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거리: 778.70km, 누적시간: 156시간 31분
표지사진: 부산시 민락동에서 본 ‘파크하얏트부산’
부산 ‘감천’을 담고 ‘해운대’로, 나는 걷고 생각하고 씁니다
아주 뜨거운 여정이 될 것 같았다. 23년 8월 하순은 역대급 폭염으로, 언론은 내내 ‘이상기온’ 이야기뿐이었다. 한낮의 체감온도가 섭씨 36도를 넘어섰고, 입추(立秋)가 한참을 지났는데도 온전히 걸어 다니기가 무척 힘이 들었다.
서울과 전북지역은 비가 많이 온다고 하는데 경북은 불타는 연탄처럼 뜨거운 날, 나는 유부남들이 다들 부러워하는 혼자만의 여행으로 ‘부산’엘 간다.
3년 전 근속 20년에 주어지는 안식월을 명분으로 ‘성찰여행’을 시작하면서, 나는 ‘혼자 떠나는 여행의 마력’을 잘 알게 되었다(매력보다는 마력이라고 해 두자)
결혼 후, 가족을 두고 혼자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남자가 얼마나 될까? 일을 벌인 나도 대단하고, 와이프의 허락은 말할 것도 없다.
‘이번에 나 혼자 부산에 좀 다녀와도 되나?’ 그렇게 시작한 혼자만의 여행이 횟수로 벌써 세 번째이다.
부산에 도착하면 3박 4일 동안 온전히 걷기로만 했다. 버스나 대중교통을 일절 이용하지 않을 예정이고, 3일 동안 목표 100km를 채우면 3개월 누적 1,000km를 넘을 거라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like crazy!
미친듯한 걷기의 정점을 만들 수도 있고, 쓰러질 수도 있고. 혼자 키득대며 계획을 세웠다. 지금까지는 서울과 근교로만 걸었다면, 이번에는 아주 먼 곳으로 원정을 가는 격이다.
여행 가는 당일, 한 시간이라도 아끼려고 부산행 KTX를 끊었다. 새벽 6시, 한낮은 후덥지근하지만 아침 바람은 가을이다.
새벽 첫 기차를 타고 2시간 30분을 달려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역에 내리니 광장 앞에 ‘Busan is Good'이라고 씌어 있는 구조물이 반긴다. 부산의 첫날, 목적지 ‘해운대’는 동쪽으로 약 20km 지점에 있다.
감탄 그 이상, 감천문화마을
부산에 오면 가장 가 보고 싶었던 곳 중 하나가 ‘감천문화마을’이었다. 한국의 ‘산토리니’라 불리는 감천마을은 부산시 사하구 감천동에 있다. 부산역에서 약 4.5km 떨어져 있으며, 부산 중구청과 보수동 책방골목을 지나게 된다. 해운대를 가기 전, 나는 감천마을을 돌아보고 싶었다.
감천문화마을은 천마산의 비탈을 끼고 마을버스로는 5분, 승용차로는 2~3분이면 오르는 길을 15분 이상 걸어 올라가야 한다.
동네 곳곳의 골목을 경험해 보겠다고, 좁은 골목과 가파른 계단을 일부러 찾아 올랐다. 땀으로 옷은 흥건해지고, 바람마저 없어 ‘덥다’, ‘덥다’를 연신 내뱉었다.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힐끔 쳐다본다. 골목 사이와 집 대문이 2M도 채 안되어서, 나는 바른 길을 걸으면서도 남의 집에 들어가는 것마냥 혼자 조바심을 냈다. 핸드폰 맵을 켜고 이동을 하는 데에도 골목이 좁아 정확하지가 않았다. 저기쯤 길이 맞다 싶어 가보면 대문에 막혔다. 뻘쭘해서 돌아 꺾어 올라가면 또 누군가의 대문이 나온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서울 골목보다 훨씬 이야기가 가득했다.
감천마을 입구 정상까지 올라오니 탁 트인 전경에 오밀조밀한 집들이 형형색색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으로 눈에 들어왔다. 집들마다 틈바구니 사이로, 주민들 생의 숨결과 바다내음이 골목을 타고 훅 들어온다.
와! 좋구나. 이래서 한국의 산토리니라고 부르는구나.’
