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세 번째 고자질
엄마. 내 기억으로는 엄마가 나한테 공부하라는 소리를 딱 한번 한 거 같아. 임용고사 100일 전에 백일주 먹는 나한테 공부나 해라라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말했지. 만약에 학창 시절에 공부하라고 잔소리해줬으면 지금의 나의 모습은 어땠을까.
3년 동안 담임을 한 아이가 있어. 큰 학교에서 이런 일은 극 히 드문 일이야. 2년도 아니고 3년 씩이나. 딱 한 명이지. 그래서 더 애정이 가기도 하면서 아이의 변화를 쉽게 느낄 수 있었어. 아이를 처음 본 건 3학년 었고 마지막으로 본 건 6학년이었어. 그리고 최근에 고3이 된 아이의 소식을 들었지.
처음 본 아이는 통통하고 어리숙한 게 귀여웠어. 여자 아이들에게는 인기가 없을 모습이었지만 나한테는 순박한 매력이 느껴졌지. 머쓱하게 웃는 모습이 그렇게 좋았어. 조금 빈틈 많아 보임에도 이상하게 공부를 잘해서 늘 반에서 1,2등을 했지. 3학년 공부가 쉽다고 해도 조건은 같으니까 확실히 시험을 보면 다른 아이들보다 두드러졌어. 한해를 쉬고 5학년이 된 아이 역시 그대로였어. 더 커진 덩치와 이제는 어린 티가 좀 사라졌다고 하나 할까 덜 순수한 느낌이 들었지.
6학년이 되니 아이가 조금 어둡게 느껴졌어. 늘 바쁘고 불안하고 정신이 없어 보였어. 6학년짜리가 벌써부터 여유가 없게 느껴졌어. 원인은 학원이었지. 어릴 때부터 학원을 많이 다니긴 했는 데 6학년이 되니 더 버겁나 생각했어. 아침에 오자마자 펼쳐둔 학원 숙제를 쉬는 시간까지 틈틈이 하다가 집에 갔으니까. 아이들하고 어울릴 시간도 잘 없었어. 밥 먹을 때 몇 마디 나누는 게 전부였지.
한 날은 아침시간에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어. 나도 친구들도 놀랬어. 무슨 일 있는지 놀라서 가서 물어보니 학원 숙제를 안 가져왔데. 나는 납득이 잘 되지 않았어. 그게 울음을 터뜨릴 만큼 중요한 일인가 싶었어. 미지근한 나의 반응과는 달리 아이는 심각했어. 학원 숙제는 지금 못하면 학원에서 선생님한테 혼나고 집에서 엄마한테 죽는데. 매번 살아남았은 거 보니 이번에도 엄마가 죽이진 않을 거고 학원에서는 얼마나 혼내냐니까 맞는데. 와 나도 못 때리는 데. 아니 아이가 정말 몹쓸 짓을 해서 따끔하게 혼내는 거면 몰라도 숙제 안 했다고 때리는 건 너무 하잖아. 게다가 숙제가 못한 만큼 배가 된 데. 이건 뭐 사채 시스템인걸. 근데 그것들보다 더 무서운 건 엄마래.
이제야 아이의 성적 향상의 비밀을 알아냈어. 학원이었구나. 사실 학원을 떠나서 그렇게 문제 풀리면 초등학교 시험은 당연히 잘 보게 되어있어. 실수만 하지 않는 다면 말이지. 하지만 그건 시험을 잘 보는 거지 공부를 잘하는 건 아니야. 문제를 많이 푼 거지 똑똑한 것은 아니고. 뭐 어찌 되었거나 아이의 방과 후 시간을 어디에 투자하는지는 부모의 판단이니까. 그 해 나는 기말고사에 총 5개 틀리고, 아니 주지교과 25문제 5과목, 예체능 10문제 5과목, 총 175문제에서 170개나 정답을 맞혀 반에서 1등을 한 아이가 엄마한테 죽었다며 울면서 집에 가는 것을 보았어. 엄마릐 커트라인은 3개 틀리는 거였데.
아이는 그렇게 졸업을 했어. 늘 여전히 공부를 잘하고 있을까 궁금했었는 데 오랜만에 들려온 소식을 의외였어. 공부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고등학교에서 기술을 배우고 있더라. 삐뚤한 행동도 종종 하지만 자격증도 따면서 나름 열심히 지내고 있었어. 그래도 다행인 건 아이의 외모는 많이 변했지만 표정은 옛날 처음 봤을 때 모습이었어. 그 순박하고 행복한 표정 말이지.
물론 사교육이 다 나쁜 건 아니야. 아이들 중에는 비슷한 스케줄에도 잘 적응하고 지내는 경우도 있어. 또 꼭 필요한 아이들도 있고. 내가 걱정하는 건 아이들이 견딜 수 있을 정도의 교육이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아이의 방과 후 시간을 너무 공부에만 투자하지 않았으면 해. 그 시기에만 할 수 있는 것이 따로 있으니까.
내가 공부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서 드는 생각인가 봐. 대부분의 그런 학부모님들께 이런 말을 하면 내가 몰라서 그렇다고 하시거든. 그래 각자의 길이 있겠지.
누가 뭐래도 난 엄마가 나한테 공부로 스트레스 주지 않은 거 감사하게 생각해. 덕준에 다른 친구들 시험공부할 시간에 난 다른 공부를 할 수 있었어.
할일없이 멍 때리는 공부
놀이터에서 시간 보내는 공부
친구들이랑 싸우는 공부
이성친구 쫓아 다니는 공부
컴퓨터 오락실 게임 공부
돈 없이 놀러 다니는 공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