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요 10시간전

죽음은 삶에 늘 깃들어 있지

사랑하는 선생님들께


저녁 5시가 되면 옆집 할머니의 도마질 소리가 정겹습니다. 시장에서 야채장사를 하시는 할머니는 새벽에 일을 나가셨다가 오후 3시쯤 집으로 돌아오시지요. 아들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올 무렵이면, 할머니는 집 바깥에 차린 간이 주방에 요리할 것을 준비하며 기다립니다. 그러다 아들이 돌아오면 ‘수고했다’ 한 마디를 무심히 읊조립니다. 거실 창문으로 들려오는 정겨운 소리에 귀 기울이며 저녁식사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느껴봅니다.


저녁식사란 그런 것 같아요. 온종일 고생하고 돌아온 이에게 ‘수고했다’ 한마디를 전하기 위한 연결고리 같은 것. 준비한 밥을 함께 나누어 먹으며 하루가 저물어가는 시간을 만끽하는 것. 부드럽고 따스한 것을 마음에 채우고 그 양분으로 다시 새 하루를 살아갈 준비를 하는 것.


사랑하는 이와의 추억은, 언제나 따스한 빛에 싸여 있는 것 같습니다. 되돌아볼 때마다 마음이 풍요로워지지요. 풍요로운 마음은 일상을 살아갈 힘이 되어줍니다. 더 많이 포용하고 더 넓게 나아갈 수 있게 해 주지요.



마음공부는, 일상의 풍요로움을 발견하는 공부입니다. 풍요로운 마음을 찾거나 채우려 애쓰는 게 아니라,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을 통해 어떻게 만들어가는지에 대한 공부이지요. 요즘 선생님들과 나누는 화두 ‘죽음’은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명료하게 답해 줍니다. 죽음의 순간은 삶에 늘 함께 깃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죽음의 그림자를 막으려고 애쓰거나 부정하려 하지요. 하지만 죽음은 나와 싸우거나 해결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얼마나 가치 있게 살고 있는지 알기 위한 방편이지요. 이 사실을 알면, 우리는 일상의 순간을 좀 더 소중히 여기며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최선을 다하는 삶은, 행복으로 이어지고 우리는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는 게 아니라, 사랑으로 수놓아 이어가 보세요. 어떻게 하면 서로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어줄 수 있을까, 더 잘 사랑할 수 있을까 고민해 보세요. 그러한 소중한 고민이 쌓여 아름다운 날들을 만들어 갈 힘이 되어줄 테니까요.


또 하루가 흘러갑니다. 매일 고요하게 드리는 기도와 하루 두 끼 정도의 정갈한 식사를 토대로 이어지는 작은 울림들. 선생님들과의 깊은 대화. 뒷산의 여름풀. 어스름해질 때면 나와 골목을 어슬렁거리는 동네 고양이들. 집 앞에서 벨을 누르기 전에 “은수야” 하고 부르는 다정한 목소리.


오늘도 부드럽고 따스한 것들이 마음에 많이 채워졌습니다. 마음의 저장고에 잘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하나씩 꺼내 보며 슬며시 미소 짓겠지요. 그 순간을 생각하니 따스한 덩어리 하나를 안고 있는 기분입니다. 참 포근하네요.


평화:)

이전 12화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말아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