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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Feb 20. 2024

목소리들

이승우







 
 그러니까 요구할 것은 익숙해지지 않는 것, 섣불리 규정하고 넘겨짚고 유형화하고 관성에 넘어지지 않는 것. 벼르고 깨어 있는 것. 집중하는 것. 참여에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것. 고독을 견디는 힘을 기르는 것. 모든 것을 처음 접하는 것처럼 대하는 것. 모든 사람을 처음 접하는 것처럼 대하는 것. 모든 사람을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만나고 모든 소식을 처음 듣는 것처럼 듣는 것. 해질 무렵의 하늘이나 특정한 방향으로 구부러진 나무의 자태나 골목길에 매달린 간판이나 그 간판에 덮인 먼지들이나 책상 위에 놓인 커피잔 바닥의 커피 찌꺼기나, 무엇이든 마치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처럼 경이로움을 가지고 보는 것. 그런 것.
  
               - 소설가의 귓속말, 이승우 저. p.136












 홀로 앉아있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에서 한여름 풀숲 사이에서 생을 이고 가던 쇠똥구리가 보인다. 얼마든지 꾸며낼 수 있는 앞모습과 달리 뒷모습은 정직하고 오롯이 하나이다. 기울어진 어깨선은 그가 지고 온 삶의 무게를 나타내고, 구부정해진 등은 중력을 따라 기울어지는 우리들 삶의 방향이다. 해 질 녘의 순한 빛이 머리에 빛의 화관으로 내려앉는 노신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평범한 일상이 내게 만든 인상 하나에 붙들려 발걸음을 멈추고 오래 서 있던 기억이 난다. 이승우 작가의 소설가의 귓속말에서처럼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만 같은 어떤 경이로움이 그 풍경을 내게 각인시킨다. 그의 고독을 깨고 말을 걸어보고 싶었다. 아직은 서늘한 저녁공기에도 불구하고 한참을 그렇게 여기 하천변 의자에 나와 앉아있는 이유와 무엇을 바라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하지만 정적을 깨는 일조차 그의 사색을 방해하는 일이 될까 봐 바라보다 물러선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필요한 적당한 거리감과 그의 시간에 대한 존중을 위해.













 이승우 작가의 근작, <목소리들>을 는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출가된 작가의 12번째 소설집이다. "한국에서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르 클레지오 인터뷰 인용)로 언급되는 이승우 작가는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의 세계 명작 총서인 폴리오 시리즈에 <식물들의 사생활>과 <그곳이 어디든>이 실리는 등 세계적인 인정을 받는 한국의 대표작가이다.(그런데 저 두 편을 못 읽은지라 할 말이 없어지는...음... )


 나는 소설가의 귓속말로 그를 만났다. 세상을 어떻게 직조하고 만들어내는지, 그가 만든 세상 속 인물들은 어떤 형태와 사고를 가진 인간들이고, 어떻게 그런 존재들을 만들어내는지가 더 궁금했기에 작품보다 그의 생각을 먼저 만나고 싶었다. 그 뒤 처음 열어 본 그가 만든 세상이 바로 <목소리들>이다. 이곳에는 기나긴 방황 끝에 도착한 空家에서 안식을 찾는 인간과 부조리한 세태를 꾸짖는 준엄한 목소리와 기회를 놓쳐버린 순간을 복기하며 끊임없이 갈등하는 인간의 내면들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8개의 단편 소설 중 서문처럼 시작되는 "소화전의 밸브를 돌리자 물이 쏟아졌다"에서는 소화전의 물을 틀어 양동이를 채운 뒤 도로로 가져가 물을 뿌리고 솔질을 끊임없이 해대는 여인이 등장한다. 그녀가 소화전 밸브를 돌리자 '갇혀 있던 우리를 뛰쳐나온, 길들지 않은, 길들일 수 없는 짐승처럼 요란하게 날뛰는' 물줄기로 일대 소란이 일어나고 도로를 적시는 물줄기로 놀란 시민들은 경찰관을 호출한다. 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은 어느 날 갑자기 이 도시에 나타난 유령 같은 여인이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이 소란으로 인해 짜증이 나있는 상태이기에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를 마치 폐휴지처럼 구기듯 경찰차에 태우는데 완강히 저항하는 여인으로 인해 소란이 생긴다. 그때 그들 앞에 나타난 한 사람이 말한다.

 





당신들은 무례합니다. 그분을 풀어주세요.

당신들은 저분이 무얼 하고 있는지, 왜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한 거지요. 그렇지만 무지가 당신들의 무례를 정당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당신들이 모른 것은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니까요. 무지가 당신들을 무례하게 행동하게 한 거라면 무지야말로 나쁘지요. 무례보다 나쁘지요.
                                           - p.18





 따끔했다. 손톱 밑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이 문구를 읽자 갑작스러운 통증에 숨을 삼키게 된다. 누군가의 행동을 들여다보고 생각하기 전, 우리 생활 속 안온한 리듬이나 행태와 반하는 행동을 무조건 이상행동이라 지칭하며 서둘러 치우려 하는 성급한 우리들의 모습에 대한 일침과 같은 문구이다. 알지 않고, 알려고 하지 않고 행하는 행동이 얼마나 많았는지 나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어릴 적 나에게 집이란 모든 일이 끝나고 돌아가 쉼을 하는 곳, 세상 어떤 일이 있어도 돌아갈 곳, 그곳에서만큼은 어떤 세상의 위험도 존재할 수 없는 곳이었다. 아주 어릴 적에만 말이다. 성장을 하며 어느새 작아져 버린 둥지를 바깥에서 바라보며 둥지 곳곳에 새겨진 상처들과 그 속에 남겨진 시간의 흔적들 사이 어긋나 버린 부모님을 보며 인간관계가 갖고 있는 허무와 모순, 사랑이라는 감정의 한계와 덧없음 등을 배우게 되었다.



