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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신 Mar 14. 2022

어쩌다 보니 계속 쓰는 일기

다이어리의 공백을 보며 괴로워하지만 그래도 계속 쓰게 되는 일기


일기는 현재의 나를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죠. 

- 조경국,「일기 쓰는 법」, 유유 출판사, p. 12
  

 나는 초등학교 방학 숙제로 시작해 중, 고등학교 때는 싸이월드 다이어리, 성인이 되어서는 블로그와 종이 다이어리에 쓰고 있다. 자발적으로 일기를 쓰고 있는 지금, 일기장을 대나무숲처럼 이용한다. 서러울 때, 화가 날 때, 외로울 때, 미울 때-보통 이 모든 게 마음속에서 한꺼번에 일어난다- 마음속 찌꺼기를 토해내듯 썼다. 그래서 날마다 쓰는 기록이 아닌 간헐적으로 기록 하고 있다. 

 

 새해마다 다짐하는 ‘꾸준히 다이어리 쓰기’. 1월은 새해의 시작이니 먼슬리는 귀여운 스티커와 정갈한 글씨로 채워나간다. 일기는 비어 있는 날 없이 꾸준히 쓰려고 한다. 영수증, 표, 팸플릿 등을 다이어리 여백에 붙여 둔다. 이렇게 2월까지 열심히 쓰고 나면 다이어리 번 아웃이 와버린다. 그렇게 다이어리는 뺨에 닿는 공기가 차가워지고, 주머니 속에 이천 원을 필수로 넣어 다녀야 할 계절에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지금 다이어리를 야무지게 쓰고 싶은데  3월 이후로 텅 비어있는 다이어리를 견딜 수가 없다. 잠깐 불편해하다 빠르게 결정한다.

 

좋아, 다시 시작하는 거야!

 인터넷에서 야무지게 쓸 다이어리를 구경한다. 장바구니에 10개씩 담아두고도 나에게 더 잘 맞는 다어이리는 없을지 찾고 또 찾는다. 너무 열심히 찾아 눈이랑 머리가 아프다. 그렇게 고심해서 고른 다이어리를 구매하고 조심스레 앞표지를 연다. 그다음 반을 펼쳐서 꾹꾹 누르고 뒷표지도 펼친다. 다이어리가 잘 펼쳐질 수 있도록 길을 들인다. 그리고 먼슬리에 날짜를 적는다. 먼슬리에 날짜가 안 적혀 있는 걸 선호한다. 왜냐면 미래의 나를 믿을 수 없다. 날짜를 적기 전 연습장에 다양한 펜을 써보고 다이어리에 가장 적합한 펜을 고른다. 그다음 글씨 연습을 한 후 먼슬리 숫자를 쓴다. 위클리 칸에는 보통 다이어리 산 소감에 관해 쓴다. ‘다이어리를 샀다. 이번에는 꼬박꼬박 써야지!’라는 형식적인 멘트를 쓴다. 빈 페이지에는 좋아하는 문장 필사를 하거나, 휴대폰에 캡쳐해둔 좋았던 말들을 옮겨 쓴다. 글만 있으면 심심하니 스티커도 붙여둔다. 이 열정이 꾸준하면 좋을 텐데 얼마 못 가 먼슬리나 위클리를 일주일에 한 번 몰아 쓰기 시작한다. 꾸준히 일기를 쓰지 않아 다이어리에 공백에 스트레스를 받지만 일기 쓰기 포기 못해.

 

 이 스트레스를 사소하게 만드는 힘은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읽을 때 언제든 그 시간으로 소환할 수 있다. 그리고 재밌다. 어릴 땐 고민과 걱정이 있으면 바로바로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한 살씩 먹으면서 1인분인 내 삶도 만만치 않다는 걸 절실히 느끼고 있다. 그래서 날 것의 고민을 가까운 사람에게 바로 나누기가 조심스럽다. 날 것의 감정을 검열 없이 떠오르는 대로 쏟아 내기에 일기만 한 게 없다. 당장 일이 해결되지 않지만,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리고 다시 해볼 힘이 생긴다. 언어에는 힘이 있다. 당장은 어렵고 힘들지만, 원하는 모습을 적어나가면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더라도 비슷하게 이뤄진다. 앞에 이유도 좋지만 계속해서 쓸 수 있는 또 다른 강력한 이유, 일기 쓰는 내 모습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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