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디자인 스튜디오로 살아남기
디자인 에이전시/스튜디오의 특성상 보통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가 2~3개 정도.
빈번하게 있는 일은 아니지만, 프로젝트의 규모에 따라 많을 때는 4~5개까지도 겹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일이 이렇게까지 몰리는 경우 디자인 에이전시/스튜디오의 사무실은 흡사 전쟁통을 방불케 된다. 여기저기에서 예상치 못했던 사고들이 터지고, 정신이 없다 보니 잘 되던 일까지 꼬이는 경우가 일상다반사.
그렇기에 디자인 에이전시 혹은 스튜디오에서도 각각의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관리해 주는 PM(Project Manager)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한데, 이번에는 이 디자인 에이전시/스튜디오에서의 PM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규모가 작은 디자인 스튜디오의 경우, 보통 이 PM의 역할은 따로 직책이 있기보다 선임급 혹은 팀장급 디자이너가 직접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직접 디자인 실무와 함께 일정 관리, 고객사 안내 및 피드백 전달, 의견 조율 등 프로젝트 리딩을 도맡아 해야 하기에… 당연히 몹시 힘들고 고달프지만, 사실 회사 입장에서 이만큼 효율적인 적임자도 없다.
그리고 보통 이 업종에서 일하는 선임/팀장급 정도 되는 인력의 경우라면 이런 형태는 익숙하리라. 아마도… 대부분 그러려니 할 것이다. 나 또한 자연스럽게 그리 알고 일을 해왔으니까. 아무튼 디자인 에이전시나 스튜디오의 PM은 일반적인 프로젝트 매니징과는 성격이 조금 다른 부분들이 더러 있는데… 특히 가장 중요한 것은 PM이라도 디자인 실무에 대해 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6년인가, 7년 전쯤의 이야기.
그 당시의 내가 새로 이직하게 된 신생 디자인스튜디오가 있었다. 당시 대표님의 열렬한 오퍼에 홀린 듯 이직을 하게 되었는데, 그곳은 내부에 임원진을 제외하고는 직급체계가 따로 없는 수평적 조직이라고 했었다. 그래서(그 당시 벌써 3년이 넘는 팀장 경력을 잠시 내려놓은 채…) 팀장급으로 입사를 했지만 직급은 똑같이 매니저라는 명칭으로 잠시 일하던 때가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겪어본 디자이너가 아닌 별도의 PM은 그 회사가 처음이었다.
결론부터 먼저 말하면 최악의 경험이었다. 그 당시 그곳의 PM은 회사의 이사님 2분 중 한 분이었는데, 대기업 영업직 출신으로 디자인 실무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문외한이었다.
그는 그 당시 대표님이 있었던 전 회사의 부하 직원으로… 기존 회사에서 갈라서고, 나와서 새로운 회사를 차리기로 했을 때 함께하기로 한 충성도 높은 창립멤버였다. 하지만 디자인 스튜디오라는, 그에게 익숙지 않은 업종에서 점점 그의 포지션이 애매해지자, 대표가 고민 끝에 PM의 역할과 행정 지원 역할을 함께 맡겼던 것이다. 그러니 모든 프로젝트가 제대로 관리될 리가 만무.
그는 디자인의 작업이 어떻게 되는지, 작업의 난이도는 어떤지 아무것도 알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고객사의 모든 요청에는 예스맨이 되어…
“네! 다 됩니다. 문제없죠! 다 해드리겠습니다!”
디자인 단가, 일정 등에 대한 고려도, 내부 인력과 아무런 논의도 없이 일단 큰 소리를 떵떵 치고 들어와… 내부의 디자이너들에게는 이미 고객사와 약속하고 왔으니 어떻게든 해내라며 닦달하던 것이 일상. 심지어 직급 없는 회사라는 말에 굉장히 수평적인 조직이라 생각하고 들어왔으나, 그 유일한 임원이라는 직급을 휘두르는데 스스럼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프로젝트가 잘 돌아갈 리가 없지 않겠는가.
그러다 작업에 차질이 생기면 내부 디자이너를 탓하기 바빴고, 혹여 디자이너들이 갈려 나가며 어떻게든 무리한 일정을 소화해 냈을 때에는 본인이 훌륭하게 매니징하여 메이드 한 성과로 대표님께 보고하는 모습에 모두가 혀를 내둘렀던 기억이 있다. 덕분에 나도 해당 회사에서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문제가 이것뿐은 아니었지만…) 다시 이직처를 알아보았던 슬픈 기억이다. 자, 어쨌거나 이번 이야기에서는 그 슬픈 기억을 반면교사 삼아, 최악의 PM이 되지 않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 보려 한다.
