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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포걷달 Apr 17. 2024

FW #8, 문래동(21.43km)

누적거리: 292.63km, 누적시간: 46시간 37분

표지사진: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동2가 ‘이쁜 너’


또 나가?

염치없지만, 어제 토요일에 이어서 오늘도 걸으러 나왔다. 아내가 뭐라 하는데, “남편 건강 챙겨야 돈 벌어오지”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뱉고 후다닥 나왔다. 그래도 어제 사다 준 ’빵‘의 효과가 있었기에, 문자 한 통을 남겼다. ’이따 들어갈 때, 또 뭐 좋은 거 있으면 사 갈게‘.



나는 탐험가이다

오늘은 영등포구 ‘문래동’을 탐험하기로 했다. ‘문래동’은 탐험이라는 말이 왠지 잘 어울린다. 문화와 창작의 동네이기도 하고, 또 낡고 오래된 철공소들이 공존하니까. 그 둘의 조합은 이질감이 없다.


90년대 문화 동네는 주로 홍대, 합정이었는데, 땅값이 비싸지고 건물 임대료가 비싸지면서 예술가들이 ‘문래동’으로 많이 넘어왔다. 비어 있는 철공소를 있는 그대로 꾸며 예술로 채우고 이야기를 담근 지 20년이 되어간다.

문래동의 문래(文來)는 ‘글이 온다’라는 뜻으로, 동네 이름 유래는 다양하다. 예부터 근처 글방이 많아서 문래, 일제강점기 방직공장이 많이 들어서서 문래, 문익점의 손자 이름이 문래(文來)인데, 이 동네에서 실 뽑는 기계 ‘물레’를 대량 개발했다고 해서 문래라 한다.


늦은 오후 하늘은 맑고, 마포대교 위 걷는 발걸음도 맑다. 저 건너 63 빌딩이 그렇게 찬란할 수가 없는, 바다도 아닌 것이 파도를 품어 그리움으로 넘실댄다. 나는 쭈욱 걷고, 또 걸어 영등포를 지나 문래로 간다.

마포대교 북단,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저 숲은 아마존보다 깊다
마포대교 위에서 황금을 품은 금빛으로 태양과 어우러지는 63빌딩이 멋지다. 그 옆으로 시범 아파트들이 언제 올지 모를 재건축을 기다리고 있다


마포역에서 문래동까지 직선거리는 5.6km이다. 걸어서 가도 한 시간이면 족하다. 벌써 태양은 하루 일을 다 하고 퇴근을 준비한다.

마포에서 문래동은 마포대교를 건너 여의도만 넘으면 금방이다


영등포에 다다르니 짙은 철공 냄새가 도로변을 타고 온다. 서울 다른 동네에서 찾아보기 힘든 ‘녹슨 삶’의 현장이 줄을 지어 있다. 일요일 늦은 오후, ‘일 터’는 굳게 닫혀 있는 반면, 골목 사이로 문화의 향기가 은은하게 동네를 밝히고 있었다.


골목을 한쪽으로만 직진하지 않고, 이리저리 휘저어 간다. 성수나 합정동에 비해 사람들이 아주 많지는 않다. 낡은 건물에서 흘러나오는 강력한 비트에 흐느적거리는 젊은이들도 보이고, 때로는 일본에 온 듯한 간판과 거리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철공은 나름의 색을 품어 지역을 이야기한다. 말을 하지 않아도 속닥댄다
문래동은 갤러리가 풍부하고, 카페도 넉넉하고, 특히 예술을 감싼 독특한 음식점들이 많다. 스테이크가 맛 있는 ‘양키스그릴‘도 있고, 커피가 좋은 ‘카페1953위드오드리’도 있다.


신진 작가들의 등용문이기도 하는 ‘갤러리문래 골목 숲길’로 들어서니, 골목 벽들마다 작품들이 가득이다. 그림도 보면서 와인 한잔 할 수 있는 세트도 마련되어 있다. 하나의 동네가 예술작업실에서 작품실로 변모하는 데에 10년이 걸렸고, 또 지금처럼 다양한 카페와 휴식처가 결합되기까지 10년을 이어 온 것 같다.


복작거리는 골목을 지나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철공소 골목으로 더욱 들어가 걷는다. 2년 전, 지인의 부탁으로 ‘인디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었다. 장소가 문래였고, 새벽 아무도 없는 철공소에서 촬영하는데, 정말 무섭더라. 문래의 한쪽은 스릴러와 오컬트를 담고 있기도 하다.

갤러리 문화 공간을 다정다감하게 데이트 하는 커플들
지금의 문래동은 갑자기 만들어진것이 아니라, 방직공장의 역사에서 철공소, 그리고 예술과 창작으로 이어지는 독특한 문화로 계속 성장하는 동네가 되었다


천국길을 걸어서 집으로

어떻게 집으로 돌아갈까 고민하다가 지도를 보니 ‘도림천’과 ‘안양천’이 가까이 있다. ‘그래, 여기를 빙 둘러서 가보자구’. 벌써 저녁 시간이 훨씬 지나고 있었다. 어제도 꽤 걸었는데, 아직 발목은 문제없다고 오늘도 나를 먼 거리로 떠밀고 있다.


문래현대아파트를 지나 안양천으로 빠졌다. 이제 시간은 제법 어둑해져서 안양천의 유명한 벚꽃나무도 잘 보이지 않는다. 운동하는 사람들을 뒤따라 안양천을 왼 편에 두고 성산대교 방향으로 걸었다.


가는 길에 너무 좋았던 것이 수백 미터에 달하는 백합꽃길이었다. 밤에 보아도 백합의 자태가 흐트러지지 않는 걸 보니, 낮길이었다면 더욱 환상이었을 것 같다. 7월은 가히 백합의 계절이다. 벚꽃길 안양천이 절대 부럽지 않은 백합길을 걷다 보니, 노래 한 소절이 절로 나왔다가 급히 거둬들였다.

오~ 내 사랑, 목련화아야~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


목련화가 아니면 어떻냐만은, 나도 모르게 내뱉은 노래에 키득댔고 그렇게 밤은 내 발의 끝을 찾아 짙어가고 있었다. 그나저나 오늘 ‘아무것도 못 샀네?


7월, 안양천의 백합꽃길은 너무도 아름답고 향기로 가득하다
어느새 한강은 찬란한 태양이 지고, 달빛이 가득한 야경으로 출렁인다


- 끝

마포역 > 영등포 > 문래동 > 안양천 > 합정으로 이어지는 총 21.43km, 걸음 수 24,898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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