichtigung finden.


한 마디로 독일 가톨릭 주교회의가 더 논의해서 바티칸이 원하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리라는 말이다. 이는 개별 교회의 자율권에 대한 노골적인 침해다. 과연 루터의 종교개혁 정신이 살아 있는 독일 교회가 이를 고분고분 받아들일까? 이 편지는 2024년 2월 16일 바티칸의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신앙교리부 장관 빅토르 페르난데스, 주교부 장관 로버트 프리보스트 공동명의로 발송된 ‘무게 있는’ 것이다. 그러니 무게 있는 답장을 독일 주교회의가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답이 나올지는 이미 예상이 된다. 작년 2023년 1월 16일 바티칸은 비슷한 논조의 서한을 독일 가톨릭 주교회의에 보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신을 2023년 2월 23일 독일 가톨릭 주교회의 의장 게오르크 베칭 명의로 보냈다.(참조: https://www.dbk.de/fileadmin/redaktion/diverse_downloads/presse_2023/2023-02-23_Brief-Bi.-Baetzing-an-Kardinaele_Parolin_Ladaria-Ferrer_Ouellet.pdf)     


이 답신의 내용은 바티칸이 우려하는 것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결국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말이다. 그 말대로 독일 가톨릭 주교회의는 시노드 위원회를 구성하고 이를 발족할 것을 결의하였다. 바티칸의 말을 안 들은 것이다. 그러자 서두에 인용한 서한을 바티칸이 다시 보낸 것이다.     


과연 이 싸움의 결말이 어찌 날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종교 개혁을 전 세계적인 유행으로 만들어 버린 마틴 루터가 가톨릭 사제였다는 사실에서 다시 한번 독일 가톨릭 사제들의 반란이 기대되는 마음을 숨기기 힘들다. 더구나 이번에는 가톨릭 사제 한 명이 아니라 베칭 의장 주교가 보낸 서한에 나와 있듯이 ‘겨우’ 5명의 주교만 시노드의 길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독일 가톨릭교회의 현실이다. 누가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강물을 막을 수 있을까? 천하의 바티칸도 이번에는 힘들 것이다. 주일에도 아무도 안 찾는 교회 건물만 수호하고 다 늙어가는 신부들끼리 모여 산다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워진 교회를 지킬 수는 없는 법이다. 신자가 다 떠난 교회를 지켜봐야 무슨 소용이 있나? 그런 교회는 예수도 떠날 것이니 말이다. 독일 가톨릭교회가 지금 진행하는 종교 혁명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더구나 바티칸이야말로 돈과 섹스에 관련된 추문으로 가톨릭 교회 안에서도 매우 썩어 빠진 조직이 되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에 여러 차례 공개된 마당에 바티칸의 권위는 사라지고 권위주의만 남은 상황에서 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런 바티칸의 부패를 걷어내고 개혁해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바티칸을 장악한 로마 추기경 사단의 힘을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세평이 이미 자자하다.


독일 가톨릭 주교회의의 의장인 베칭 주교는 2020년 독일 림부르크 교구의 교구장으로 임명된 1961년 생 새내기 주교다. 전임 주교였던 Tebartz-van Elst가 가난한 교구 사정도 아랑곳 하지 않고 화려한 중세 궁전 같은 주교관을 짓는 사달을 벌여 신자들의 증오심과 반발을 촉발하고도 끝까지 버티다가 결국 쫓겨난 자리를 물려받았다. 지금까지 베칭 주교가 보여준 행보는 바티칸이 보기에는 매우 진보적일 수 있지만 독일 신자들의 수준에서 보기에는 아직도 보수적이다. 그러나 독일 가톨릭 교회의 주교들의 회의체인 주교회의 사무총장을 여자 평신도가 임명될 만큼 독일 가톨릭 교회는 진보적이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주교회의 사무총장은 남자 신부가 차지하는 것이 교회법과 같은 상황에서 볼 때 그렇다. 한국과 같은 나라의 가톨릭 교회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독일 가톨릭 교회에서는 이미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가톨릭 신부의 아동 성추행, 간음, 돈과 관련된 스캔들이 언론에 보도되지 않고 조용히 묻히는 한국에서는 감히 독일 가톨릭 교회와 비교될 수 없을 정도다. 아마도 나중에 독일 가톨릭 교회가 제2의 종교 개혁을 일으킨 다음에도 한국 가톨릭교회는 보수성을 그대로 간직할 것이다. 흔히 하는 말대로 한국 가톨릭교회는 로마보다 더 로마적인 단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그저 바티칸에 기쁨 주고 사랑받는 것이 전부인 마인드로 살아가다 보면 한국 가톨릭교회는 제2의 종교 개혁의 기회도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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