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사랑하다가, 미워하다가. 결국 사랑이다.
엄마를 사랑한다.
아빠와의 관계에 힘들어하던 엄마를 이해하고 싶었다.
엄마가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마음 편히 살아갔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바랐다.
엄마를 미워한다.
나는 아빠 때문에 힘들었던 일들을 듣고 싶지 않았다.
울고 싶지 않았다. 행복하고 싶었다. 마음 편히 살고 싶다. 진심으로 바랐다.
내 마음을 나조차 이해하는 게 어려워서 온종일 마음이 시끄럽다.
엄마가 안쓰럽다가도,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한 나도 안쓰럽다.
어린 날의 내가 이따금 떠오른다.
엄마와 아빠 사이가 좋아지길 바라며 편지를 수도 없이 썼다.
서로의 마음을 대신 전해주던 열두 살의 내가, 이제야 속상하다.
내가 쓴 편지를 읽으면 엄마와 아빠 사이가 좋아질 거라고 굳게 믿던 때가 있었다.
그들 사이에 오해가 있어서 그런 거라고, 서로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눈치를 보며 자랐다. 다른 사람 마음을 헤아리는 법을 먼저 배웠다.
동생과 내가 잠들면 싸움이 시작되었고, 낮에도 분위기는 살얼음판이었다.
결국 아빠가 집을 나갔다.
답답해서 나간 줄 알았는데, 오래도록 아빠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는 때때로 울고 힘들어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집 안의 긴장이 조금씩 풀렸다.
그제야 알았다.
엄마와 아빠는 함께 살 수 없었다는 것을.
동생과 나는 아빠를 따로 만났다.
그러다가 엄마랑 아빠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날도 있었다.
동생과 나의 졸업식에는 늘 함께였다.
가족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좋았다가, 또 싸우지는 않을까 마음이 불안했다.
내 졸업식인데 내 마음보다 엄마 아빠의 마음을 먼저 생각했다.
대화할 거리도 없었다. 안 맞는 신발을 신고 걷는 모양새였다.
그저 밥 한 끼 같이 하자고 모인 건데, 가족끼리 밥 한 끼 먹는 게 이리도 어려운 일이었던가.
그렇게 시간은 흘러서 나는, 내 마음을 이해하려 부단히 애써야 하는 어른으로 자랐다.
마음이 힘들었다.
내 일로도 버거운데, 엄마는 자꾸 아빠 때문에 힘든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모든 일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에게 말하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더는 듣기가 힘들었다.
엄마의 남편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아빠였다.
엄마가 본 아빠의 모습이 아닌, 내 시선으로 아빠를 바라보고 싶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나는 오작교를 자처했다.
엄마 앞에서는 아빠 편을, 아빠 앞에서는 엄마 편을 들었다.
그러나 아빠는 견우가 아니었고, 엄마는 직녀가 아니었다.
그러니 오작교는 애초에 필요하지 않았다.
아무도 바라지 않았는데, 나는 자꾸만 내 욕심으로 오작교를 만들었다.
결국, 오작교는 무너졌다.
이제는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았고, 누구의 편도 들고 싶지 않았다.
강산이 변한다는 십 년 동안 나도 변했다.
엄마 앞에서 말수가 줄었다. 마음이 힘들어 엄마에게 편지를 썼다.
엄마도 점차 아빠 얘기를 줄였다.
그렇게 나는 뒤늦게 내 마음에 귀를 기울였다.
철이 들다가 말았다.
왜 나를 당신에게 기대지 못하는 사람으로 키웠는지.
마음이 힘들 땐 누구에게 기대야 하는지.
결국 애꿎은 엄마를 탓하게 되었다.
그러고 나면 내가 싫어졌다.
어린 시절의 나를 이제야 대변하듯 엄마 앞에서 퉁명스러워지는 내가 싫었다.
엄마와의 시간을 부채감과 의무감으로 보내는 것도 싫었다.
이런 마음을 먹은 것도 나고, 이런 관계를 선택한 것도 나인데.
너무 멀리 돌아왔나 싶어 체념하다가도, 다시 이상적인 모녀 관계를 그린다.
본인도 그렇게 자랐기에 끈끈한 모녀 사이를 만드는 방법을 몰랐음을 이해한다.
그래도 나는, 엄마와 내가 엄마와 할머니의 관계를 닮지 않기를 바란다.
엄마를 사랑하다가, 미워하다가.
결국 사랑이다.
엄마랑 잘 지내고 싶어서,
오늘도 엄마를 생각한다.
지안
사람과 사랑을 탐구하며 <우리는, 사랑으로> 라는 중제목 아래 여섯 편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무너지지 않는 사람』
공간 사계절에 모인 다섯 작가가 귀촌·여행·책방·음식·관계를 솔직하게 기록한 5인 5색 에세이집입니다.
본 도서에서 재미와 감동, 따듯한 통찰이 담긴 다른 챕터들도 함께 만나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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