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포건달 May 08. 2024

FW #15, 부천(23.10km)

누적거리: 547.18km, 누적시간: 97시간 50분


모처럼 회사에서 군부대 장병들 코칭 면담을 주제로 사회공헌 활동을 갈 일이 생겼다. 제대 후 군부대는 오랜만이라 이전과는 환경이 어떻게 다를까 궁금도 했고, 위치가 경기도 ‘부천’이라 처음 걸어보는 코스로써 호기심도 생겼다.


예전에 부천을 몇 번 지나쳐가보기는 했으나, 딱히 연고가 있어 직접 방문해 볼 일은 없었다. 게다가 나는 부천과 부평의 위치를 자주 헷갈려했다. “어디가 더 서울에서 가까워?” 하면, 부천에 사는 후배는 부평하고 비교한다고 어이없어하기도 했다. 서울 사는 내가 보기에는 거기서 거긴데 말이다.

부천시(富川市)는 경기도 중서부에, 서울시와 인천시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남쪽으로는 시흥시, 광명시와 접한다. 부평의 지명은 1914년 부평의 '부'와 인천의 '천'을 따서 붙인 것이며, 복숭아가 많이 난다고 하여 예로부터 '복사골'이라는 별칭으로 불려 왔다. 그래서 부천시의 상징물은 ‘복숭아’다.


사회공헌은 미니버스를 대절하여 오후 시간에 갔다가 바로 퇴근하는 일정이었다. 개인적으로 부천에서 서울로 혼자 걸어서 퇴근해도 되는지 담당자에게 물어봤더니, 눈이 휘둥그레 해지며 놀랜다.


“어차피 퇴근하시는 거라 괜찮기는 한데, 이 더위에 부천에서 서울까지 걸어간다구요?!”


담당자는 가당키나 하겠냐고 혀를 내둘렀다. 사실 누구라도 미친 짓이라 할만했다. 긴 장마가 끝나고 드디어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한낮의 체감 온도는 33도에 육박하고 있었다.


“ㅎㅎ 한번 경험해 보려고요.
음.. 재밌을 것 같은데요?”


내가 웃으면서 말하니, 담당자는 무리해서 탈 나지 말라고 주문한다. 잘못되면 산업재해? 그나저나 이미 내 머릿속은 걸을 생각으로 흥분되어 있었다. 지난번 마포에서 구리까지 동쪽으로 걸었으니, 이제는 서쪽 방향이다. 거리는 대략 20km로 거의 비슷하지만, 그때는 폭우가 내렸고 지금은 폭염이 다를 뿐.




날씨가 어찌나 뜨거운지 에어컨을 잔뜩 켰는데도 미니버스 안은 그다지 시원하진 않았다. 뒤척이다 잠이 들었을까? 우리를 태운 버스가 어느새 부천 군부대에 도착해 있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바리케이드와 부대 정문 앞 헌병이 낯설지 않았다. 저만치 근거리에 아파트도 보이고, 바로 옆 대로변에 차들도 많이 지나다니는 것이, 너무 외지지 않아서 걸어 나오기에는 큰 무리가 없어 보였다. 그 사이 장병 하나가 손짓을 했다. 우리는 곧바로 버스에서 내려 군 관계자의 인도를 받아 대강당으로 이동했다.


멘토링 코칭은 전역이 얼마 남지 않은 말년 병장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학교에 복학하는 일부터 직장 면접을 준비하는 일, 또는 무슨 일을 하면 좋을지에 대하여 두루두루 선배 입장에서 조언을 해 주었다. 뿌듯함보다는 그들과 나 사이의 세대 차이가 커서 나의 조언이 이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하는 못 미더움이 더 컸다. 그래도 눈 초롱초롱 빛내면서 들어주니 내가 더 고마웠다.


80분 남짓, 이야기하고 들어주고 하니 예정된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멘토링이 끝난 장병들이 고맙다고 배웅을 나온다. 부대를 나와 직장 동료들과 귀가 인사를 나누고 마포 집으로 걷기 시작했다. 막상 부대를 나오니 큰 대로변도 휑 하다. 눈앞에 보이는 아파트도 건널목을 한참 찾아야 건너갈 수 있었다. ‘아이고… 길 하나 건너는데도 짓궂구나.’ 오후 3시가 넘어가자 태양의 열기는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심하다. 더워도 너무 더웠다. 차라리 비를 흠뻑 맞으며 걷는 것이 훨씬 나았다. 모자도 없이 땡볕을 걸으니 온몸이 홍수다. 가는 길에 가로수도 보이질 않는다. 나무 그늘도 별로 없는 큰 대로변을 따라 걸으니, 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까지 더해져 몸 자체가 반숙이 되어간다.


