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네 번째 고자질
엄마. 예전에 4학년 때 보이스카웃 수련회 갔을 때가 생각나 정말 재미있었는 데. 생존 훈련이라더니 강 한가운데에서 구명조끼를 입히더니 우리를 다 빠뜨렸어. 헤엄쳐서 뭍으로 가라고. 그 날 십 분 만에 난 생존 수업을 다 배웠지. 빨리는 못 가도 오래 떠 있을 수는 있어. 요즘 그렇게 하면 뉴스에 크게 나오겠지.
뉴스 봤어? 바다로 해양훈련을 간 아이들이 해류에 쓸려 돌아오지 못했데. 안타까운 일이야. 누구도 바라지 않을 일이 벌어진 거지. 예상은 할 수는 있었을까. 예상은 했어도 늘 괜찮았으니까 무심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조금이라도 나쁜 일이 생길 것 같으면 안 하는 것이 답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확실한 건 남의 일이 아니고 내 자식의 일이 된다면 어떤 핑계도 어떤 사유도 납득이 되지 않을 것 같아.
그 사건 이후로 수련회의 모습이 많이 바뀌었어. 수련보다는 휴양에 가깝지. 학교에서는 안전사고예방 지침이 더 자세하게 내려왔고 수련원 측에서도 몸을 사리기 시작했어. 교육적 목적보다도 중요한 게 안전사고예방이 되었어. 아무리 좋은 교육적 의도도 안전한 상황 속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은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거야.
올해 수련회의 대부분을 병원에서 보냈어. 짚라인을 타는 프로그램이 있었어. 시기가 시기인 만큼 아이들의 자율에 맡겼지. 예전처럼 윽박지르며 시키지 않아. 그러면 큰 일 나. 뭐가 맞는지는 모르겠어. 아무튼 대부분의 남학생들은 재미있어서 좋다고 타고 여학생들은 무섭다고 거의 안 해. 구경만 할 뿐이야. 그중에 신나게 타는 용감한 여자아이도 있고 나를 병원으로 인도한 겁 많은 남자아이도 있어.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는 데 도전하겠다고 한 그 아이는 어째 시작부터 불안했어. 출발을 하지도 못하고 무서워했지. 말리는 교관과 친구들 사이에서 갈등을 하는 모습을 보았어. 나는 그냥 지켜봤어. 안전장치가 다 되어 있었어. 아이보다 두세배 무거운 내가 미리 타봤는데 멀쩡하더라고. 용기 낸 아이의 발은 난간에서 멀어졌고 멋지게 미끄러져 내려왔어. 하지만 마지막에서 힘이 풀렸는지 손잡이에서 손을 놓쳤고 보호 매트에 부딪혔어.
용기에 칭찬해주러 가니 아이는 목을 매만지고 있었어. 괜찮다고 하는 보건 선생님 말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근 아이를 데리고 정형외과로 갔어. 아이가 자꾸 아프다고 했거든. 때마침 사람이 엄청 많았어. 한참을 기다려 엑스레이 촬영과 진찰 결과 타박상 진단을 받았어. 활동에 큰 문제없다는 소견도 받았지. 아프다던 아이는 숙소로 돌아가서는 아무렇지 않게 장기자랑도 하고 몸 장난도 쳤어. 가정으로 상황을 알려드리러 전화했더니 아이 엄마께서는 원래 엄살이 심한 아이라며 오히려 사과를 하셨어 그리고 그런 거 엄청 무서워하는 데 도전했다는 것에 신기해하면서도 대견해하셨어.
수련은 몸과 마음을 굳세게 한다는 뜻이야. 아이들이 학교에서는 미쳐 느끼지 못했던 것들은 학교 밖에서 부모의 그늘 밖에서 경험하는 것이 목적이지. 나는 프로그램 내용보다는 아이들의 순간의 감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 아이들이 못할 것 같은 것 앞에서의 두려움, 잠시나마 부모 곁을 떠났다는 외로움, 마음 맞지 않는 여러 아들 속에서의 괴로움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은 꼭 필요해. 특히 요즘처럼 주변에서 다 해결해주는 상황들이니까. 아이들이 의도적인 환경에서 보호받으며 직면하는 건 성장에 큰 도움이 되어 줄 거야.
이런 상황임에도 요즘은 학교도 업체고 학부모도 학생도 점점 예민해져 가기만 해. 안전사고, 학교폭력, 불안감이라는 걱정에 아이들은 지나칠 정도로 보호받고 있어. 보호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자립심을 길러줄 필요도 있다고 봐. 가끔 보면 도가 지나쳐 정작 중요한 것을 배워야 할 시기를 놓쳐버려. 아이들 배워야 할 것은 꼭 밝은 면만은 아니야. 밝은 면 어두운 면 둘 다 볼 줄 알도록 가르쳐야 해. 그리고 그중에서 스스로 밝은 쪽을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게 교육이라 생각해. 어두운 면을 잠시 손으로 가려줘도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테니까.
난 아이들이 마냥 행복한 것도 좋지만 선생님이 안아줄 수 있는 품 안에서는 나쁜 감정도 느껴봤으면 좋겠어. 예방주사 맞듯이 말이지. 아이들이 나올 사회는 연습 없는 실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