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이제야 Oct 24. 2021

태어날 때부터 번아웃 인간?

#불안한 날들

어린 시절의 나는 낯선 상황을 견디지 어려워 하는, 뱃속이 간질간질 하면서 눈물이 나온다고 말하는 울보였다. 집에서는 물론이고 유치원이든 어디든 여기저기서 늘 혼나곤 했다. 왜 우냐고. 눈물이 나오는 걸 어떻게 해요. 다 커서 생각하니 더 의아하다. 수줍고 잘 긴장하며 우는 아이를, 어른이 그렇게 대해서는 안 될 것 같은데 말이다. 어쩌면 나는 어린시절부터 긴장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과 마주했을 때의 신체화 증상을 겪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때는 친구들과 매일 노는 데에 지친 나머지 친구의 전화가 오면 제발 엄마가 나가 놀지 말라고 말해 주기를 바라는 내향인이었다. 다른 이유는 몰라도 ‘엄마’의 허락은 초등학생들의 세계에서 절대적인 명령이었으니 내가 나가 놀기 싫은 이유를 구구절절 늘어 놓으며 친구를 설득하지 않아도 되었다. 내가 거짓말을 하다 들키면 매를 드는 엄마는 나가 놀기 싫은 나에게 거짓말을 해 주었다. “(수화기를 들고) 엄마, 나 친구랑 나가서 놀아도 돼?” “안 돼. 오늘은 해야 할 일이 있잖아.” “(수화기에 대고) 엄마가 안 된대. 미안.”


꼭 혼난 아이 같다며 우는 표정 좀 하지 말라던 엄마의 말, 친구들로부터 ‘너 화났어?’라는 말을 자주 듣던 나는 학년이 올라갈 수록, 그리고 특히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자 씩씩하고 싹싹하고 목소리는 높고 늘 웃고 있는 이미지를 엄마가 아닌 다른 어른들에게서도 권유 받기 시작했다. 사회에서는 그래야 한단다. 회사를 다니기 시작했을 때까지도 나는 내향인과 외향인의 구분, 사회에서는 나와 같은 내향성 인간은 찐따나 찌질이, 적극적이지 않고 분위기나 망치고 무뚝뚝해서 기분 나쁜 인간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나는 외향적인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게 미덕인 줄 알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나는 죄송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를 입에 달고, 적극적이고 쾌활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늘 웃는 어른이다 못해 웃음이 헤픈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천성이 어두워 그런지 그림자를 아주 뜯어내지는 못했다. 나의 그림자를 발견하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독립을 해 동생과 살면서부터는 모든 의사결정을 내가 해야했고, 그 과정을 방해하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안그래도 학창 시절 부터도 선생님으로부터 뺀질뺀질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던 나는 입을 마냥 다물고만은 있는 편은 아니었고, 나쁘게 말하자면 변명이 긴 편이기도 했다.

“어른이 말하면 그냥 ‘네’라고 말하는 거야, ㅁㅁ씨.”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역시 갈 길이 멀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모든 사람은 긍정적인 면만 드러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마음속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주변에 어른이 많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사회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서른이 가까워져서야, 평범한 부모님 아래서 자란 사람들도, 내가 선망하는 외국 유학을 다녀온 한 두 살 차이의 또래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정 환경의 문제만은 아니었구나…. 그것도 그것대로 씁쓸했다. 우리 주변에는 우리에게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그 말대로의 모습을 갖춘 어른이 드물었다는 사실을, 아주 늦게서야 알아차린 것이었다. 나는 점점 입을 다물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변명일 뿐이었다.


또래들 중에서도 생각과 의심이 지나치게 많고, 감정에 사로잡혀 있는 일에 익숙했던 나는 (『우울할 땐 뇌과학』을 읽어 보시기를 추천함) 점점 지쳐가는 내 자신이 한심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어차피 한심한 인간일텐데, 그에 걸맞게 몸이라도, 마음이라도 편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프리랜서가 되기 전, 2년 동안이 내 인생 두번째로 최악의 시기였다. 일은 최대한 챙겨 했지만, 그 외의 태도는 거의 마이너스였다. 첫 달부터 월급이 밀린 경험, 좋은 사람이라 믿었던 사람들의 모순적인 태도, 나는 그저 잔재주가 많아 써 먹기 좋은 호구였다는 깨달음의 충격은 마치 자갈이 한 번 떨어져 금이 간 유리가 어느 순간 쩍 갈라지듯 나의 일상에 서서히, 그리고 점점 더 큰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착하고 싹싹한 사람으로 살기 싫어졌다. 내가 뭘 어떻게 해도 무례할 사람은 늘 무례하게 굴었다. 너무 뒤늦게서야 그 얼굴들이 동동 떠올랐다. 그런 사람들에게도 늘 씩씩하게 행동하느라 힘을 빼지 말았어야 했다. 주변의 사람들은 ‘그래도 노력하면 다 돌아와’라는 노래를 부르곤 했다. 아니던데요! 무슨 짓을 해도 우리가 허허실실 웃기만을 바랐던, 그들의 바람은 아니었을까.


