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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Nov 01. 2024

포근한 밤라떼처럼

사랑하는 선생님들께


오랜만이지요. 어느새 계절이 바뀌었군요. 저는 첫눈을 기다리고 있고요. 여차 하면 차가워지는 손을 비비며 겨울 장갑을 찾습니다. 옷장 깊숙이 개켜 있던 장갑을 꺼내며 겨울에게 첫인사를 건넵니다.



오랜만에 들른 찻집은 겨울 온기로 그득합니다. 풍미 깊은 차향과 김 서린 창문 몇 개. 창문 밖으로는 곧 눈이 올 것 같은 날씨. 따뜻함과 차가움이 공존하는 그곳에서 우리는 밤라떼를 마시며 수업을 이어갑니다.


포근한 밤라떼가 주는 보드랍고 따뜻한 느낌은 마음공부와 비슷합니다. 마음공부는, 괴로움을 회피하거나 완전히 버리는 게 아닙니다. 다만 그것이 무엇이든 당신을 통과해 지나가도록 지켜봐 주고, 기다려 줄 뿐이지요. 보드랍고 따뜻하게.


이를 위해서는 괴로움에 습관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매 순간 세상의 일시적 상황에 좌우되지 않고, 내면의 전환을 선택할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전환의 문 앞에 서 있을 때조차 의구심을 갖습니다. ‘이것이 과연 나에게 새로운 삶을 가져다줄까?’ ‘이 선택이 옳은 것인가?’ ‘전처럼 살아도 되지 않을까?’


그러나 그 생각 또한 멈춰 보고 깊이 바라봐 볼까요? 생각으로 가득 찬 마음은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떠안게 됩니다. 우리는 두려운 채로 매일을 살아가게 되고요. 그런데 우리는 두려움 자체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것일 뿐. 단지 일어나고 변화하는 현상일 뿐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저 허용해 주고, 습관적으로 반응하지 않으면 돼요. 반응하는 순간, 우리는 그것에 휩쓸리게 되니까요.


오늘 공부의 핵심은 “모든 길을 찬찬히 깊게 보라.”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 인연, 상황, 조건에 순간적으로 반응하지 말고, 찬찬히 들숨과 날숨을 내쉬듯 바라보는 거예요. 마음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보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이유 없는 행복을 느끼기도 합니다.


지금 눈앞에 주어진 차 한잔. 밤라떼의 포근함. 보드랍고 따뜻한 느낌. 바람 없이 잔잔한 겨울 오후.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것은 꽤 강력합니다. 우리가 지금을 찬찬히 느끼는 동안 괴로움은 어느덧 멈춰지고, 우리 마음은 괴로움이 아닌 지금 여기에 오롯이 머무를 수 있었으니까요.


매일 내게 주어진 길은, 좋은 길 혹은 나쁜 길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나를 변환시키고 어루만져줄 여정입니다. 그 길을 찬찬히 숨 쉬듯 걸어가 보세요. 걷다가 발이 아프면 잠시 쉬어가기도 하고, 의자에 앉아 사색을 즐기셔도 괜찮습니다. 다만 내게 주어진 길이니 찬찬히 끝까지 가 보는 거예요. 조급해하지 말고, 찬찬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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