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포걷달 May 01. 2024

FW #11, 삼청동(14.42km)

누적거리: 419.22km, 누적시간: 70시간 51분

표지사진: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 ‘여름 대금 소리’


Start


일전에 지인으로부터 시계 하나를 선물로 받았었다. 개인적으로는 낯선 브랜드였고, 또 제대로 사용할 줄을 몰라 그냥 시계 위주로만 착용했었다. 그런데 내가 ‘걷기’를 하면서 이것만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시계는 정말 스마트했다.

Sports Watch ‘SUUNTO 5’ Black


오늘도 걷기를 시작하면서 시계를 작동하니, 오늘로써 60번째 걷기 운동이라고 뜬다. 일상 걸음은 그냥 하루 몇 보 걸었는지만 표기되지만, ‘걷기’ 프로그램을 가동하면 그것은 별도의 데이터로 코스까지 완벽하게 기록이 된다. 결국, 기록이 없는 걷기는 걷기가 아닌 게 되어 버렸다.


핸드폰에도 경로를 기록하는 앱이 있지만, 종일 GPS를 측정하느라 배터리가 쉽게 닳아버린다. 하지만 스마트 시계는 그것을 오랫동안 기록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특히 내가 가지고 있는 시계는 스포츠에 특화되어 있어서 지면의 높고 낮은 정도와 위치, 그리고 심장박동 수도 분 단위로 기록이 된다. 아주 기특하다.




오늘은 따로 목적지를 정하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혜화동에 사는 고등학교 동창 녀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뭐 하냐? 밥이나 같이 먹자?”

그를까? 늘상 한참을 걷게 되면 혼밥을 해야 했다. 또, 휴일이지만 업무 때문에 잠깐 종로에 나와있던 터라 혜화동이 가까운 이유도 있었다.


예전에 마포에서 혜화까지 걸어간 적이 있었는데, 정확하게 10km가 찍혔다. 종로에서는 대략 5km 거리 정도에 불과하다. 인사동으로 빠져 서울대 병원까지 이동하는 아주 일반적인 코스인데, 오늘은 혜화동을 가는 김에 ‘삼청동’까지 탐방하기로 했다.


서울 ‘삼청동’은 경복궁을 옆에 끼고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수 백 년 역사의 전통 가옥들이 즐비한 동네이다. 가회동, 삼청동, 계동을 묶어 흔히 ‘북촌한옥마을’이라 부르는데, 공방과 찻집 그리고 작은 박물관들이 즐비하게 부락을 이루고 있다.

삼청동(三淸洞)은 도교에서 지향하는 이상향인 '삼청'과 이를 위해 '초제'를 집행한 소격서의 삼청전이 이곳에 있었기에 삼청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으나, 도교적 관념이 약해진 조선 후기에는 '산과 물, 그리고 인심'이 맑다는 의미에서 '山淸', '水淸', '人淸'이라고 하여 삼청동이 되었다 - 나무위키


오늘도 날씨는 여전히 낮게 구름을 드리우고, 금방 비를 쏟아낼 마냥 잿빛으로 가득하다. 2023년 여름은 폭염으로도 유명했지만, 장마 또한 6월 말부터 7월 말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장마 후 폭염을 미리 예고하듯 열심히 비를 뿌리고 습한 기온으로 열풍을 쌓아 놓는다.


종로, 인사동에서 빠져나와 경복궁을 슬쩍 쳐다보고 오른쪽으로 틀어 삼청 율곡로 입구로 들어섰다. 계속 내린 비로 초록이 화사하다. 골목에 들어서자 우아한 대금 소리가 벽을 타고 건너온다. 잠깐 비가 그친 사이로 산책하는 아이들의 소리가 대금 가락과 이리저리 섞여 발걸음도 가볍다. 노랑 수국을 마주한 ‘덕성여자중학교’도 정겹다.

삼청동은 기와집과 현대 건물이 잘 어울어진 역사의 동네이다
삼청동엔 고즈넉한 문화가 있다. 문화로 둘러쌓인 덕성여중 학생들은 얼마나 좋을까?



발걸음이 가볍다. 가까운 거리라 총총 거리며 걷는다. 이내 혜화동에 도착했다. 혜화동로터리 옆에 아주 오래된 칼국수집이 있는데, 거기서 친구를 만나 국수 한 그릇을 먹는다. 고(故) 김종필 총재께서 자주 다닌 집이라고 한다. 칼국수는 안동 국시에 가까워서 면이 얇은 편이다. 그리고 간장으로 맛을 낸다. 특히 이 집은 생선튀김이 끝내주는데, 막상 먹지는 못했다. 바삭바삭 옆테이블에서 먹는 소리로 음미만 했다. ‘불쌍하도다‘


칼국수집 바로 맞은편에 커피집이 있다. ‘칼국수 다 먹었으면 커피!’라는 공식인 듯, 당연하게 커피집으로 들어간다. 혜화동콩집? 이름이 정겹고, 로스팅이 아주 끝내준다.

