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없어도 일단 가진 걸로 시작해 보자구요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지금 딱 5분만 해 보기.
5분도 길다. 1분만 해 보자.
1분은 엄청나게 짧은 시간인 것 같지만 생각보다 길었다. 소파 바로 옆에 둔 책을 집어 드는 데에는 몇 초 걸리지도 않았고, 그 나머지 40몇 초 동안은 문장을 꽤 많이 읽을 수 있었다. 1분 안에 해야 하니 아주 바쁘게 무언가 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건 할만 한데? 이제 1분은 짧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5분 동안 무언가 붙잡게 된다.
당장 결과물이 나오지 않더라도, 멋지게 정리가 되어 보이지 않더라도, 계획만, 조금이라도, 아이디어라도 노트에 적어 보기. 그리고 그 메모를 한 곳에 모아 두기.
그리고 그 시간이 쌓인 것을 나중에라도 살펴 보자. 분명히 다시 펼쳐 보면 도움이 될 날이 온다.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지!’
그러다 보면 점점 더 시간을 늘려 무언가 하게 된다.
정말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
유리에 베여 피부를 당겨 꿰매는 부상을 입은 후의 내 일상었다. 놀라운 사실은, 다치기 전에는 오히려 저 정도도 하지 않고 살았다는 것이다.
나는 늘 외주만 끝내 놓고 다시 소파로 가 여러가지 액정들만 들여다 보며 아이디어가 마구 떠오르는 머릿속을 외면하며 시간을 흘려 보냈다. 그러다 몸 어딘가가 물리적으로 불편해지고 나서야 몸이 멀쩡할 때야말로 많은 일을 편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머리 쓰는 일에는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는데, 컨디션까지 좋지 않다. 뭐 하나 하는데 드는 시간도 엄청나게 늘어나 버렸다. 할 수 있는 일의 선택지는 엄청나게 좁아졌고, 일을 할 때의 허들이 엄청나게 높아지고, 많아졌다.
크게 다친 경험으로 나의 일상에 대한 생각을 바꿔 놓은 동시에 더 크게 다치거나 더 오랫동안 신체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사람들의 고통과 그들과의 공존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아니, 나는 고작 손이 찢어지고 힘줄이 긁혔을 뿐인데도 일상이 이렇게나 불안정해지고 저해되었는데….
한동안 나는 손으로 책을 붙드는 일도, 타이핑을 하는 일도 오래 하지 못해 짧게 짧게라도 무언가 하고 있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불편하게 살아야 할지 몰라 더더욱 활동에 간절해졌다. 그렇게 짧게 짧게 실행해 기록해 둔 글이 바로 <혼자서 뚜벅뚜벅 번아웃 극복기>다. 그로부터 8개월이 지난 지금은 거의 다 나았다.
정신적으로 지쳤을 때에도 이렇게 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다. 딱 1분만, 5분만, 책 한 줄만….
심리적인 외상이든 물리적인 외상이든 고통을 완화할 방법과 재활 방법을 찾는 게 중요했던 것 같다.
*
이런 글을 쓰고 나니 엄청난 발전을 이룬 것 같지만, 나는 이 시리즈에서 뭔가 대단한 성취를 이뤄낸 과정과 결말에 대해 쓰려는 것이 아니다.
지친 마음에, 그리고 어차피 조금은 망한 인생이니까 솔직한 이야기를 풀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번아웃 극복기를 써 보기로 했다.
나는 대기업을 퇴사한 것도 아니고, 혹은 빈곤을 극복하고 엄청난 성공을 이룬 것도 아니며, 따듯한 엄마의 밥과 든든한 아빠의 차 이야기는 쓸 수 없지만, 나를 둘러싼 여건과 환경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내가 가진 만큼의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써서 천천히 생활을 끌어올리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쓸 수 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는 왜 없을까? 너무 한심해서 쓰거나 읽을 가치도 없기 때문이었을까? 역시 해 봐야 알겠지.
