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번째 고자질
엄마. 어렸을 때는 몰랐는 데 애 키우는 게 만만치 않네. 엄마 아빠는 우리를 우리 키웠나 싶어.
하아.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하나. 너무 속상해서 정말 뒤집어 버리고 싶어. 어제까지는 속 깊다라는 말이 나는 마음씨가 넓다로만 생각했었어. 오늘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었어. 사람의 날이선 말 한마디가 두 뼘도 채 안 되는 가슴에 왜 이리 깊이 박히는지 모르겠어. 너무 깊이
박혀 꺼내어버릴 수나 있으려나.
오늘 공개수업자를 뽑았어. 영재학급 수업이라 다섯 명 중에 한 명이 대표수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어. 인근 학교 영재학급 선생님들을 모시고 토요일에 수업을 보여드려야 했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 생각했어. 단, 아무 인센티브도 없는 수업이었어. 그래서인지 서로 눈치 보기 시작했어.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지.
약속이라도 한 듯 각자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어. 그리고 그 변명을 정당화라도 하려는 듯 다른 사람을 추천했지. 못하는 이유는 구차했고 추천하는 이유는 거창했어. 예상했다시피 그 사람은 나였어.
인정받아 좋은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올해 두 번의 공개가 더 계획되어 있었어. 모두가 하는 거 말고 나만 해야 하는 일이지.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좋게 봐주는지 몰랐네. 너무 약이 올랐어. 그냥 그런 사람들의 태도가 화가 났어. 일 년에 천 번도 넘게 하는 수업 한번 공개하는 건 어려운 게 아니야. 근데 그런 당연하다는 반응이 너무 속상했어.
내가 남자라서 그랬을까. 상대적으로 젊어서 그랬을까. 공개 경험이 많아서 그랬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 그냥 본인들이 하기 싫었다고 밖에 안 느껴졌어. 그래서 나도 못한다고 했어.
“나는 공개하기로 한 다른 수업이 있더”
그러니까 능력 있는 거니까 내가 하래
“그 날에는 아이랑 약속이 있습니다.”
구차했나. 그냥 제가 할게요 라고 예스맨이 될걸 그랬나.
내 말이 끝나자마자 한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어
“야 너만 애 키워?”
하아... 생각할수록 화가 난다.
부장이라 못해. 나도 부장이었어.
애들이 고등학생이라. 우리 애는 돌도 안 지났어.
수업을 잘 못해서. 자랑이다.
이런 수업공개를 안 해봐서. 나도 안 해봤어요.
그걸 떠나서 본인도 애를 키우면서 직장일 했으면서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했을까 너무 화가 나. 뻔히 애가 어린것도 알고 힘들어하는 것도 아는 사람이 그랬어. 그래 나만 애 키우는 건 아니지. 그러니까 서로 조금 이해해주면 안 되나. 차라리 한 번만 더 수고해달라고 했으면 못 이기는 척했을 텐데.
내 약점 말하면 더 물어뜯길까 봐 말을 안 했어. 아이가 아프다고. 아토피가 심해서 아이는 매일을 고통받고 있고, 평일 동안 매일 옆에서 지켜보며 마음 아파해야 했던 아이 엄마, 엄마 며느리, 장모님 귀한 딸, 내 사랑하는 사람 주말이라도 조금 쉬게 해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그게 그렇게 욕심이었을까. 아니지 내가 솔직하게 이야기했더라면 달라졌을까? 아니야 오히려 이런 이야기까지 했는데 너만 애 키우냐는 소리를 들었다면 나는 무너졌을지도 몰라.
그래 나처럼 나머지 사람들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겠지. 그냥 그렇게 생각할래. 하지만 백번을 양보해도 너만 애 키우냐는 소리는 하면 안 되는 거였어.
엄마.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한마디 말을 뼈에 아로새겼어.
복수는 안 해.
대신 내가 그 나이가 되어도 그런 상황이 되어도
애기 엄마 애기 아빠한테 절대로 그 말은 안 할 거야.
응 그냥 그러려고.
나만 애 키우는 건 아니야. 하지만 내 새끼는 나만 키우는 건 맞잖아?
갑자기 엄마나 아빠도 우리 키울 때 이런 상처를 받아봤을까 생각해보게 돼.
그랬다면 고맙고 미안해. 행여 없었다면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