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신 동생은 귀엽다. 꽤 동생답다.
술 마신 동생은 귀엽다. 꽤 동생답다.
평소에는 고양이처럼 까칠하지만, 술만 마시면 순한 양이 된다.
한결 편해 보이는 동생의 모습에 내 마음도 덩달아 느슨해진다.
대화도 길어진다.
내 방에 들어와 덥지 않냐며 창문을 열어주고, “누나한테 보여줄 거 있었는데” 하며 말이 많아진다.
얼른 가서 씻고 자라고 방에서 내보냈더니, 갑자기 택배 상자를 뜯어 초콜릿 한 상자를 건넨다.
우연히도 내가 좋아하는 초콜릿이다.
“이거 맛있는 건데, 너 진짜 안 먹어도 돼?”
“그래? 그럼 내일 밥 먹고 하나만 줘.”
마음이 순두부처럼 말랑해진다.
평소에는 털을 곤두세우더니, 술만 마시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매일이 오늘만 같으면 좋겠지만, 술이 전제인 다정함이라 욕심을 접어둔다.
한 명만 취한 우리의 취중 대화가 끝났다.
이런 밤이 고맙다.
예전에는 동생을 이해하기보다 판단할 때가 많았다.
바로 옆 방에 있는데도 멀게만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다.
동생은 방 안에서 잘 나오지 않았다.
문을 걸어 잠가서 하루에 한마디도 하지 않는 날이 많았다.
엄마는 힘든 이야기를 내게 쏟아냈다면, 동생은 아픔을 고스란히 속으로 삼켰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자퇴를 선언했다.
집안이 뒤집혔다. 엄마와 동생의 다툼이 잦아졌다.
그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하루는 동생과 대화를 시도했다.
학교 다니기 힘든 이유를 알려달라고, 엄마 마음도 생각해 달라고.
눈물이 쏟아졌다.
그 순간, 동생이 울부짖듯 말했다.
“제발 울지 좀 마. 엄마랑 누나가 울면 나는 미쳐버릴 거 같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짐작도 못 한 마음이었다.
울지 말라는 말에 더 울고 말았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부터였다. 동생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 순간이.
동생에게 한 걸음 다가가 보기로 했다.
용기를 내서 데이트 신청을 했다.
노래방에 가고, 스티커 사진도 찍었다.
동생과 일상을 보낼 수 있다는 게 기적 같았다.
하지만, 멀었던 남매 관계가 하루아침에 가까워질 수는 없었다.
동생의 힘듦을 다 알아주지 못했다. 어떤 생각인지, 어떤 마음인지 들을 수 없었다.
결국 동생은 자퇴를 했다.
그리고 검정고시를 봤다.
공부랑은 담을 쌓은 줄 알았는데, 합격 소식이 기특했다.
스스로 원하는 길을 찾아 나섰다.
언제 이렇게 컸는지, 이젠 나보다 어른 같았다.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리기 전에, 동생이 누리지 못한 시간을 선물하고 싶었다.
제주도 여행을 제안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해 수학여행 한 번 못 간 동생이었다.
웬일인지 동생이 흔쾌히 따라나섰다.
대학에 들어가 받은 장학금으로 비행기표를 끊었다.
남매가 처음으로 함께 떠나는 여행이었다.
추억을 공유하는 일은 마음을 나누는 일로 이어졌다.
그 여행 이후로 우리는 조금씩 가까워졌지만,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하루는 기분이 좋다고 친근하게 굴다가, 어느 날은 말도 걸기 어려울 정도로 찬 바람이 불었다.
왜 엄마와 나에게 매일 다른 태도를 보이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가족이지만 동생을 대하기가 누구보다 어려웠다.
그래서 한 발짝 물러섰다.
누나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기다림뿐이었다.
때로는 친구처럼 장난을 치다가, 때로는 누나로서 묵묵히 받아주는 일.
기다림 끝에서 사랑을 배웠다.
시간이 약이라더니, 우리는 쓰디쓴 약을 천천히, 오래 삼켜냈다.
과거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언젠가는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남매가 된다고.
이제는 서로를 이해한다.
한 지붕 아래에서 자란 사람끼리 연대하는 마음이다.
엄마와 동생이 싸우면 나는 동생 편을, 엄마와 내가 싸우면 동생이 내 편을 들어준다.
평소에는 여전히 까칠한 고양이다.
술이 깨고 낮이 찾아오면 순한 양은 밤과 함께 사라진다.
술을 마셔야 찾아오는 다정함을 자주 볼 수는 없지만,
요즘 들어 밤잠을 설친다는 그 아이의 밤이 편안하기를 바란다.
힘들었던 만큼, 행복하기를.
가끔은 힘듦을 혼자 삼키지 않기를.
장난기 많던 어린 시절의 네 모습이
술이 없는 낮에도 찾아오기를.
동생을 이해하고 싶어서 오늘도 조금씩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고양이일지, 양일지 알 수 없는 동생이라는 이름의 선물을 매일 조심스레 열어본다.
지안
사람과 사랑을 탐구하며 <우리는, 사랑으로>라는 중제목 아래 여섯 편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무너지지 않는 사람』
공간 사계절에 모인 다섯 작가가 귀촌·여행·책방·음식·관계를 솔직하게 기록한 5인 5색 에세이집입니다.
본 도서에서 재미와 감동, 따듯한 통찰이 담긴 다른 챕터들도 함께 만나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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