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거리: 651.35km, 누적시간: 129시간 35분
표지사진: 서울시 은평구 진관동 ‘스타벅스 북한산점’
은평 북한산 낮은 자락으로, 나는 걷고 생각하고 씁니다
뜨거운 23년 8월 초 여름, 일요일 아침에 떠난다. 걷기 프로젝트 스무 번째, 오늘 목적지는 ‘스타벅스 북한산점’이다. 일전에 직장 상사가 여기 커피숍이 경치도 좋다고 해서 일찌감치 점찍어 둔 곳이다. 사실 북한산을 가 볼일은 별로 없었는데, 더욱이 은평구로 해서 북한산 가는 길은 처음이었다.
마포집에서 경로를 검색하니 약 15~16km 정도 나온다. 걷기에 딱 좋고, 운동을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거리. 게다가 생소한 코스이니 생소함이 주는 생경함은 얼마나 낭만적일까. 태풍 ‘카눈’이 상륙하기 이틀 전이라 폭염이 끝내 준다. 한낮 최고 기온이 36도를 가리킨다. 이런 날 걷는 행위는 건강한 몸을 해친다고는 하지만, 땀을 흠뻑 적신다는 기대감에 가슴이 뛰었다.
먼저 신촌으로 향했다. 연대 앞 신촌 거리는 아주 오랜만이다. 젊은 날, 대학 친구들과 어울려 새벽 늦게까지 술집을 기어 다닌 추억이 새록새록하다. 친구 몇몇은 술을 옴팡 퍼먹고 집에서 잔다고 들어간 것이 한 명은 공중전화, 한 명은 동네 병원에 기어들어가 자다 걸린 이야기는 매 순간 술안주 꺼내 먹듯, 듣고 듣고 또 들어도 한참을 웃는다.
90년대 대학교 앞 거리는 늘 젊음의 열정이 가득 묻어나는 거리였고 시끄러웠다. 당시에는 고성(高聲)도 당연했고, 노는 문화가 지금처럼 다양하지 못했던지라 만나면 노래방 가고, 당구 치고, 술 마시고 그랬다. 요즘 시대 그런 낭만이 사라진 건지, 그런 낭만을 느껴 볼 젊은 내가 사라진 건지는 모르겠다.
신촌을 지나 연세대학교를 바라보고, 연희 IC방향으로 향한다. 흙길이 아닌 편석이 가득 찬 도로를 밟고 가면 울퉁불퉁 발목에 파도가 친다. 평지로만 가득한 서울 도심이었다면 재미가 있었을까? 골목마다 굽이치고, 바로 앞 신호등이 멈추면 제 걸음도 멈추어야 한다. 리듬이 끊어지면 더 힘이 드는 법이라, 저 앞의 신호등을 맘속으로 계산하며 걸음 속도를 조절한다. 때로는 가볍게 보이는 언덕길도 여러 번을 거치게 된다.
연희로를 따라 서대문 방향으로 계속 걸어간다. 서대문구청을 지나면 홍제천 ‘홍제내길‘로 빠지게 된다. 터벅터벅 더운 길을, 그냥 걸어가기가 심심해 음악을 듣는다.
내 시절의 노래도 아니고 트로트를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상하게도 옛 가수 ‘명국환’님의 노래를 자주 듣게 된다. 어느 날 TV에서 90이 훌쩍 넘은 노년의 명국환 님을 인터뷰한 방송을 보았는데, 궁금해서 찾아보고 노래를 들었더니 이후 한두 번으로 그치지 않게 되었다. 그 시절, 내 시절도 아닌 레트로적 시대에 빠져 든다. 그분의 인생은 어땠을까? 그 시절 부모님들은 어떤 애틋한 추억과 생환을 담고 있었을까? 듣다 보면 내가 그 시절의 일상으로 들어가진다. 그리고 빠져드는 그 현상을 나는 즐거워하는 것 같다. 특히 명국환 님의 ‘내 고향으로 마차는 간다’라는 노래가 참 좋다.
벤조를 울리며 마차는 간다 ~ 마차는 간다 ~ 저 산골을 돌아서 가면, 내 ~ 고향이다 ~
오전 시간이 오후로 넘어서자 본격적으로 태양 열기가 구름을 뚫고 내려온다. 홍제천을 지나니 녹번동, 녹번동 그 언덕을 넘어가니 불광동으로 이어진다.
불광동을 걸어서 와 본 적이 있던가? 젊은 날 ‘송추’로 예비군 훈련을 갈 때마다 지나쳤던 불광동은 그 시절 언덕만 남아 있는 듯하다. 주변 나지막한 집들은 전부 사라지고 신축 아파트가 즐비하다. 열심히 아파트 구경도 하면서 은평으로 빠지니, 골목골목 옛 집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아직은 좁고 낡은 건물들이 다음 세대를 기다리는 것 같다. 그 낡음이 좋아서, 꼭 높은 건물이 아니더라도 낮은 공간으로 어슬핏 삐져나오는 여백에 사진 찍는 즐거움이 있다.
불광에서 ‘독바위역’을 지나면, 은평 뉴타운 지역이 나온다. 깨끗하고 정갈한 아파트가 숲과 어우러져 있다. ‘여기도 참 살기 좋은 곳이네’ 생각하며 걷는다.
북한산이 보인다. 대략 3시간을 걸은 듯한데, 더운 탓에 거리가 더욱 멀게 느껴졌다. 오는 내내 생수값이 또 한참 들어간다. 물 값 아끼려고 버스나 택시 타는 게 훨씬 나을 듯하다. 걸을 때만 있을 수 있는 법칙. 더위에 걸어보지 않는 이상, 물 값 비싼 줄 아무도 모른다.
드넓은 평원에 한옥들이 보인다. 전혀 정보가 없던 상황에서 놀라웠다. 북한산을 옆으로, 꽤나 넓은 지역을 ‘은평한옥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주민들보다 관광객들이 더 많다. 그 건너에는 유명한 자사고인 ‘하나고등학교’가 있다. 혹시나 해서 꿈을 키워보라고 사진을 찍어 중2 딸아이에게 보냈는데, 시큰둥하다. ‘뭥미’ 그런다. 다 알면서도 서로 원하는 대답을 비켜간다. 그런 상황들이 꽤나 재밌다.
드디어 목적지인 ‘스타벅스 북한산점’에 도착했다. 땀이 범벅이고 차가운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싶다. 그래도 이곳에서는 시그니처 음료인 ‘북한산 레몬 얼그레이 블렌디드’를 먹어야 한덴다. 혼자 케잌 한 점과 아이스커피 그리고 시그니처 음료 등, 총 두 잔을 주문했다.
이렇게 스무 번째 걷기 프로젝트가 끝났다. 전체 거리는 23.09km이다. 돌아오는 길은 연신내에서 멈추었다. 더 이상의 무리는 건강을 해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
걸으면서 보고 느끼는 감정은 잊을 수 없다. 걷고 생각하는 시간을 곱씹어볼 수 있다. 굵은 칡 하나를 질겅질겅 씹듯이, 쓰고 달달한 내 생각과 보이는 그림들을 몸에 켜켜이 채우는 느낌이다. 그렇게 걸었던 그 길을 다시 걷고 싶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