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다시 아침

욘 포세 ㅡ 아침 그리고 저녁

by Bono
제목 바탕사진과 이 사진은 <나탈리 카프리셴코>라는 사진작가의 작품입니다. 그라운드 시소 성수에서 열린 사진전에서 만난 사진들입니다.



수많은 활자를 접한다. 다양한 문장 기호들과 독자를 배려한 꾸미기 기능까지 접목된 인쇄물 혹은 온라인 저작물들 속에서 를 키우는 조각들을 발견한다. 손 닿을 거리 어디든 놓여있는 책들이 주는 위안은 실로 크다. 자처하는 고독 속에서 마음을 걸러내는 자정의 시간이 허락되는 유일한 때이기에 곁에 두는 책들을 좀 더 다양한 주제로 넓혀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 책은 낯설다. 읽기의 이질감 덕분에 되려 내려놓지 못하고 한 번에 읽어 내려가게 만드는 묘한 매력의 책이다. 욘 포세의 <아침 그리고 저녁>(문학동네 ㅡ 박경희 옮김)을 집어 들고 책 마지막 옮긴이의 말을 펼쳤다. 항상 책을 읽기 전에 목차와 이 부분을 살핀다. 다른 문화권의 작가 작품들을 번역하는 분들이 무엇에 중점을 두고, 어떤 것들을 살려서 번역을 했는지를 알고 읽으면 같은 작품이라도 다르게 읽힌다. 욘 포세의 경우 노벨상 후보에도 올랐다는데 내게 너무 먼 당신이었기에 사전 지식이 필요했다. 어쩌면 책 서두를 읽다 내게 익숙한 문장기호 하나 없이 쉼표들로 이어진 행간에 놀라서 일지도 모른다. 낯섦에 대처하는 자기 방어의 제1원칙, 지피지기!







산문이 노래가 되어 흐른다. 한 편의 연극을 보듯 책장을 넘기면 막이 오르고 익숙한 일상의 단편들이 무대 뒤 영상으로 가만히 흐르고 배우들이 등장해 그들의 언어로 대화를 나눈다. 가만히 오고 가는 대화는 음절 사이, 행간 사이의 침묵과 거리를 만들어 낸다.


나는 그 침묵과 거리를 나의 체험과 생각들로 메꾸고 이어간다. 속도감 넘치는 책들도 많다. '삶은 이런 것이다, 이렇게 살아야 현대인의 바르고 성공한 삶이다!'라고 주입하듯 쏟아붓는 자기 계발서들부터 스토피아적 세상의 멸망을 다룬 작품들 속 황폐해진 지구에 홀로 남겨진 인간들의 고군분투까지 수없이 많은 주제들이 빨리 다음장을 넘기라 재촉하는 때 욘 포세의 소설을 거꾸로다. 맨 마지막장을 덮고 나면 다시 처음으로 회귀해 오는, N회차의 인생을 그려보게 만든다.


이제 아이는 추운 세상으로 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혼자가 된다, 마르타와 분리되어, 다른 모든 사람과 분리되어 혼자가 될 것이며, 언제나 혼자일 것이다, 그러고 나서, 모든 것이 지나가, 그의 때가 되면, 스러져 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왔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무에서 무로, 그것이 살아가는 과정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새, 물고기, 집, 그릇, 존재하는 모든 것이, 올라이는 생각한다,

- 욘 포세, 아침 그리고 저녁 p16









쉼표만 존재하는 문장 기호 속에서 나는 한 인간의 탄생과 마지막을 만난다. 인물의 일대기라 생각하고 책을 연다면 오판이다. 그의 삶이 지나는 궤적들은 결과물처럼 남은 주변인들의 등장으로만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태어났던 그때처럼 홀로 남겨진 주인공 요한네스의 아침 산책을 따라 걷고 또 걷는다. 갓 태어난 아기의 것처럼 세상 모든 걸 처음 보는 듯 바라보는 시선 속에 나 또한 두려움과 호기심이 동반된 채 따라나선다. 알 수 없는 나의 마지막을 미리 겪어보는 여행자처럼.






책 전체 내용에서 마침표가 찍힌 부분은 열개 남짓, 요한네스가 확신할 수 있는 자신의 사고, 기호 등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 동그란 마침표가 존재한다. 그 외 비어있는 부분들은 삶에서 우리가 이렇게 확신하며 살 수 있는 것이 몇 안된다는 걸 보여주는 반증이란 작가의 은유를 엿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제일 놀라웠던 은유는 요한네스의 막내딸 싱네가 연락이 닿지 않는 아버지를 찾아 허겁지겁 길을 나서던 장면에서 딸을 부르며 다가선 요한네스와 싱네가 서로 교차하는 장면이었다. 보이지 않는 존재를 느끼는 듯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힌 싱네와 끊임없이 소통하려 노력하지만 결국 스쳐 지나가는 딸을 보며 망연자실해 하는 요한네스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삶과 죽음의 교차에 대해 이야기 한다. 도처에, 그리고 어쩌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들로 자리해 있는 것임을.


우리가 사는 동안 끊임없이 느끼는 불안과 외로움, 고독, 삶과 죽음이란 우리를 감싸고 존재하는 추상의 감정들에 대해 늘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러한 탐색이 주는 쉼표를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라 말해주는 소설, 욘 포세의 "아침 그리고 저녁'. 하루의 공허를 덜어내지 못해 허기진 밤이라면 가만히 이 책의 책장을 넘겨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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