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난 지 일주일도 안된 사람이 아빠 직업을 묻는다
‘이 관계에서 대체 우리 아빠 직업이 왜 필요할까‘
하는 불쾌한 마음을 감추고
조금 더 만나면 이야기해 주겠다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질문을 한다
정말 궁금했나 보다
”아버지는 무슨 일 하셔?“
“그런데 그게 왜 궁금한거야?“
“내가 만나는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궁금해“
“그게 우리 아빠 직업이랑 무슨 상관이야?“
“아무래도 영향이 있지 않을까?“
“그냥 나를 만나보면 더 잘 알 수 있는 거 아냐?”
혼기가 꽉 들어찬 만큼 계산이 앞섰을 거다
알지만 이해하기 싫었다
나에 대한 호기심이란 핑계로 감추기엔
얇고 투명한 필름지로 가리고 있는 속내가
보고 싶지 않아도 보였다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쉽사리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을
툭- 하고 내뱉는 게 어려워 꿀꺽 삼킨다
한 단어로 표현되는 누군가의 삶,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수많은 평가들,
그 평가에 기반해 형성되는 고정관념들
난 그걸 녹일 자신이 없다
아파트 브랜드에 따라 친구가 갈리는 시대라고 한다
어렸을 땐 인지하지 못하고 자란 불공정과
당연하게 누리던 혜택들이
이제는 입방아에 오르고 보도가 될 정도라면
교실 안 누군가가 느낄 온도는 얼마나 차가울까
그때의 내 답변은 ‘무응답’이었고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헤어졌다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했던 무언가는
시간 흐름 따라
옳지 않은 것이 되기도, 틀린 것이 되기도 한다
그때의 무응답이 적절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틀리진 않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