나는 카페 한 곳을 들어가 시원하게 요거트스무디를 시켰다. 옥상 루프탑에서 보는 전경은 정말 근사했다.
한 시간 정도 쉰 후, 올라온 길 반대로 해서 감천마을을 내려갔다. 이제 오늘 숙박지인 ‘해운대’로 이동을 해야 하는데, 지도를 보니 꽤나 돌아간다. 마을을 한발 한발 걸어서 내려가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집과 골목이 더 가파르게 보였다. 짐수레에 한가득 박스를 싣고 내려가는 노인은 거침이 없었다. 내 뒤에서 비탈길을 따라 내려오나 싶더니, 어느새 나를 한숨에 따돌리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노인네, 참 대단하네.‘
리어카 앞이 허공에 붕 떠서 한 움큼씩 내려가고, 다시 리어카 바닥에 붙어있는 타이어를 브레이크 삼아 쉬었다 올라갔다 반복하는 모습이 기인에 가까웠다.
동네가 작은 산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어 여기저기 산새 소리가 들린다. 음악을 잠시 멈추고 새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내려오는 길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전에는 부산에 올 일이 거의 없었다. 나는 전라도 전주 출신이라, 경상도에는 친척이 단 한 명도 없다. 이렇게 연고지가 따로 없으니, 부산은 가족 여행으로 몇 년에 한 번씩 오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리고 부산에 오면 유일하게 방문했던 곳이 해운대여서 오늘 내가 보고, 걷는 모든 부산은 나의 프롤로그이자 에필로그다.
나는 부산 토박이마냥 한 손에는 생수병과 입에는 ‘폴라포’를 물고, 부산 해운대를 향해 걸었다. 천마산 터널을 돌아 암남동, 부산 서구에 다다르니 송도 앞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송도 앞바다가 보이는 ‘충무동’에 바닷바람이 있는 듯 없는 듯, 자글거리는 태양에 바람 한 점 없는 뜨거운 도로는 절대 낭만스럽지가 않다. 걷는 길에 나무 그늘이 없다 보니 숨이 턱턱 막혀온다.
부산의 명물 ‘자갈치시장’을 지나 다시 부산역으로 돌아왔다. 정말 한나절, 한 바퀴를 돈 셈이다.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오후를 훌쩍 넘겼다. 아침에 부산역에 내려 생기 있던 나는 벌써 녹초가 되어있었다. 일단 점심을 챙기고 잠시 쉰 다음, 다시 해운대를 향해 걸었다. 해가 지기 전에는 도착해서 숙박 체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천천히 걸을 수가 없었다.
부산역 앞 ‘중앙대로’를 따라 부산의 동구, 남구, 수영구를 거쳐 해운대구까지 걸었다, 이제는 골목이 아닌 큰길로만 걸었더니, 자동차 매연이 목구멍으로 턱턱 들어온다.
수영구 광안리 해수욕장이 저 멀리 보였지만, 오늘은 그냥 지나쳐 갔다. 내일 걷는 코스이기도 하고, 그보다 이제는 다리가 쑤시고 저려와서 빨리 숙소로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부산은 낮은 평지가 아니라 평범한 동네도 웬만하면 산 구릉 위에 있어서, 쉽지 않은 동네의 연속이었다.
저 멀리 해운대의 랜드마크인 ‘두산위브더제니스아파트‘가 보인다. 이제 해운대구 안으로 들어왔다고 생각하니 다리가 다 풀리는 것 같다. 해운대 전체는 반듯하고 멋진 빌딩으로 가득한 홍콩을 보는 듯하다.
오늘 부산 첫날부터 강행군이었다. 시계 GPS가 32km를 가리킨다. 대단하네. 어쩌면 내일은 더 많은 거리를 걸어야 할지 모르겠다. 게다가 날씨 예보를 보니 오늘보다 더 최악의 폭염이다. 그냥 내일은 내일로 맡기고, 온몸이 땀으로 쩔어 빨리 샤워를 하고픈 마음이다.
저 앞에 오늘의 숙소인 ‘마리안느호텔’이 보인다. 다리가 아프다면서, 나는 호텔 안으로 껑충 뛰어 들어갔다.
- 부산, 첫 번째 일정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