프리랜서가 되어서는 나의 예전 모습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무기력해지고, 생각도 이기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일은  하고 있는데, 마음은 과거에 머물러  화가  있었다. 극단적으로 마음과 몸이 편한 선택만을 하고 싶어졌고, 그런 생각과 싸우는 일상을 보냈다. 사람이, 매일 그렇게 컨디션이 좋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대로라면  모든  놓고 싶어질  같았고,  존재 자체는 민폐 덩어리가 되고   같았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차라리 마음 편했다. 메일이 오는  무서울 지경이었다.


외주가 없을 때면 늘 소파에 누워 살았다. 누군가가 나의 이런 모습을 봤다면 팔자가 좋다거나, 게으르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럴만도 하다. 나에게는 독함, 치열함이 없었다. 가난한 사람은 무조건 부지런함과 치열함과 독한 마음과 멘탈을 가져야만 한다니, 왜 하필 내가 이런 천성과 이런 환경을 타고나 버린 것일까. 매일 부정적인 생각에 곧잘 빠져 있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은 이런 내 상태를 ‘먼지가 한꺼번에 떠오르는 시기’라고 표현하셨다.


*


동생을 잘 챙기는 언니 역할에서도 의식적으로 가벼워질 필요가 있었다. 평생을 아무 생각 없이 지내다 완전히 지쳐버리고 나서야 20대의 내 시간과 에너지와 돈에 관한 억울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모든 것을 혼자 쳐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동생을 원망하는 마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늘 가슴이 두근거리고 눈 앞이 하얬던 나는 화가 나는 마음에 사로잡혀 더더욱 깊은 컨디션 난조에 빠졌다. 동생과 먹을 저녁을 차리다가도 나는 쉽게 동생에게 화를 냈다.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다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K 장녀라는 공통점을 가진 (새로운)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은 “나도 동생이 있는데, 내가 동생을 싫어하는 건 아닌데…. 그래도 같이는 못 살 것 같은데….”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돈은 중요하다”는 이야기까지 해 주셨다.

아직도 나는 누군가를 도와주고 챙겨주기를 좋아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도 지금은 내가 지칠 때까지 동생을 도와주고 챙겨주다 혼자 지쳐 화를 내는 지경까지는 가지 않게 되었다. 나의 챙김에 익숙했던 동생은 식사를 따로 하거나, 동생이 집에 없는 사이에 나 혼자 요리를 해 먹는 일에 섭섭함을 느끼는 듯 했지만 또 금세 적응했다. 내가 챙겨 주지 않으면 동생이 곤란해 하고 섭섭해 할 거라 착각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엄마 역할은 끝이다. 난 동생의 엄마가 아니니까. 동생도 정말로 납득해 주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


나는 다시 늘 혼나던 어린시절처럼 무뚝뚝해졌다. 살뜰하게 설명하고, 왜인지 초면부터 신경질적으로 나를 대하는 사람들에게도 친절하고, 내가 무언가를 잘못했기 때문에 상대방이 그런 태도를 보였을 거라며 나를 자꾸만 되돌아보던, 문제를 풀어 주고, 도와주던 나는 이제 없다.

밖에 나가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없으니 좀처럼 밖에 나가지 않는다.

이제는 누구라도 울지 않고서는 못 배길 상황에서 마저도 울지 않는, 감정이 약간 고장난 인간이 되었다.

내 존재 자체가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시달리는, 내 옆을 스쳐 지나간 말이나 글로 일상에 큰 흔들림을 느끼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회사에서도, 친구 사이에서도, 동생과의 일상에서도 그렇다. 나의 한계를 명확히 하고, ‘해야만 한다’는 맹목적인 실행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일찍 깨달았으면 좋겠을텐데, 과거에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어 또 화가 난다. 버거웠던 모든 일이 모두 내 탓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지나온 시간이 당연한 것만은 아니었음을 알아차리고 난 후,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분노가, 나를 향한 분노에 더해졌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지난 시간에 대한 분노는 정말 쓸모가 없지만, 늘 화가 난다. 그게 내 비밀이다.





#내향인 #프로불안러 #공황 #생각과잉 #번아웃


이전 02화 프롤로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