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혼자 집에 있던 밤
노부부가 다짜고짜 집에 찾아왔었다
꽤 늦은 밤시간이었다
“000동 사는 사람인데요. 저희 집 자전거 훔쳐갔어요”
벨을 누르고는
본인들의 자전거를 훔친 사람이
우리 집으로 들어갔다며
CCTV 속 한 장면을 프린트한 사진을 보여준다
상황 판단을 할 겨를도 없이
그 사람들은 다짜고짜 거실에 앉아 이것저것 따져댔다
엄마는 정말 혹시나 내 자식이 그런 건가 싶어
울상을 하며 죄송하다는 말을 연거푸 내뱉었다
무릎을 꿇는 듯한 자세였나
연락을 받고 급히 집으로 오자마자 본 광경에
열이 받아 눈이 돌았다
사진을 보니
깡 마른 남자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몇 층인지도 모를 곳에 내리는 모습이 보인다
마른 사람도
체구가 작은 사람도 없는 집안에
이딴 사진을 들이밀며
이 밤중에 찾아와 도둑취급하니
육두문자가 육성으로 튀어나왔다
경찰을 부를 테니 기다리라는 말에
이제야 아니다 싶었는지
주섬주섬 옷을 챙겨 문을 나선다
반말로 씩씩거리며 그 노부부를 멈춰 세우려 하는 나를
엄마는 작정하고 뜯어말렸다
누구시냐,
몇 동 몇 호 사람이냐,
우리가 도둑이 아니면 법적으로 어떻게 책임질 거냐,
이 늦은 시간은 무례하니 낮에 다시 와라,
하며 돌려보내야 했는데
지레 겁먹고 문을 열어줬을 엄마의 모습이 그려졌다
분하고 억울해서 며칠 잠을 제대로 못 잤다
그 사람들이 사고라도 났으면 좋겠다는
그런 악한 마음까지 품었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이사를 갔으려나,
아님 정말 내 못된 마음처럼 되었으려나,
하던 찰나에
정말 우연하게도 동네 공원 산책길에 마주쳤다
오래전 일어난 일에
얼굴 한번 제대로 본 적 없었지만
그때 그 할머니라는 걸 직감으로 알았다
절뚝거리는 다리
경직된듯한 손
삐뚤어져 뒤틀린 입
좋지 않은 안색
째려보는 듯한 눈
어떤 편안함도 들지 않는 모습이었다
누군가에게 내던지듯 팽개친 상처는
똑같은 길을 다시 걸어 제자리로 되돌아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