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번째 고자질
엄마. 나 얼마 전에 아빠랑 싸웠어. 아빠를 보조석에 태우고 가는 데 안전벨트를 안 한 거야. 그래서 하라고 했을 뿐인데 말이지.
선생님으로 살다 보니 직업병이 생겨. 하루 종일 아이들하고 있다 보니 생기는 습관들이야. 좋은 일 착한 일 바른 일을 강조하다 보니 은연중에 생기는 강박관념도 있지. 물론 나도 완벽한 인간은 아니지만 말이야. 가장 큰 문제는 잔소리라는 거야.
고등학교 친구들이랑 오랜만에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가 혼이 났어. 난 그저 친구들이 길거리에 아무 생각 없이 버리는 쓰레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친구들 입에서 거친 말이 자꾸 튀어나오는 게 싫어서, 없는 친구 험담하는 게 몹쓸 짓 같아서 이야기한 거뿐이야.
아내한테도 혼이 났어. 그냥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었는지 확인하려고 다시 물어보거나, 다툴 때도 상황을 차근차근 설명하고 서로의 잘못을 생각해보자고 하거나, 다정하고 공손한 말투로 자잘한 부탁을 했을 뿐이야. 리모컨 좀 가져다줘라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
밖에 나가서도 불편한 일 투성이야. 길거리에 침을 뱉는 사람에게도 한마디 해주고 싶고, 무단횡단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어. 특히 공공장소에서 소란스럽게 떠들거나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잔소리하고 싶어 미칠 지경이야.
잔소리. 잔소리. 잔소리.
어쩌겠어. 잔소리하는 것이 내 직업인 걸. 필요 이상으로 듣기 싫게 꾸짖거나 참견하는 것이 잔소리의 정의래. 아니 한 번에 말을 들으면 내가 필요 이상으로 이야기하겠어? 말을 안 들으니 두 번 세 번 이야기하게 되는 거 아냐. 나도 한 번만 말하고 싶어. 내가 다 좋으라고 하는 거지 나쁘게 되라고 하는 건 아닌 데 말이지.
(라고 이야기하고 나니까 엄마한테 괜히 미안해지네. 어릴 적 엄마가 이런 이야기 똑같이 한 것 같기도 하고. 미안하오. 이 못난 아들 이제야 엄마 마음을 깨닫소. )
고등학교 친구들은 이제 나 선생님 같다면서 아무 말도 하지 말래. 선생님 같은 게 아니라 선생님 맞지. 근데 학교 밖에서는 그러지 않아도 되는 데 말이야. 이제는 공과 사를 더 구분해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