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선생님들께
장마가 시작되면서 한여름 무더위가 더해집니다. 그럼에도 여름이 좋은 이유는, 여름을 준비하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문 앞에는 언제라도 바로 쓸 수 있게 좋아하는 우산, 색이 같은 장화를 꺼내놓습니다. 장화만 신으면 거센 비가 와도 끄떡없을 것 같습니다. 첨벙, 깊은 물을 밟아도 장화 속 두 발은 여전히 뽀송뽀송할 테고요. 그 순간을 떠올리면 배시시 웃음이 납니다.
여름을 기분 좋게 하는 것은 또 있습니다. 때마다 갖은 재료로 시원한 화채를 만들어 즐기는 일이지요. 올해 첫 화채는 수박화채입니다. 여름의 진짜 시작을 알리듯 장대비가 쏟아지던 유월의 마지막 날, 벗들과 화채를 만들었습니다. 수박 안쪽 과육을 먹을 만큼 덜어내고, 오이와 방울토마토를 알맞게 썬 다음 후르츠를 얹습니다. 여기에 시원함을 더하는 얼음과 탄산수를 섞어주면 더위를 잠시 잊고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화채는 먹을 때도 좋지만, 만드는 과정도 좋습니다. 내일 혹은 나중에 라는 계획을 쌓고 기다리기에는 인생은 너무 짧아요.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그래, 하자.”라고 마음먹을 때 얼마든지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습니다.
화채에는 ‘우리’라는 마음이 배입니다. 그이는 수박을 좋아하지. 말캉한 젤리도 좋아하니 넣어볼까. 상큼하게 오이도 잘게 썰어 넣어보자. 우리만의 은밀한 보물창고처럼 화채를 만들다 보면 작은 마음들이 어느새 큰 마음을 이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벗들과 함께 화채 한 그릇을 나눠 먹으며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더위는 무색하게 사라지고 여름의 향기와 다정한 마음으로 가득한 저녁이 스르르 지나갑니다.
화채 한 그릇 덕분에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지금 여기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있군요. 서둘러 지나가는 여름 속에서도 하나하나 모인 온기 속에 작은 빛들이 반짝이고 있습니다. 빛이 하나둘 모여 묵직하게 마음을 데워줍니다. 그 마음으로 다시 지금을 살아갑니다.
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