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
그러니까 요구할 것은 익숙해지지 않는 것, 섣불리 규정하고 넘겨짚고 유형화하고 관성에 넘어지지 않는 것. 벼르고 깨어 있는 것. 집중하는 것. 참여에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것. 고독을 견디는 힘을 기르는 것. 모든 것을 처음 접하는 것처럼 대하는 것. 모든 사람을 처음 접하는 것처럼 대하는 것. 모든 사람을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만나고 모든 소식을 처음 듣는 것처럼 듣는 것. 해질 무렵의 하늘이나 특정한 방향으로 구부러진 나무의 자태나 골목길에 매달린 간판이나 그 간판에 덮인 먼지들이나 책상 위에 놓인 커피잔 바닥의 커피 찌꺼기나, 무엇이든 마치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처럼 경이로움을 가지고 보는 것. 그런 것.
- 소설가의 귓속말, 이승우 저. p.136
당신들은 무례합니다. 그분을 풀어주세요.
당신들은 저분이 무얼 하고 있는지, 왜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한 거지요. 그렇지만 무지가 당신들의 무례를 정당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당신들이 모른 것은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니까요. 무지가 당신들을 무례하게 행동하게 한 거라면 무지야말로 나쁘지요. 무례보다 나쁘지요.
- p.18
오랫동안 떠돌아다니는 사람에게 집은 공간적으로 멀고 시간적으로 아주 멀다. 떠도는 사람은, 움직이는 것은 자신이고 집은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변하지만 집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을 붙들기 위해 집이 사람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애써 의식하지 않으려 한다.
집에 사람이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기 때문에 집이라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으려 한다. 움직이고 변하고 달라지고, 심지어 없어진 집을 몸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 집이 움직이고 변하고 달라지고, 심지어 없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으려 한다. 의식하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나는 마지막이 되어 돌아온 집 앞에서 그 사실을 마침내 확인했다.
- p.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