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과 함께 최선의 미래도 같이 상상하기
“돼지는 고개를 들 수가 없어서 평생 땅만 보고 살아야 해. 오직 돼지가 하늘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 그건 바로 넘어지는 거지. 넘어져봐야 지금껏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는 거야. 돼지도 사람도. (...) 우린 지금 넘어진 거야. 엄마도 강호 너도. 그렇게 또 다른 세상을 보게 된 거야.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볼 수도 없었지만 꼭 봐야만 했던 너무나도 소중한 세상.”
- SLL. (2024). 나쁜 엄마 [TV 프로그램]. 넷플릭스.
33번째 탈락을 경험 중이다. 26살 신입 때 구직보다, 30살의 이직보다 더 매서움을 경험하고 있다. 40 넘어서 구직하신 분은 서류 100개는 냈다고 들었다. 과거의 내가 운이 좋았던지, 30대 초중이라는 나이가 구직에 큰 영향을 미치는 건지, 내 글과 말하기 솜씨가 덜 좋은 건지, 아직 인연인 회사가 나타나지 않은 건지. 어떤 이유에서든 지속적인 실패를 경험 중이다.
“귀하의 역량은 훌륭하오나…”로 시작되는 탈락 메일을 받고 마음이 복잡해지기 시작하면 나는 잠이 오고 무기력한 상태에 빠진다. 어떤 생각을 하는지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렇다.
‘나 이러다가 아무 회사도 못 다니고 평생 돈 못 버는 거 아니야?’
‘내가 커리어를 쌓고 싶은 직무는 앞으로 못하게 되는 걸까?’
‘어렵게 찾은 꿈인데 포기하고 경력 무관이라도 찾아야 하나? 그러긴 싫은데…’
‘지원하려고 했던 공고 쓰지 말까? 어차피 또 탈락할 텐데’
생각해 보면 미래의 불명확함, 변화가능성에 대처하는 나의 방식은 항상 이랬다. 가장 최악의 미래를 상상하고 이를 대비하는 식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만) 초등학교 때에는 국어 시간에 선생님이 갑자기 수학을 하자고 할까 봐 두려웠다. 교과서가 없어서 맞는 것이 무서웠다. 그래서 전 과목 교과서를 다 들고 다녔다. 초등학교 때 기억은 많이 없지만 그 불안함과 매우 빵빵하고 무거웠던 책가방은 기억이 난다.
펜실베이니아 대학 <회복탄력성의 기술>이라는 수업에서는 어려움에서 빠르게 회복하는 방법으로, 최악의 미래와 함께 최고의 미래를 함께 상상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미래는 좋을지 나쁠지 알 수 없으므로 부정적으로만 쏠리기 쉬운 생각 방식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넓히는 것이다.
나쁠 것 같은 것만 상상하면 불안이 상승하고 에너지가 소진되지만, 좋을 것 같은 것도 함께 상상하면 에너지가 올라가고 그 미래를 위해 준비할 것들을 더 건강하게 동기부여되어 준비할 수 있다.
“귀하의 역량은 훌륭하오나…”로 시작되는 탈락 메일을 받았지만, 내 미래는 이럴 수도 있다.
원하는 직무가 내 이름아래 딱! 박힌 명함을 받는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우리가 하는 일에 진심이다
동료들과 성격이 잘 맞아서 같이 있으면 즐겁다
내가 우리 팀에 기여하는 것이 명확하고 동료들의 인정을 가득 받는다
나의 리더는 일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존경하고 싶은 분이다
앞으로 이 팀에서 꾸준히 성장하면서 만날 미래가 기대된다
회사가 꾸준히 성장해서 금전적 보상도 만족스럽다
나는 내 직무, 나의 성과, 소속 팀, 회사가 자랑스럽다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최악의 미래가 떠오를 때, 최선의 미래를 한 번 더 상상하며. 나는 오늘도 공고를 분석하고 자기소개서를 쓴다.
외상 후 성장 (Post traumatic growth)
심리학에는 외상 후 성장이라는 멋진 개념이 있다. 이는 사람들이 심각한 스트레스나 트라우마를 경험한 후에 나타날 수 있는 긍정적인 변화나 발전을 의미한다. 단순히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것을 넘어서, 개인이 그 경험을 통해 더 강해지거나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되는 것이다.
다소 딱딱하지만 학문적 정의는 “인간이 살면서 경험하는 매우 도전적인 상황에 투쟁한 결과로 얻게 되는
긍정적 심리적 변화”(Tedeschi와 Calhoun(1996))이다.
사람이 심각한 스트레스를 경험한 이후에는 자기와 세상에 대한 관점 변화, 대인관계 변화, 삶에 대한 철학적/영적 변화라는 3가지 영역에서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나의 취약함을 인정하게 되고,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움 요청을 통해 관계에 대한 친밀성이 증가하고,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다시 재편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 이 개념을 알게 되면서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아래 그래프이다.
삶에서 어려움은 누구에게나 오기 마련인데, 굴복하거나(succumb), 장애를 갖고 살아남거나(survive with impairment), 원상복귀(recover)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 이전보다 더 번창/번영(thrive & flourish)할 수 있다.
지속적인 실패를 겪으면서 무기력해진다면, 이 어려움을 겪고 난 후 세상을 더 아름답게 보고, 사람들과 더 친밀해지며, 남들의 눈이 아닌 나에게 중요한 것을 인식하게 될 자신을 잠시 떠올려보자. 그리고 외상 후 성장에 대한 자료에 있던 누군가의 말을 믿어보자.
“이 다음에 시간이 좀 흐르고 난 뒤에는 이 순간들이 얼마나 위대한 과정인가를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어요.”
(1) 오주원. 몸은 알고 있다. 트라우마의 흔적. http://contents2.kocw.or.kr/KOCW/data/document/2020/edu1/global/ohjuwon1118/39.pdf
도전과 실패의 과정을 에너지있게 보내고 싶다면
- <심리학 한 조각> 성장 마인드셋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