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때 일이다
친구가 남자친구와 헤어졌단다
‘왜 뭐 싸웠어??’
‘둘이 안 맞았어?‘
라는 물음에
‘아니 평소처럼 데이트하고 나서 헤어지자고 하던데’
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평소처럼 밥 사주고, 커피 마시고, 영화도 보고
그렇게 데이트를 끝낸 뒤
귀가하는 길에 그만 만나자고 했다는 거다
‘굳이?’
‘카톡이나 전화도 있는데 뭐 좋은 말이라고 만나서 해?’
라는 생각을 했다
20대 초반에는
세상의 중심이 오직 나였으니
타인을 이해하거나 배려하려는 생각을 잘 못했다
나랑 다르면 욕먹어야 했다
우리는
‘나쁜 새끼..‘라며 그 사람을 욕했다
30대 초반이 된 지금,
그때 그 나쁜 새끼가 얼마나 나이스가이였는지 깨닫는다
해봐야 28살 언저리 나이에
군대 다녀오고 대학 졸업하고 직장 잡은 사회초년생
사람들이 흔히 ‘꿈의 직장’이라고 말하는
정말 좋은 대기업에 다니던 그 남자는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나름의 배려를 지니고 있던 거다
이미 너덜해진 붉은 실을 끊으려는 것도
다음 만날 사람을 대기시켜 좋은 것도
온갖 책임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것도 아닌
온전하게 그 사람의 마지막 모습과 진심을
최대한 악의 없이 전했다
좋은 사람인 척, 착한 사람인 척, 밝은 사람인 척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 이미지에 가둬 연기하는 사람들은
시작은 좋지만 끝이 좋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
그간 본성을 참고 억누르느라 쌓인 스트레스들을
끝모습에 터트리고 자멸하곤 했다
한 땀 한 땀 쌓아 올린 첫인상과의 괴리감을 느낄 때
‘아닐 줄 알았는데 또 속았네’ 생각한다
첫인상이 평생 간다는 말은 루머다
첫인상은 항상 배신한다
헤어짐도 만남처럼
마주 보며 하는 인사가 필요하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늙지 않는 건
누군가의 마지막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