부천 시내까지 나오자 여기저기 사람들도 복잡대고 가게들도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다이소’에서 5천 원짜리 모자 하나를 샀다. ‘와… 모자만 써도 살 것 같구나.’ 아내에게 문자로 모자를 샀다고 자랑을 하니 바로 답변이 온다.

“도대체 집에 모자가 몇 개나 되는데,
또 산 거야?”


아… 괜히 이야기했다. 남편이 땡볕에 죽든 말든, 아내는 모자 개수가 더 중요했나 보다. 이 땡볕에 걷는 내가 더 바보지. 사실 할 말은 없었다. 더 잔소리가 될까 봐 문자에 답변을 달지 않았다. 읽씹.


군부대 근처에 아파트가 즐비하다. 뜨거운 오후가 적막하다
한국폴리텍대학교 인천캠퍼스
부천 시내로 접어들고 대로변을 따라 걷는다. 그늘이 없다
정말 뜨거운 도로 길. 결국 다이소에 들어가 모자 하나를 구입했다




부천에서 마포로 걸어가는 길은 아주 간단하다. ‘경인로’ 하나만 쭉 따라가면 되는데, 1936년에 개통된 경인로는 인천시 미추홀구부터 여의도까지 이어진 단일 도로이다. 생각해 보니 도로명만 바뀔 뿐, 큰길 하나만 따라가면 인천에서 구리까지 갈 수도 있다.


부천에서 소사, 역곡을 지나면 ‘유한양행’ 재단에서 운영하는 ‘유한대학교’가 나온다. 유한대학교 건너편에 새로 지어진 아파트(e편한세상-온수역 아파트)를 왼편에 끼고, 오류 IC를 향해 힘겹게 언덕을 탄다. 열기에 아지랑이마저 신기루가 되고, 목은 마른데 한참을 둘러봐도 가까운 편의점이 눈에 보이질 않았다. 물도 필요하고 당도 떨어져 간다.


여름 한나절을 걷다 보면 물 값이 장난이 아니다. 그렇다고 무거운 물을 몇 개씩 들고 다닐 수도 없고. 편의점 물을 몇 병씩 사 먹다 보면 1만 원도 순식간이다. 네비를 보니 아파트 끝자락에 편의점이 위치해 있다. 멀기도 하고 비싸서 안 간다. 참자. 이윽고 경기도 끝자락을 지나 서울땅을 밟았다.

유한대학교 전경. 신식 건물로 잘 지어놨다



항상 도시의 경계는 많은 것들이 휑하다. 경기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오류동을 넘어 ‘고척스카이돔’까지 단조로운 길이 계속되었다. 야구장 근처까지 오니 ‘키움 히어로즈’ 유니폼을 입은 젊은이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평일인데도, 회사 업무 마치고 야구 보러 오는 모습이 참 부럽다. 그들이 땀에 젖은 나를 이상한 눈으로 힐끔 본다. 나는 힘이 없어 대 놓고 그들을 본다. 힐끔거릴 힘도 없다. ‘자네들, 야구나 보셔. 난 걸을 테니. 미친놈이지, 이상한 놈은 아닐세.‘

위)고척스카이돔. 아래)도림교. 어느새 하루해가 뉘엇뉘엇 지고 있다


도림교를 넘어 영등포, 여의도까지 오는 길에 해가 다 졌다. 어둑어둑한 틈으로 한강이 보이기 시작하니 또 한 번의 대견스러움에 스스로 웃는다. 흐흐흐… 지난주 구리에 이어 부천까지, 서에서 동으로 50km를 횡단 한 셈이다.

드디어 여의도를 지나 한강에 도착했다, 벌써 밤이 깊어간다


부천의 한낮 열기를 머금고 한강에 뿌린다. 강은 유유히 흘러 내가 가져온 부천의 공기 바람을 또 저만치로 끌고 간다. 누구한테나 오늘은 의미 있는 날이겠지만 나만치로 미쳐보진 않았겠지, 스스로 자축하고 나니 마포집에 들어서자마자 잔소리하는 아내의 소리도 꽤나 괜찮았다. 그제야 나도 힐끔 웃어 주고, 오늘을 마주했다.


- 끝

부천 17보병사단 > 부천역 > 소사 > 역곡 > 오류 > 구로 > 당산 > 영등포 > 여의도 > 마포로 이어지는 총 23.10km, 걸음 수 26,013보


이전 09화 FW #11, 삼청동(14.42km)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