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거리: 840.24km, 누적시간: 169시간 28분
표지사진: 부산 청학1동, ‘구름 가까이, 부산항대교’
아쉬움을 훌훌 털고 가뿐하게, 부산 3일 차!
‘부산’에 대한 기억이 새로워지는 경험이다. 3일간의 부산 일정은 단순한 여행을 넘어서, 나에게 ‘발바닥 그 이상의 밀접함’으로 내 몸에 찰싹 붙은 느낌이다. 부산 사람 누군들, 단 3일 동안 100km 가까이 걸어 볼 생각을 했을까? 그것도 구석구석, 어려운 길 마다하지 않고 말이다. 물론 생활 전선에서 매일같이 걸어 다니고 찾아다니는 택배 아저씨? 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냥 저 혼자 ‘걷기 왕’이라고, 키득대는데 기분이 참 좋다.
오늘은 부산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누군가는 ‘무슨 맨날 걷기만 했는데, 여행이야?’라고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아마도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 인생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추억으로 치자면 ‘부산은 뜨겁게 행복한 기억’이 될 것 같다.
이제 거제도로 건너가기 위해 거제도와 가장 가까운 동네로 옮길 생각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여행 오기 전 착각한 게 있었다. 나는 부산 가덕도에서 거제도를 걸어서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대충 맵을 훑어보니까 거리가 35km쯤 나오길래, ‘뭐지? 이 정도면 걸어갈 수 있겠는데?’ 하면서 막연히 마지막 걷기 종착지를 ‘거제도’로 계획했었다. 근데, 알고 보니 거제도를 가려면 ‘가덕해저터널’을 지나야 하고, 통제를 하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걸어서 갈 수가 없다. ‘그렇겠지. 거기가 어디라고.‘ 차로 이동만 가능한 거리라, 진짜 부산에서 거제도를 걸어가려면 빼앵 둘러서 가야 하는데, 대략 130km가 나온다. ㅎㅎ 절대 불가다.
그래서 오늘은 부산에서 거제도로 넘어가는 버스가 있는 곳, ‘하단’으로 마지막 코스를 잡았다. 이제 부산도 호우경보가 내려져 비가 올 듯, 먹구름이 잔뜩이다. 우산도 없고 우비도 없는데, 어쩌면 비가 펑펑 오는 날 부산에서 흠뻑 젖은 채 돌아다닐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그런 것들이 오히려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호텔 밖을 나오니 항구 전역이 회색빛이다. 딱히 호텔 전경이 좋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레지던스호텔이라 트롬세탁기로 옷도 빨고 말리고 해서 뽀송뽀송하다. 다음에 태종대를 오게 된다면, 여기 중간에서 멈추지 않고 태종대 유원지까지 가 보리라.
하단까지 이동하는데, 어제처럼 영도 봉래산 꼭대기까지 오를 생각은 없었다. 맵을 켜니 당연히 최단거리가 봉래산으로 오르라고 손짓을 한다. ‘ㅎㅎ내가 또 속을 줄 알고?’ 최단거리가 아닌 편안한 거리로 해서 봉래산 옆, ‘영도조선단지’를 거쳐서 갔다. 그래도 전통시장이 보이면 구경이라도 하려고 언덕과 골목을 여기저기 훑었다. 가는 길, 화려한 진분홍 나팔꽃이 회색 하늘에 대비되어 ‘잘 가세요! 다음에 또 봐요’ 하며 황홀하게 나풀댄다.
3일 동안 100km 가까이 걷는데, 딱히 무릎이 아프거나 발에 물집이 잡히지는 않았다. 너무 무리만 하지 않는다면, 대략 하루에 40~50km는 너끈히 걸을 수도 있겠다 생각은 든다. 폭염이라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또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 벗고 걷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을 거다. 땀을 흘려도 그것이 아래로 쭈욱 흘러내려 다시 훑어 내어 버리는 기분은, 마치 내가 안고 있는 스트레스를 밖으로 분출하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평생 오지 못할 내 기억에도 없는 동네에서, 내 발이 가는 곳에 몸을 맡긴다는 것은 참 행복이다. 부산이 내게 그런 경험을 준 것에 대해서, 나는 부산에게 참 고마움을 담고 간다.