내 마음속 목소리들은 또 다시 ‘사람들이 이런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일고 싶어 할 것 같아?’라며 발목을 붙잡고, 그래서 또 오랫동안 머뭇거렸지만, 스타트를 끊고 싶었다. 내가 읽고 싶은 이야기는 일단 내가 써야겠다. 그리고 또 당장 1년 뒤에라도 읽어 보면 이런 시절을 지났구나 하겠지. 과연 1년 후, 6년 후의 나는 목표를 이뤘을까?
*
요즘 애들은 이럴 것이라고 분석하고 관찰한 책은 많이 보이지만, 정작 밀레니얼 세대가 쓴 생생한 이야기는 수면 위로 잘 떠오르지 않는 것 같다. (거의 발굴해야 보이는 수준…) 어떤 글들은 ‘요즘 애들은 이럴 것이라 믿고 싶은 이야기, 너희들의 태도는 이래야 한다고 말하는 뉘앙스로 읽혀지기도 했다. 나는 나처럼 살아온 MZ 세대가 얼마나 타인에게 멀끔하고 친절하고 똑똑하게 보여져야 하는지보다는 지금까지 어떻게 생존해 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싶었는데, 그런 책은 한 100년 후에나 어느 최장수 어르신의 회고록에 등장하게 될 것 같달까.
어린 시절에 대한 의문과 원망, 깨진 독에 물 붓기 같았던 20대의 시간들, 그리고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복잡한 속과는 달리 겉으로 드러나는 내 일상은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것은 없을 것 같다.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있고, 클라이언트와 메일을 주고 받으며 결과물을 만들고, 정산을 받는 일상이 이어진다. 전에 살던 주소로 택배가 배송되어 버린 날 핸드폰 너머로 선선했던 전 집주인 할머니의 싸늘한 목소리에 오만 생각을 다 하기도 하는, 임대 주택 입주를 앞두게 되자 결국 좁고 쿰쿰한 자신의 자취방으로 돌아가지 않은 동생이—몇 년 전에 드디어 장만한 소파 위 벙커 침대에서—이직한 회사로의 첫 출근을 앞두고 늦잠을 자는 한가롭고 평온한 금요일 오후에, 역시나 또 머뭇거리다 일요일 마감인 브런치북 프로젝트 신청을 위해 부랴부랴 글을 정리하고 있는, 내 손으로 만든—내 눈에는 경이롭지만 남들 눈에는 고만고만한—환경에서 아마도 많은 타인들과 비슷할 일상을 보내고 있는 1인이다.
*
<혼자서 뚜벅뚜벅 번아웃 극복기>에서는 타고난 것도, 가진 것도 많지 않았던 환경에서 독립한 후, 불안, 무기력이 심했던 일상이 루틴과 약간의 실행이 있는 일상으로 변하게 된 계기와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할 예정이다.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대한 내용은 모호할지도 모른다. 모든 변화는 너무나도 연쇄적이어서, 내가 뭘 어떻게 했길래 일상이 변하게 된 것인지 나조차도 파악이 잘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혹시 엮어 놓고 보면 보일까, 이런 이유에서라도 꼭 글을 연재해 보고 싶어졌다.
아직도 나는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종이에 마구 받아 적는 양에 비해 실행력이 부족하고 생각만 하다 많은 시간을 흘려 보내고 있지만, 퇴사한 직후 보다는 훨씬 건강한(?), 그리고 대책이 ‘조금은’ 있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이런 하찮은 나의 일상도 불행하지는 않게 굴러는 가고 있다. 나와 함께 조금만, 아주 조금만 기운을 내서 ‘아무것도 안 했다’는 자책감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조금이라도 하며 ‘쌓여가는 시간의 힘!’을 경험해 보자.
+
시작부터 분량 실패다. 과연 나는 자소서를 쓸 때도 쓸 게 없어서가 아닌, 쓸 게 너무 많아서 줄이느라 고생했던 사람이었다. 프로 구구절절러다.
과거의 나처럼, 그리고 지금의 나처럼 사람들이 ‘성공’이라고 부르는 일과는 동떨어져 있지만 더 나은 삶과 일상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의 존재가 당신과 함게 뚜벅뚜벅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응원의 마음이 전해졌으면 좋겠다.
#내향인 #프로불안러 #공황 #생각과잉 #번아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