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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똘짱 Mar 06. 2020

나도 엄마가 있다 - 까만 멍의 진실

스물한 번째 고자질

엄마.  어릴  등에 숨겨둔 멍자국을 보고 누구한테 맞은 거냐고 했던 거 기억나?  장난치다 그런 건  엄마는 맞은   한눈에 알아봤잖아. 그거 진짜 인디언밥 세게 맞아서 그러였어. 그래도 맞긴 맞은 거네. 그때  엄마가 엄청 신기했는 . 오늘은 내가 학교에서 그런 멍을 보았어. 

여름이 시작할 무렵 한 아이가 전학 왔어. 통통한 남자아이 었어. 첫인상에서 특이한 점은 느끼지 못했어. 장난이 심하지도 않았고 말이 많지도 않았어. 그래도 친구들과 나누는 말속에서 날카로움이 조금 느껴졌어. 견제하는 건가 방어기제가 많아 보였어. 전학 왔으니 조금 적응할 여유가 필요하겠거니 싶었어.
안타깝게도 시간이 흘러도 아이는 적응하지 못했어. 친구들을 사귀지 못했어. 친구들과 다투는 게 일상이었어. 심지어 아무도 아이와 짝꿍이 되고 싶어 하지 않았어. 싸움은 항상 주고받는 말에서 시작되었어. 아이가 거친 욕을 하기보다는 날이 선 말을 많이 했어. 비꼬는 말이거나 인신공격 같은 것들. 싸울만한 일이 전혀 아님에도 굳이 다툼으로 번져갔어.
아이와 상담을 해보고 같이 시간도 보내보고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도 들어봤지만 해결방법을 찾지 못했아. 미운 말하지 않겠다는 아이의 다짐은 한 시간도 채 가지 못해서 터져 나와버렸어. 전학 와서 텃새를 느끼는 것인지 다른 친구들의 호의마저도 경계하는 모습이었어.
아이는 똘똘했어. 운동신경이 부족한 건지 교유관계가 부족한 건지 체육시간에는 늘 주눅 들어 있었지만 다른 과목에서는 흔한 공부 잘하는 학생이었어. 나한테는 모나게 행동하지도 않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시간을 흘러만 갔어. 그럴수록 아이는 다른 친구들에게 밉상이 되어갔고 나는 그런 상황이 익숙해지기 시작했어. 시간이 약이라는 아주 고전적인 핑계를 위안 삼았어.
어김없이 아침이 찾아왔고 지각이 잦던 아이의 자리는 비어있었어. 오늘은 한번 혼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아이가 교실로 들어왔고 아이 얼굴에는 까만 멍자국이 있었어. 파란색이 아니라 까만색. 아이는 얼굴 왜 그러냐는 나의 말에 그냥 다쳤다고 대답을 해. 친구들하고 싸웠다기에는 심상치 않은 흔적이었어. 당황스러웠어.
아이를 잠시 연구실로 데려왔어. 다른 아이들이 신경 쓰였거든. 가까이에서 본 아이의 얼굴은 더 속상했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이에게 양애를 구하고 등이나 다리를 훑어보았어. 역시나 상처들이 보였어. 어른의 손자국이 확실해 보였어. 아이를 교실로 보내고 바로 아이의 엄마한테 전화를 했어. 그리고는 더 속상한 이야기를 들었어.
아픈 상처가 있어 이혼을 했고 아이 잘 키워보려 재혼을 했는데 새아버지가 아이를 훈육하는 과정에서 체벌을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어. 아직 마음으로 아빠로 받아들이지 못한 아이와 기다려주기에는 너무 조급했던 새아버지 사이에 일어난 일이야. 매라는 게 처음 한 번이 어렵지 두 번 세 번 늘어나고 더 심해지는 건 시간문제야. 
내가 도와줄 일이 없냐는 말에 그냥 모른척해달라고 하셨어. 또다시 이별의 아픔을 아이에게 주고 싶지 않다고 사정하셨어. 난 어쩔 수 없었어. 혹시 몰라 아이의 상처를 사진으로 남겨두고 또 이런 일이 있으면 꼭 필요한 조치를 하자고 아이의 엄마와 약속했어. 그리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 여름보다 먼저 아이가 전학을 가버렸거든. 그것도 갑자기. 다음 날 전학가야 한다는 아이 엄마의 연락을 받고 안쓰러운 마음에 준비했던 시계선물과 편지는 주지도 못했어. 아침에 들려서 짐이라도 챙겨갈 줄 알았는 데. 그렇게 훌쩍 떠나버렸어.
십 년도 더 지난 일이야. 지금의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아이의 눈에서 ‘불안’이라는 단어를 읽을 수 있을까. 아이의 경계심은 다른 곳에 원인이 있었던 것을 미련하게도 알지 못했었어. 그리고 그 날. 아이를 그렇게 보내지 말았어야 했을까. 최근에는 법이 개정되어 아동학대가 의심이라도 된다면 교사는 의무적으로 신고를 하게 되어있어. 그렇지 않으면 내가 방관 죄를 받을 수 있어. 그 날로 돌아가 그 아이와 엄마를 다시 만나 엄마의 부탁에도 기관에 도움을 요청했다면 상황은 어찌 되었을까. 잘 모르겠어.

이후 많은 것을 배웠어. 아이의 문제 원인이 교실 안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어. 선생님은 아이 삶의 두 번째 부모로서 더 깊고 작은 것을 봐줄 수 있어야 하나 봐.
그 아이는 이제 성인이 되었겠다. 대학은 갔으려나 군대에 갔으려나 여자 친구는 사귀어봤으려나 궁금하다. 마음속에 상처는 잊히지 않겠지만 그래도 주변에 좋은 사람들 만나서 잘 성장했겠지? 그랬으면 좋겠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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