영도를 빠져나와 영도대교를 건너 광복동 자갈치 시장에 도달했다. 갑자기 하늘에 번개가 치더니 비가 우수수 떨어진다. 한꺼번에 폭우가 쏟아지는데, 길 가던 사람들이 전부 다 바빠진다. 나도 후다닥 어디로든 피할 생각으로 ‘지하도상가’로 뛰어들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비를 맞고 돌아다니겠다고 장담하더니, 장난 아닌 비에 나도 모르게 몸을 사렸다. 이런 비를 우비도 없이 맞고 다니면 진짜 감기라도 걸릴 듯하다. 지하 밑으로까지 빗물이 우수수 몰려온다.
지하도상가에 사람들이 참 많구나. 화려하고 밝다. 나중에 보니 ‘광복 지하도상가’라고 하던데, 나름 최상의 지리 조건을 갖춘 상권인 듯하다. 비가 오래 오지는 않았다. 갑자기 쏟아졌을 뿐, 시간이 조금 지나니 부슬비 정도로 줄어들었다. 이 정도면 걸어도 되겠다 싶어, 지하도 상가를 빠져나와 ‘자갈치사거리’에서 ‘보수대로’를 통해 부평동으로 걸어갔다. 골목 한쪽으로 허름한 듯 노포 하나가 눈에 보인다. 밀면집? ‘아! 부산하면 밀면이지?’ 벌써 점심때가 한참을 지나서인지 허기가 밀물처럼 밀고 들어온다. 들어가 보자.
부산시 부평동 4가 - ‘대성밀냉면전문’
“ 부산여행 중, 어떤 정보도 없이 길 가다 들어갔는데 아주 좋았습니다. 부산엘 오면 국밥과 밀면은 먹어봐야 한다기에. 특히 밀면은 먹어 본 기억이 없는지라, 상상은 안 가더군요. 결국, 냉면보다는 미끄럽다? 그리고 맛있다 입니다.
길 가다 사진과 같은 간판의 식당을 찾아 들어가면 거의 맛없는 집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투박하고 크고 단순한 간판 말이죠. 그렇게 찾아 들어간 집입니다. 주인아저씨 친절하시고, 물밀면 보통을 시켰습니다. 저린 ‘무’ 한 가지만 나오는데, 딱히 다른 반찬이 땡기지는 않았습니다.
육수 좋구요, 특히 밀면의 상태가 매우 좋습니다. 매끄럽고 살아있는 탱탱함? 식당이 ‘하단역’으로 넘어가는 곳과 감천문화마을 가는 길에 있습니다. 나중에 또 뵙지요.”
- 카카오맵 후기 중, ‘마포걷달’
든든하게 배를 채우니 다시 기운이 돋았다. 이제 하단까지는 10km도 남지 않았다. 비는 추적거리며 가랑비로 내리다, 안개비로 잦아들었다. ‘부산서부경찰서’를 지나 ‘대티터널’을 통과했다. 부산 시내를 걸으면서 터널을 두세 차례 통과했는데, 서울과는 다르게 터널 안 인도에 가림막이 쳐져 있지 않았다. 걸으면서 고스란히 터널 안 매연을 마시는데, 부산 대도시를 생각해 보면 조금 아쉬운 부분이 아닌가 싶었다.
대티터널을 지나 오른편으로 ‘승학산’을 끼고 ‘낙동대로‘ 를 따라 쭈욱 내려갔다. 점점 시내가 변두리로 되어간다. 아무래도 해운대나 남포동에 비하면 옛스러움이 많이 남아 있는 동네이다. 부산 여행의 끝을 향해 걷는다 생각하니, 또 한 바가지 아쉬움과 뿌듯함이 교차를 한다. ’나는 언제 다시 여기를 오게 될까, 또 걸을까‘
하단에 가까울수록 다시 도심이 복잡해지고 사람들이 많아진다. 마치 서울에서 분당을 가는데, 사람이 드문드문한 양재를 거쳐 정자역에 도착하는 느낌이다. 빗줄기도 어느새 그치고, 내일이면 엄청나게 맑은 날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나는 하단을 마지막으로 부산을 담고 거제로 간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