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이라고 찾아간 식당에서
배가 안 고프다며
메인 음식과 사이드 메뉴 하나를 시켜 나눠먹자고 한다
평소 같았으면 그러자 하고도 남았을 텐데
그간 쌓여온 게 터졌던 건지
그러지 좀 말라고 짜증을 내고는
제일 비싼 메뉴 두 개를 시켰다
남김없이 먹는 모습에 속상하면서도 화가 난다
데이트라기보다 배 채우는 식사를 줄곧 했다
한 그릇 5천 원 하는 국밥집을 자주 가고
고기라도 먹는 날엔
한 점이라도 더 먹으라고 속도를 늦추고
메인 메뉴 대신 밑반찬과 밥을 먹었다
너 한번, 나 한번
그렇게 돌아가는 암묵적인 계산 순서에
‘이번엔 내 차례 인가’ 하며 주문을 망설이는 모습,
다 먹고 나서 돈이 없다고 말하는 모습,
5만 원 언저리쯤의 가격이 나오면 쭈뼛대는 모습,
하나라도 더 먹으려 속도를 내는 모습을 보며
동정인지 사랑인지 모를 이해심을 키워나갔다
검은 봉지에 덜렁 화분 하나를 담아
생일선물이라 내밀고
무한리필 식당에서 생일 축하를 해준다
미역국도, 편지도 없지만
더치페이는 살아있는 나의 생일 밥상
누구를 위한 건지 모르겠는 일정들과
마지막 인심으로 케이크 값만 제외한 정산 내역을 보고
한숨과 함께 현타가 찾아온다
‘시간 지나면 추억이겠지’ 했던 날들은
막상 시간이 지나도 추억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옅어지고 흐려져도 미화되지 않는 일도 있다는 걸
그때 배웠다
내 현실과 상관없이
상대방 주머니 사정을 걱정하고
가끔은 되도 않는 이유로 돈을 쥐어줬다
배려가 커질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상대방의 에너지들은 줄어들었고
언젠가부터 계산이 앞서기 시작했다
‘또 주려나?’ 하는 그 속마음을 훤히 읽었지만
박애주의 콤플렉스라도 걸렸던 건지
한껏 모은 정으로 모든 걸 품었다
같이 있는 게 중요하지
뭘 하고, 뭘 먹고, 어딜 가는 게 중요해
그런데
친구들 덜 만나고, 덜 먹고, 덜 사면서
데이트 비용을 마련하던 나는
점점 머리 굴리는 상대방을 보면서
뒤에서 치졸한 생각이나 하는 멍청한 사람이 되어갔고
아무 날도 아닌 것처럼 흘러가는 기념일도
남들 다 한다는
특별한 날의 편지도, 깜짝 선물도, 어설픈 이벤트도
괜찮다는 말에 다 녹여 흘려보냈다
정말로,
단 한 번도 괜찮지 않았지만
뒤늦게 던지는 미안하다는 말이 듣기 더 듣기 싫었다
계속 스스로의 값어치를 낮추는 느낌이 들었지만
순수함이 그걸 이기려 들었다
하지만
돈에 엉켜버린 시간들은 이별을 부추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