그러면 먼저, 디자인 에이전시/스튜디오에서의 PM은 주로 어떤 역할을 할까?
각각의 회사 방침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명칭에서 느껴지듯 각 프로젝트의 지휘자 포지션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자, 그렇다면 그 지휘자가 갖춰야 할 덕목들은 뭐가 있는지 대해 알아보자.
1. 능동적인 태도와 판단력
디자인 에이전시/스튜디오에서의 PM은 프로젝트를 지휘하는 역할을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중간자’의 역할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실무진(디자이너)과 클라이언트, 실무진(디자이너)과 운영진, 회사와 클라이언트, 실무진과 실무진 등 다양한 이해관계의 틈바구니에서 균형을 잡고 서로의 의견과 니즈를 조율하는 역할. 그렇다 보니 PM이 수동적으로 일하는 순간, 해당 직무는 의미를 잃는다.
없느니만도 못한… 그저 중간에서 말을 전달하는 앵무새가 되는 것이다.
내가 경험했던 최악의 PM을 다시 떠올려보면, 스스로 판단하기를 꺼려하고 두려워하는 성향이 있었다. 그렇기에 소통창구로써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말 옮기기 하듯 전달하기만 했었고… 그 마저도 완벽하지 못해, 차라리 실무자들이 직접 소통했다면 없었을 오해와 불화를 만들기도 했다.
PM이라면 해당 프로젝트의 성패를 기준으로 서로 상충하는 이해관계속에서 판단의 기준을 세워, 우선순위를 스스로 정하고 각 담당자들을 이해시킬 줄 알아야 한다.
2. 디자인 실무 감각
지휘자가 연주자보다 악기는 못 다루더라도 어떤 악기에서 어떤 소리가 어떻게 나는지는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굳이 입 아프게 말하지 않더라도 당연한 법.
디자인 에이전시/스튜디오 에서의 PM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디자인 프로젝트를 관리하면서 디자인 실무를 모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PM이 디자인을 가장 잘할 필요는 없지만 본인이 관리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필요한 디자인 실무와 프로세스, 단가, 난이도 등에 대해서는 깊은 이해가 동반되어야 한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PM은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내내 다양한 불협화음과 트러블을 일으키게 되고, 결과적으로 고객에게 해당 에이전시/스튜디오에 대한 신뢰를 떨어트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3. 친절한 태도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디자인 에이전시/스튜디오에서의 PM은 결국 ‘중간자’의 역할이다.
결국 사람과 사람을 매끄럽게 연결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라는 이야기.
PM은 혼자 있을 때 아무런 의미도 가질 수 없는 직무다. 혼자서 아무리 계획을 철저히 짜고 업무를 배분해 본들 무엇하겠는가. 정작 해당 업무를 수행할 실무자가 없다면… 아니면 일을 주는 클라이언트가, 혹은 결정을 내려줄 결정권자가 없다면… 혼자서는 무엇도 이룰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PM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는 소통 능력이다. 그리고 언제나 소통의 기본은 태도가 아닐까. 이것만 잘해도 PM이 해야 할 역할의 60% 이상은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4. 부지런함과 폭넓은 시야
이미 여러 번 말했듯 PM은 지휘자다.
프로젝트 전체를 보고 필요한 순간 적절한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급박하게 닥친 일들만 주먹구구식으로 해결하기 바쁘고 무언가 이슈가 생길 때마다 휘청거린다면… 이 역시 PM의 존재 이유가 없어진다.
프로젝트의 전체적인 일정 안에서 세부 일정들을 계획/배분하고 각 담당자들이 현재 어떤 작업을 어떻게 작업 중인지 항상 체크해야 한다. 그래야 예기치 못했던 문제상황이 벌어졌을 때, 빠르고 유연한 대처가 가능한 법.
또한 일정과 계획은 프로젝트 초기에 한번 짜서 각 실무자들에게 전달했다고 끝이 아니다. 항상 부지런히 진행도를 살피고 체크하며, 각 실무자들에게 주기적으로 다음 일정에 대한 노티(notify)를 해 주어야 프로젝트 진행이 수월해진다. 그러니까 아무튼 PM은 항상 부지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