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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대여성 Oct 25. 2020

나는 카톡 잘 안 봐







연락 문제로 은근히 감정을 상하게 하는 유형의 친구가 있었다. 메시지 답장 간격이 기본 하루나 이틀. 나름 빨리 답장이 온다고 해도 6~8시간 텀이다. 본인이 먼저 연락을 해놓고 늘 이런 식이었다. 대체 왜 이런 식의 연락을 하는 걸까? 결혼식에 부를 사람이 필요해서 인맥관리 중인 건가?


그래 연락을 먼저 하긴 했지만 갑자기 정신이 없어서 깜빡했을 거야. 바빴겠지. 개인 사정이 있었을 거야.라고 생각하기엔 보통의 사람과 별 다를 것 없이 사는 친구였다.


이틀 뒤에 답장을 하면서도 ‘답이 너무 늦어서 미안해’라는 식의 말도 없다. 뒤늦게 답장을 하며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이어갈 때면 이미 생명을 다한 대화를 애써 불러일으키는 것 같았다. 유효기간이 끝나버려 더 이상 생동감이 없는 대화. 흥미도 관심도 생길 리 없다


그 친구는 내가 그 정도의 시간을 기다려서 답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느끼는 태도였다. 어쩌다 한 번이면 충분히 이해하지만 매번 이런 식이니 나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느껴졌고 마음속으로 관계에 대한 선을 그을 수밖에 없었다









둘이 오랜만에 만나 식사를 하던 날이었다. 휴대폰 화면이 보이도록 테이블 위에 올려둔 뒤, 실시간으로 알림 팝업 창에 미리 보기로 뜨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읽고 있는 친구를 봤다


그렇게 메시지를 눈팅하던 친구는 핸드폰을 집어 바로 답장을 할 때도 있었고, 그냥 화면 창을 꺼버릴 때도 있었다


아. 이런 식이었구나









은연중에 본인은 늘 카톡을 잘 안 본다는 뉘앙스로 이야기하던 친구였다


직접 확인해 보니 카톡을 잘 안 보는 게 아니고 가려서 보는 거였다. 생각해 보니 흥미 돋는 주제의 이야기를 하거나 사진, 영상을 보내면 그 친구의 답 속도는 대부분 빨랐다


만날 때도, 만나지 않을 때도 상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친구에게 조금 유치하지만 똑같이 행동해 보기로 했다


금요일에 연락 온 것에 대한 답은 무조건 주말 지나 월요일에 하기, 연락이 온 걸 알아도 최소 4~5시간 뒤에 답장하기, 보통 연락을 잘 주고받지 않는 어중간한 시간(새벽 2시~7시)에 답하기. 생각만 해도 짜증 나는 것들을 일부러 했다









그러자 정말 웃기고 놀랍게도 그 친구가 변했다. 변한 모습이 웃겼던 이유는 이런 유치한 방법이 나름 효과가 있어서였고, 놀라웠던 이유는 이런 행동이 기분 나쁜 것임을 알고도 했구나 싶어서였다


변하는 단계도 있었다


첫 단계는 안 그러던 내가 답을 늦게 하는 것이 의아했는지 매번 카톡 메시지 마무리를 사진이나 이모티콘으로 하는 것이었다. 궁금증을 자극시켜 빨리 읽게 하기 위한 수법이었을 거다. 이 말은 곧 그 친구는 사진이나 이모티콘으로 마무리된 카톡 메시지는 빨리 확인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일부러 더 늦게 답장했다. 이런 야트막한 수법은 나에게 먹히지 않아


다음 단계는 자꾸 나에게 무언가를 권하거나 묻는 것이었다. 이런 거 하면 좋을 것 같아, 같이 뭘 하자, 어디 같이 가자, 이런 거 어때? 와 같이 메시지를 주고받는 텀이 빠를수록 좋은 대화 주제들을 꼽았다


마지막은 칼답을 하는 것이었다. 와 칼답? 내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부담스러운 칼답이었다. 대화의 신선도가 떨어지기 전에 답을 받은 것이 오랜만이라 어색하기까지 했다









이후 친구는 이전에 하던 것처럼 맥락이 없는 주제로 뜬금없이 연락하고는 잠수 아닌 잠수를 타는 일이 줄었다


답장을 좀 늦게 한다 싶으면 ‘—때문에 이제 봤다’라며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하기까지 했다. 내 답장이 너무 느리면 가끔은 전화를 걸어왔다. 그것도 모자라 가끔은 연락이 너무 늦었다며 사과를 하기까지 했다









“나 카톡 잘 안 봐(그런데 재밌거나 웃긴 거는 빨리 확인하고 사진이나 이모티콘으로 마무리된 카톡은 궁금해서 돌아버리기 전에 거의 바로 읽는 편이야. 아 내가 필요하면 칼답 해. 왜냐면 난 필요할 때만 사람 찾거든. 그리고 이성이랑은 연락 잘해. 결혼하려면 사람 많이 만나봐야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카톡에서 그냥 차단해 버리면 어떨까.


“너 왜 내 카톡 안 읽어? 일주일 전에 보낸 건데 아직도 1이 그대로더라”라고 물으면 “너 카톡 잘 안 본다길래 그냥 차단했지. 전화하지. 왜?”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난 결국 그 친구와 손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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