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까운 소금으로 만든 오이지와 명이 장아찌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났을 때는 아이들이 아주 어렸다. 아기들이라 먹는 것에 얼마나 신경을 쓰던 시절인지,
밀가루도 우리밀로 먹이겠다고 베이킹해서 빵도 피자도 케이크도 만들어 먹이고 식재료는 유기농을 고집했다.
좋은 재료로 만들어 먹이면 모든 게 안전하다고 생각하던 세계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당장 생선은 어찌 먹이나, 내가 좋아하는 어묵의 미래는 어찌 되는가.. 걱정하는 중에 문득 스친 소금.
김치, 장아찌 등 모든 요리에 소금이 안 들어가는 레시피가 있던가? 설탕은 대체가 되더라도 소금은 아니었다.
간장을 써도 결국은 소금이 들어가니까 소금이 제일 걱정이었다.
그래서 원전사고 나기 이전에 생산된 소금을 한 가마 쟁였다. 어찌 뿌듯하던지..
겨울 오기 전 보일러실에 연탄을 쟁이던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소금을 애지중지 간수 빼가며 아기들 데리고 이사 세 번 하는 동안 잘도 모시고 다녔다.
해마다 봄에 나오는 명이로 장아찌를 담그면 고기 먹을 때마다 참 뿌듯한데, 저번 주에 하나로마트에서 1kg 한 박스에 9,900원 하는 걸 보고 들었다 놨다 하면서, 할까 말까 고민을 하다 귀차니즘에 밀려 내려놨다.
그런데 불현듯 이번 주 아침에 일어나 명이 장아찌를 담그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명이 2kg만 사다가 장아찌 하자는 생각을 하고는 양에 맞추어 소금물을 끓여놓고 마트에 갔다.
마트에는 이제 더 이상 명이가 안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 귀한 소금물을 어쩌나! 하는 생각만 했다.
일단 다른 마트에서도 명이를 구하지 못할 경우에는 오이지라도 담그자는 생각에 오이를 10개 샀다.
동네에 있는 슈퍼마켓에 갔더니 반갑게도 명이가 있는데 무려 1kg에 27,000원!
한우를 구우면 고기로 명이를 싸 먹어야 할 듯.
다른 때 같으면 코웃음을 치며 그깟 소금물 버리면 되지.. 했을 텐데, 그게 무슨 소금이더냐..
그리하여 1kg만 사서 오이 10개와 같이 절였다.
그 귀한 소금 때문에 저런 요상한 소비를 했지만, 마음은 풍요롭다. 소금을 지켰으니.
명이 장아찌 1kg 레시피
재료 : 명이 1kg
절임물 : 물 2리터. 소금 200ml (물 : 소금 = 10:1 비율)
간장물 : 간장 500ml, 물 500ml, 식초 250ml, 설탕 250ml
1. 명이 잎은 한 장 한 장 깨끗하게 씻어 물기를 잘 말린다. (비싸니까 소중하게)
2. 소금물은 팔팔 끓여 한 김 식힌 후, 명이에 붓고 누름돌로 눌러서 3일 정도 실온에 방치.
누름돌이 없으면 밀폐용기를 깨끗하게 씻어 물을 담아 눌러도 됨.
3. 명이의 숨이 죽으면 건져서 물기를 뺌.
4. 간장물을 끓여서 밀폐용기에 옮겨놓은 명이에 부어주고 식으면 냉장고에.
5. 2~3일 후 다시 간장물을 따라 끓인 후 다시 부어 줌. 며칠 지나면 고기로 귀한 명이를 싸드시면 됩니다.
*저는 명이 2kg을 하겠다고 절임물을 2배로 만들어서, 오이 10개를 같이 씻어 담아 절였습니다. 별도의 용기를 사지 마시고 집에 있는 곰솥에 절여도 됩니다. 밀폐용기로 눌러주고 냄비 뚜껑을 닫아놓으면 편리합니다.
오이는 건져서 소금물을 다시 끓여 식힌 후 다시 부어줍니다.
오이에 명이 향이 은은하게 나서 뜻밖의 수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