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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똘짱 Mar 02. 2020

나도 엄마가 있다 - 대피훈련

스무 번째 고자질

엄마. 엄마 걱정할까 봐 말 안 했는 데 나 수험생 때 죽을 뻔했잖아. 도서실에서 공부하고 있는 데 사이렌이 울렸어. 다들 오작동이니 하며 시끄럽다고만 생각했어. 이윽고 탄내가 나기 시작했고 모두들 건물 밖으로 나갔어. 다행히 큰 불은 아니었어. 1층 꽃집 간판이 누전으로 불이 붙었데. 우리는 7층이었고 부슬비가 와서 불이 크게 번지지 않았나 봐. 다행이지. 그때부터 사이렌 소리에 좀 예민해졌어.


큰 안전사고가 일어나자 학교에는 의무적으로 대피훈련을 실시해. 지진, 화재 한두 번씩 학기마다 진행 해. 주로 수업결손이 적은 2교시 3교시 사이 쉬는 시간을 활용해서 대피방송이 나오고 정해진 대피로를 따라 소집장소에 가는 훈련이야. 사고가 일어났을 때 우왕좌왕하지 않고 대피할 수 있도록 미리 경험해 보는 일이지. 겸사 안전사고에 대한 정보도 제공해 줄 수 있어 서로에게 유익한 시간이야. 


오늘이 바로 그 안전사고 대피훈련의 날이야. 주간 학습계획표에도 훈련이 있다고 알려줬어. 아이들도 오늘이 그 날인 것을 알고 있고 일 년에 두어 번이라도 몇 년을 하면 익숙해지나 봐. 6학년 녀석들은 설명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잘 따라. 별다른 설명도 필요 없이 오늘 2교시 마치고 쉬는 시간에 대피훈련이 있으니까 어디 가지 말고 교실에 있으라고만 하면 돼. 


“삐이이이잉”

“본 방송은 훈련상황입니다. 현재 시각 10:35 학교 전산실에 화재가 발생하였습니다. 학생 여러분은 정해진 구역으로 안전하게 전원 대피해 주십시오”

드디어 방송이 들렸어. 아이들은 하던 학원 숙제를 잠시 덮고 앞문 뒷문으로 나가. 먼저 나간 학생은 복도에서 친구를 기다리지. 주머니에 손을 꼽고는 계단을 통해서 설렁설렁 내려가. 오늘은 합법적으로 운동장에 실내화를 신고 나가는 날 정도로 생각하나 봐. 나는 맨 뒤에서 아이들을 따라 운동장으로 나가면 먼저 온 반이랑 나오고 있는 반이랑 뒤섞여. 마지막으로 온 나는 학급회장한테 물었어. 


“애들 다 왔어?”

“몰라요”

“어서 세어봐”

“하나 둘 셋... 야 좀 가만히 있어봐! 하나 둘 셋...”


미처 다 세어보기도 전에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시작돼. 모두들 잘했다며 안전한 생활을 하자고 당부하시지. 그리고 이어지는 부장님의 말씀은 

“올라가면서 실내화를 잘 털고 들어가요”


긴장감 하나 없는 안전사고 대피훈련은 이렇게 끝이나. 


저학년인 경우는 또 달라. 아이들이 신이나. 교실 밖으로만 나가면 행복한 아이들이야

질문도 많지. 

“뛰어도 돼요? “

“실내화 갈아신어요? “

“가방은 어떻게 해요? “

“줄 서야 해요? “

“짝꿍이랑 같이 가요?”

그냥 나가라고 하면 안전사고 피하려다 안전사고가 나니까 어쩔 수 없이 줄 서서 같이 나가는 경우도 있어. 밀려서 넘어지고 다치고 없어지고 울고 더 아수라장이 될 테니까.

실제로 사건이 일어나도 어린 학생들은 개별 대피보다 단체 대피가 더 효율적일 거야. 


엄마 만약 실제로 이런 상황이 일어났을 때도 아이들이 훈련대로 움직여줄까 상상해봐. 수업 도중에 화재경보 사이렌이 울리겠지. 그럼 나는 아이들을 대피를 시켜야 할 거야. 화재 상황에서 밀폐된 방송실로 들어가 방송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 아이들이 늘 가르쳤던 데로 당황하지 않고 대피로를 통해 정해진 곳으로 갈 수 있을까. 교실이나 화장실에 남아 있을지 모를 아이들을 확인하고 나도 탈출하면 우리 반 반장은 내가 일러줬던 데로 “총 23명 중에 22명 있어요. 누구누구가 안 보여요!”라고 내게 보고 할 수 있을까. 정말 가끔은 모의 대피훈련을 예고 없이 해보고 싶어. 몰래카메라처럼 수업시간에 갑자기 사이렌 울리고 대피를 시켜보고 싶어. 진정한 대피 훈련이 되겠지만 행여 어린아이들이 놀라거나 다치는 것을 감수할 수 있을까. 참 어렵다.


나름 머리를 썼어. 아이들과 이야기를 해서 우리 반만의 대피 훈련을 만들었지. 종례시간에 예고 없이 컴퓨터로 사이렌을 틀기로. 그럼 아이들은 질서를 지켜서 교실 밖으로 탈출하면 성공이야. 다른 게 있다면 가방을 들고나가는 거지. 교실 밖으로 탈출한 아이들은 그대로 집으로 가면 돼. 3초. 우리 반 최고 신기록이야. 처음에는 버벅거리더니 몇 번씩 반복하니까 사이렌 소리에 자동으로 반응하더라. 우리 반은 일단 교실에서 탈출하는 것은 1등 할 자신이 있어. 

그래도 아이들 평생에 이런 훈련을 실전에서 써먹을 일이 없기를 바라.


안전사고란 말은 참 이상해. 안전하지 못해서 일어난 사고니 불안전 사고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안전이란 단어와 사고란 단어는 반대의 미인 데 붙어서 안전사 고래. 안전한 사고 같게 느껴져. 아무튼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셋째도 안전!


엄마 아들, 오늘도 무탈하게 퇴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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