 지금은 흔적조차 사라져 버린 나의 옛집을 찾아간 적이 있다. 집터에는 무성히 돋아난 풀들만 가득하고, 어릴 적 내가 타고 올라가 앉아 동네를 내려다보며 행복해하던 오래된 살구나무도 태풍에 꺾였는지 잘린 줄기와 텅 비어 썩어가던 그루터기만 남아있었다. 빈 집을, 흔적도 없는 공간을 마주했을 때의 감정은 오랜 시간 내게 남아 나를 괴롭혔다. 발 디딜 곳이 사라진 느낌에 가끔은 내가 끊임없이 부유하는 물속의 작은 부유물이 되어버리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집이란 공간이 갖고 있는 심리적 부피가 저마다 다르기에 온기와 밝음으로만 채워진 집에서 자라난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다.

 


 이승우 작가는 <공가><귀가>에서 어릴 적 가정폭력으로 인해 집을 떠나왔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다시 집을 찾게 된 이들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마치 연작처럼도 읽히는 두 편의 단편에서 재개발이 확정되어 비어버린 동네에 출입금지 경고판을 무시하고 찾아든 인물을 보여준다. 공가에서는 하얀 기도방에 갇혀 정해진 구절을 외워야만 탈출할 수 있던 어린 시절의 폭력을 피해 달아났던 주인공이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며 집으로 돌아온다.

 


 
오랫동안 떠돌아다니는 사람에게 집은 공간적으로 멀고 시간적으로 아주 멀다. 떠도는 사람은, 움직이는 것은 자신이고 집은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변하지만 집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을 붙들기 위해 집이 사람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애써 의식하지 않으려 한다.

 집에 사람이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기 때문에 집이라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으려 한다. 움직이고 변하고 달라지고, 심지어 없어진 집을 몸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 집이 움직이고 변하고 달라지고, 심지어 없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으려 한다. 의식하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나는 마지막이 되어 돌아온 집 앞에서 그 사실을 마침내 확인했다.  
                                             - p.44



 그곳에서 남자는 이미 없어져 버린 집에서

출장으로 중국에 갔다가 갑작스러운 도시 봉쇄령으로 한국으로 남편이 돌아오지 못하자 시가 쪽 식구들이 집을 점령해 버린 한 여인과 마주한다. 서로를 일컬어 빈 껍데기, 혹은 속이 빈 주머니와 같다 말하는 그들이 빗속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서로를 부축하며 자기 연민을 상대에게 투사를 하게 된다. 이때 느끼는 기묘한 유대감으로 텅 빈 공가에서 비로소 세상 어디에도 없는 쉼과 위로를 얻게 되는 인물들을 보여주며 집이라는 공간을 만들어가고 완성하는 것이 다름 아닌 그곳을 영위하는 사람에게 있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마음의 부력>과 <물속의 잠>에서는 형제가 등장한다. 사랑을 받는 자와 밀려 버린 자, 현실에 완벽한 순응을 통해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 두 형제의 대조를 통해 남겨진 자의 번민에 대해 이야기한다. 창세기 인물 중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가 자신의 남편 이삭이 눈이 어두운 걸 이용해 자신이 아끼는 아들 야곱을 위해 장자 에서의 축복권을 팥죽 한 그릇과 바꾸어 뺏어오는 장면이 나온다. 그로 인해 야곱은 에서와 대척점에 놓이게 되고 형에게서 뺏은 축복권을 갖고 도망치는 신세가 되어버린다. 그 장면을 등장시키며 사랑이 만들어내는 차별의 역설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한 <목소리들>에서는 장남의 죽음 이후 잠을 이루지 못하는 어머니가 다른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잠 못 드는 이유와 꿈속에서 만나게 되는 죽은 아들의 모습을 끊임없는 방백으로 말하며 자신의 마음속 죄의식을 덜어내기 위해 다른 누군가 비난할 대상을 찾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집이라는 구조물 안,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다양한 관계들을 통해 보여주며 서로의 삶 속에 긴밀한 연관 관계를 갖고 조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 어떻게 속박에서 벗어나고 때로는 도망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게 만드는 소설이다. 어쩌면 읽는 내내 자신의 유년, 혹은 기억 속 한 날과 겹쳐 괴로울지도 모른다. 또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바라보며 어떻게 삶이 이럴 수 있는지에 대해 한 편의 부조리극을 보고 난 찜찜함으로 책장을 덮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서두에 인용했던 소설가의 귓속말에서처럼 삶은 깊이 톺아보며 처음으로 만나는 세상을 마주하듯 바라보는 시간을 통해 더 깊은 결을 가질 수 있는 성장을 이룰 수 있다 믿는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나는 작은 쇠똥구리가 되어 내 눈앞에 무형의 공을 굴리고 있다. 유년의 어느 날부터 시작된 작은 기억의 조각들이 만화경처럼 자리한 공이 눈앞에서 점점 커다랗게 부풀어 오르며 내가 잊고 있던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며 눈을 감는다. 이 책을 읽는 당신에게는 어떤 목소리가 들려올는지...

 














* 같이 듣고 싶은 곡


자우림 : Going Home


https://youtu.be/3PanyLtNkOM?si=XvCZtRdt4tmeD3OT









#목소리들이승우작가

#이성민작가(조각작품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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