혜화동로터리 옆, ‘혜화칼국수’와 맞은편 ‘혜화동콩집’은 이 지역 최고의 음식점 중 하나이다.


이전 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20~30대에는 맨날 노는 이야기만 하다가 나이가 들어서니 자식 이야기며 투자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둘 중 한 놈이라도 성공하면 서로 밥이라도 두둑이 얻어먹을 모양새이지만, 좀처럼 그날이 오지를 않는다. 항상 그랬지만, 서로 똥손이라고 낄낄대며 하대하는 것도 참 즐거운 시간이다.


오늘처럼, 어떤 동네를 탐방하다 그 동네에 사는 지인을 번개로 만나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실천하진 못했다. 다 내 마음 같지 않고, 또 한참을 걷다 보면 땀냄새와 몰골이 아주 험하니까. 이런 모습은 나만 간직하는 것으로, 그들도 결코 원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다.


걷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소재거리가 떠오른다. 영상을 찍어 유튜브를 올릴까? 맛집 탐방으로 블로그를 장식할까? 지인을 찾아가 사는 이야기를 인터뷰할까? 하지만 이내 접었다. 숨이 턱턱 막히며 걷는 것도 힘겨운 여름이다.


식사를 마치고 성균관대 뒤쪽으로 해서 삼청터널을 지나 다시 삼청동으로 빠지기로 했다. 잘 몰랐는데, 혜화동에 참 좋은 학교들이 많다. 혜화동에서 명륜로 고개로 넘어가는 길에 혜화초등학교, 서울과학고등학교와 서울국제고등학교가 마주 붙어 있다. 조금 지나니 한양도성길이 나오고, 이내 ‘와룡공원’으로 들어선다.

와룡근린공원은 삼청근린공원, 창경근린공원, 북악산 도시자연공원이 연접해 있는 곳으로 용(龍)이 길게 누워있는 형상을 하여 와룡동이라고도 한다. 안타깝게도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선균 배우가 유명을 달리한 장소이기도 하다.


와룡공원을 지나 한양도성을 따라 언덕을 오른다. 성벽아래를 옆에 끼고 걷는데, 성벽이 참 높다는 생각을 했다. 이 정도면 사람이 기어오르기 어렵겠구나? 성벽 위에서 볼 때와 아래에서 볼 때가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생각해 보니 지금껏 성벽 아래를 걸어 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남산 위에서 바라보거나 인왕산 오르는 길에 낮은 성벽을 옆에서 보거나. 수많은 전쟁에서 나라를 지켜온 위엄과 대단함이 선조들의 존경과 함께 다가왔다.


성벽 바로 옆으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마을이 보이는데 ‘북정마을’이라 부른다. 처음 오는 동네이고 낡은 슬레이트 지붕에 초록나무가 울창하다. 매우 조용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음습하다.

서울시 성북동에 위치한 북정마을은 서울의 대표적인 성곽 마을이다. 성곽 마을이란 성곽 120m 내외로 맞닿은 부근에 도로, 지형 등으로 분리된 마을로 성곽과 더불어 마을 특성과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주거지역을 말한다. 북정마을은 이름의 유래가 재미있다. 조선시대 때 궁궐에 바치는 메주를 쑤는 일이 이 동네에 주어지면서, 메주를 만들기 위해 온 마을 사람들이 북적북적했다 하여 북정마을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 서울시청


낮은 구름아래 북정마을 집들이 성곽에 붙어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그 오래 된 이야기와 삶이 갑자기 궁금해진다.
와룡공원길을 따라 삼청로로 빠진다. 삼청로와 북청로가 만나 북촌마을로 행인을 인도한다.


와룡공원길을 빠져나오니 다시 삼청동이다. 삼청로에 수많은 찻집과 음식점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경복궁을 지나치려다 그 안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도 잠시 들린다. 끝내 비는 오지 않았고, 덥지만 내내 흐린 구름 덕분에 기분이 좋다. 그래도 산을 타서인지 발목이 시큰하다.


마포 집 끝까지 걸을까 하다 버스를 탄다. 도저히 걸어서 사직터널을 빠져나갈 궁리가 보이지를 않았다. 경복궁에서 버스로 사직터널을 지나 연희동까지 이동하고 다시 경의선 숲길을 따라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날이 어둑하다. 내일 출근할 생각을 하니 내 머릿속도 어둑해진다. 걷고 왔더니 휴일이 끝났다.


-끝

경복궁 내, ‘국립민속박물관’
종로 > 삼청동 > 서울대병원 > 혜화 > 성북한양도성길 > 삼청동 > 연희동으로 이어지는 총 14.02km, 걸음 수 18,080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