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날들
고생은 하기 싫어하는 마음을 감추고 잔머리를 굴려 아무튼 원하는 것들은 어떻게 어떻게 성취하고 살았다. 그 성취가 너무 보잘것 없고 끝도 없어서 그렇지, 뭣도 모르는 나이에 동생과 독립해 나의 공간과 살림을 내가 번 돈으로 꾸려왔고, 끝끝내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국가의 복지와 학자금 생활비 대출로 버티며 대학을 졸업해 늘 상상하기만 했던 책상 앞에 앉아 일하는 회사에 들어가게 된 것만으로도 잘 버텼다는 생각을 했다. 책에 둘러싸여 일을 하게 되었다. 이 얼마나 멋진 사람들과 멋진 일인가.
회사를 들어가서도 나를 대놓고 싫어하는 다른 팀 직원을 두고도 ‘그럴 수도 있지’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는 게 프로페셔널한 자세라고 생각했다. 1년 동안 이직을 제안했던 곳에서 입사 당일 회사 사정을 말하며 150만원의 월급을 이야기 했을 때도 괜찮다고 말했다. 나는 나를 믿어주고 제안해 준 그 회사에 고마웠으니까. 진짜 멍청하게도, 괜찮다고 말했다. 퇴직금으로는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즈음, 동생의 차비가 모자란다거나 점심에 편의점 김밥 한 줄만 먹었다는 말이 늘었다. 동생이 아르바이트를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면서도 고생스러운 일을 하라고 떠미는 것보다는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는 환경에 두고 싶다는 마음이 교차했다.
그런 달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책임감, 의무, 강인한 정신력 따위의 ‘당연’했던 일들에 대한 의지를 놓아 버렸다.
이직을 했다. 또 스타트업이었다. 직급은 계약직 사원. 팀장님들을 향한 대표님의 쌍욕 소리와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어!’ ‘이것도 우선순위고 저것도 우선순위야!’ ‘다 급해, 다!’ 따위의 말들이 내 옆을 날카롭게 비껴갔다. 이런 상황을 견딜 수 있는 항체가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왜 더이상 못 견디겠지? 흥미롭고 커다란 문제를 해결해 내고 싶다는 욕심과, 그래서 나에게 돌아올 장기적인 효과는 무엇일까 하는 회의감이 충돌했다. 내가 개발팀 소속이었다면 수월했을텐데, 계약직이 거래처 사장님과 담판을 지으라고? 나에게는 흥미로운 도전이지만 근무 조건이 말도 안 된다, 나에게도 저런 팀장님이 계셨더라면, 이 일을 계기로 정규직 전환이나 부서 이동을 제안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난 왜 이렇게 용기가 없지?
나는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졌고, 그나마도 퇴사는 미뤄지고 미뤄지다 (진짜로) 염증 인간이 되어 그곳을 나오게 되었다.
그 후 3개월 동안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니며 상담을 받다가 약간의 약을 처방 받아 먹었다. 그정도로도 조금 호전이 있었다. 눈앞이 하얗지 않았다. 집중하는 데 드는 에너지가 줄어든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 덜 지쳤다. 호흡도 편해지고 배도 매일 아프지는 않게 되었다. 버스를 타도 근육이 과도하게 경직되지 않았다. 버스 정류장에 15분 이상을 서 있어도 현기증이 나지 않았다. 기절하기 직전의 느낌이 드는 일도 줄었다. 꽤 서 있을 만했다. 이런 증상을 없앨 수 있었다니. 나는 남들도 이런 상태를 늘 견디며 사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니까, 보통의 사람들은 이 증상 없이 일상을 보낸다는 거지?
그제야 나는 내 의지를 더해 생각의 흐름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어떤 일에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포기할지도.
비전도 아이디어도 정산도 세금계산서도 거래처 관리도 미팅도 설득도 리서치도 협업 제안도 모두 내 몫이라면, 내가 나에게 일을 시키고 싶어졌다. 내가 나를 고용하고 싶어졌다. 회사는 만족시키지 못하더라도, 나 한 사람의 몫은 하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이미 사업자를 등록해 투잡을 하던 중이었기 때문에 퇴사 후에도 일을 이어서 할 수 있었다. 이때는 퇴사 전을 대비하고 어쩌구 저쩌구 하는 방법론을 알고 그랬던 게 아니라, 그때는 지금보다는 작은 건들이 들어올 때였기 때문에 일을 병행할 수 있었다. 그때가 내가 가장 많은 수입을 가졌을 때였다. 새벽에 아이폰을 들여다 보는 게 아니라 외주 일을 하니까 막 한 달에 300을 벌 수 있는 거야. 누군가에게는 우습겠지만 나에게는 그게 큰 돈이었다. 아, 그런데 너무 피곤해. 이렇게는 오래 살 수 없을 것 같아. 나는 적당히 피곤하고 적당히 벌고 싶어.
나는 다시는 회사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전업 프리랜서가 되었다. 후다닥 포트폴리오 사이트를 만들고, 도메인을 붙이고, 이메일 계정을 만들어 일하기 시작했고, 365일 중 350일 정도는 집에 있는 인간이 되었다. 나갈 일이 없으니 지출도 없었다. 나와 동생의 쥐똥만한 수입을 합치니 월세외 공과금을 내고, 학자금 상환, 둘이 먹을 식재료들, 내 책, 생필품 정도는 살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수입은 적었지만 앞으로의 일은 내 판단과 선택에 달려 있다는 생각에 마음 만큼은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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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게 문제였다. 독립을 했을 때부터 수도 없이 깨달았던 일이지만 늘 잊는다. 가장 최악의 상황을 넘었다고 생각하면 또 그 다음으로 최악인 상황들과 마주하게 된다.
일이 다달이 있기는 했는데 볼륨이 너무 작았다. 장을 보고 나면 내 손에서 사라져 있었다. 또 다른 종류의 불안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다시 곰팡이 방에 살 때처럼 오늘 산 맛있는 올리브오일을 다시는 사지 못하게 될 것 같아 아껴 먹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또 다시 빈곤했던 20대 초반의 시절로 돌아가게 될 것만 같았다.
여기에 조급함과 산만함은 덤이었다. 기대하는 일을 앞두었을 때, 기다리는 일이 생겼을 때, 그 시간을 견디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결과를 알게 되기까지, 정산이 들어오기 전까지, 외주 말고는 어떤 일도 하기가 어려운 문제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요리도, 개인작업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또 1년이 흐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