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삶에 늘 깃들어 있지

by 고요

사랑하는 선생님들께


저녁 5시가 되면 옆집 할머니의 도마질 소리가 정겹습니다. 시장에서 야채장사를 하시는 할머니는 새벽에 일을 나가셨다가 오후 3시쯤 집으로 돌아오시지요. 아들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올 무렵이면, 할머니는 집 바깥에 차린 간이 주방에 요리할 것을 준비하며 기다립니다. 그러다 아들이 돌아오면 ‘수고했다’ 한 마디를 무심히 읊조립니다. 거실 창문으로 들려오는 정겨운 소리에 귀 기울이며 저녁식사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느껴봅니다.


저녁식사란 그런 것 같아요. 온종일 고생하고 돌아온 이에게 ‘수고했다’ 한마디를 전하기 위한 연결고리 같은 것. 준비한 밥을 함께 나누어 먹으며 하루가 저물어가는 시간을 만끽하는 것. 부드럽고 따스한 것을 마음에 채우고 그 양분으로 다시 새 하루를 살아갈 준비를 하는 것.


사랑하는 이와의 추억은, 언제나 따스한 빛에 싸여 있는 것 같습니다. 되돌아볼 때마다 마음이 풍요로워지지요. 풍요로운 마음은 일상을 살아갈 힘이 되어줍니다. 더 많이 포용하고 더 넓게 나아갈 수 있게 해 주지요.



마음공부는, 일상의 풍요로움을 발견하는 공부입니다. 풍요로운 마음을 찾거나 채우려 애쓰는 게 아니라,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을 통해 어떻게 만들어가는지에 대한 공부이지요. 요즘 선생님들과 나누는 화두 ‘죽음’은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명료하게 답해 줍니다. 죽음의 순간은 삶에 늘 함께 깃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죽음의 그림자를 막으려고 애쓰거나 부정하려 하지요. 하지만 죽음은 나와 싸우거나 해결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얼마나 가치 있게 살고 있는지 알기 위한 방편이지요. 이 사실을 알면, 우리는 일상의 순간을 좀 더 소중히 여기며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최선을 다하는 삶은, 행복으로 이어지고 우리는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는 게 아니라, 사랑으로 수놓아 이어가 보세요. 어떻게 하면 서로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어줄 수 있을까, 더 잘 사랑할 수 있을까 고민해 보세요. 그러한 소중한 고민이 쌓여 아름다운 날들을 만들어 갈 힘이 되어줄 테니까요.


또 하루가 흘러갑니다. 매일 고요하게 드리는 기도와 하루 두 끼 정도의 정갈한 식사를 토대로 이어지는 작은 울림들. 선생님들과의 깊은 대화. 뒷산의 여름풀. 어스름해질 때면 나와 골목을 어슬렁거리는 동네 고양이들. 집 앞에서 벨을 누르기 전에 “은수야” 하고 부르는 다정한 목소리.


오늘도 부드럽고 따스한 것들이 마음에 많이 채워졌습니다. 마음의 저장고에 잘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하나씩 꺼내 보며 슬며시 미소 짓겠지요. 그 순간을 생각하니 따스한 덩어리 하나를 안고 있는 기분입니다. 참 포근하네요.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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