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번째 고자질
엄마. 나는 말이지 선생님이 되면 끝일 줄 알았어. 근데 이제는 나도 앞에 수식어가 붙었으면 좋겠어. 난 뭘 잘하는 선생님일까.
학교에는 다양한 선생님들이 있어. 매년 새로운 선생님들과 만나게 되는 데 그럴 때마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많구나 느껴져. 요즘에는 인터넷이 발달돼서 다른 지역에 있는 선생님들의 멋진 활약들도 쉽게 접할 수 있어. 그럴 때마다 부럽고 존경스러우면서 한편으로 나는 뭘까 생각을 해봐.
난 그냥 선생님. 아니면 남자 선생님쯤 되겠다. 나와는 다르게 글을 잘 써서 작가가 된 선생님. 영상을 잘 만드는 크리에이터 선생님. 연극을 잘하는 선생님. 그림을 잘 그리는 선생님. 세상에는 참 재능 있는 사람들이 많아. 부러울 때가 있어. 그리고 가끔 그 부러움은 질투를 지나 나를 무능하게 느껴지게 할 때도 있어.
선생님은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게 기본이지. 맞아. 가장 중요하고 가장 신경 써야 할 일이야. 그래서 그건 기본인 거야. 당연한 거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들고 벅찬 것도 사실이야. 그런데 학교도 점점 경쟁의 흐름을 함께하면서 변하고 있어. 학부모님들의 평가도 무시 못 해.
좋은 선생님, 착한 선생님의 시절이 점점 떠나가는 것 같아. 그것은 당연한 것이지. 학생들의 성향이 각각 다르니까 모두에게 좋을 수도 착할 수도 없는 게 현실이야. 최대한의 행복을 외치면서 보편적인 길 속에서 아이들에게 개별적인 서비스를 해줘야 해.
우린 공교육이니까 반강제로 맺어진 인연이야. 서로의 선호에 따른 선택이 아니면서 일 년이라는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다른 서비스직과는 비교가 어렵긴 해. 이런 상황에서 착하고 아이들이 좋아하고 공부 잘 가르치는 건 기본이고 옵션이 요구되고 있어.
교사는 유난히 경쟁이 적은 직종이지. 그래서 나태하고 게으르게 보는 시선도 느껴. 철밥통이라는 말 듣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기도 해. 다른 직종에 비하면 치열함은 부족한 건 사실이야. 근데 변명은 하고 싶어. 선생님 간의 치열한 경쟁구도가 과연 학교의 발전이나 아이들의 성장을 가져올까.
어쩌면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선생님은 그냥 선생님일지 몰라. 한정된 자신의 에너지를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쏟을 수 있는 그냥 선생님. 물론 능력이 많은 분들이 아이들을 내팽개친다는 의미는 아니야. 조금 바빠도 아이들은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겠지. 중요한 건 그런 선생님도 그냥 선생님도 모두 아이들에게 꼭 필요하다는 거야.
아이들에게 기억하는 건 뭘 잘했던 선생님이 아니라. 그냥 우리 반 선생님이니까.
엄마. 세상에는 나처럼 아직 그냥 선생님들이 많아. 그저 선생님이 특기고 선생님이 재능인 선생님을 제일 잘하는 선생님. 나 무능한 사람 아닌 거 맞지.
아니라면 지금 당장 학원이라도 다녀야겠다. 궁금하다 학부모님들 사이에서는 내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어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