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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래 Feb 28. 2020

02. 아이와 함께 24시간

다들 부디 안녕하시길, 두려워하지 않기를,

올해 6살이 된 아이가 한 말 중에 제일 속상한 이야기는 "엄마 오늘 미세먼지는 어때요?"이다.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언제나 놀이터에 들러 동생, 친구들, 언니 오빠들이랑 깔깔거리면서 놀던 나의 어린 날들이 생각난다. 마침 우리 집은 놀이터가 바로 보이는 중간통로 1층 집 이어서 놀이터에서 놀던 친구들은 "아줌마! 물 주세요! 목말라요!!!!"를 종종 외쳤고, 우리 엄마는 베란다 밖으롤 물통과 예쁜 색깔 플라스틱 물컵을 다섯 개씩 넘겨주었다. 지금 같으면 애들이 노느라 모래 다 날려서 집으로 들어온다고 '좋지 않은 집'이라고 얘기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초등학교 5학년이 되도록 나와 내 동생의 친구들은 물론이고 온 동네 어린이들이 모여 노는 시끌복작한 아이들의 장소였다.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면 날씨를 체크하듯 미세먼지 어플을 한 번 보자고 하고, 앱의 아이콘에 따라서 기분이 달라진다. 오늘처럼 아이콘에 하트눈이라도 된 날이면 하원 후에 씽씽이나 자전거를 타거나, 마당(아파트 공원)에 가서 놀기로 약속을 한다.


요 며칠 미세먼지가 없는 맑은 하늘이 참 예쁘다. 이런 날에는 나도 아이 하원 시간보다 30분 정도 일찍 나가서 호수공원을 걷거나 공원 벤치에 나가 멍을 때리기도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린 어제도 오늘도 집콕 중이다.


분명 나는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밖에 나갈 때는 마스크 꼭 쓰고, 들어와서 손 잘 씻으면 돼. 그리고 골고루 잘 먹으면 튼튼해져서 절대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을 거야"라고 하던 엄마였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몇 명 있긴 했지만, 우리가 사는 곳엔 아직 확진자가 없고 집에서도, 유치원에서도 방역을 잘해주고 있다니까 믿으면서 아이를 유치원에 보냈다.


본격적으로 확진자가 늘어나고 결국 지난 금요일에는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도 확진자가 나왔다. 전국의 유치원, 초중고는 휴원과 개학 연기를 결정했고 우린 월요일부터 24시간 함께 지낸다. 다행히도 나는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최근엔 새로운 일을 준비하기 위해서 그마저의 일도 쉬고 있었고 특별히 일정을 조정할 필요가 없었지만 매일 출근해야 하는 엄마 아빠는 비상인 모양이다. 일부 회사에서는 아이 보육을 위한 재택근무 혹은 휴가를 신청할 수 있다고 하지만 아주 일부일 것이고, 절대 불가능한 상황에 놓여있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모든 일상이 무너졌다. 아침에 일어난 아이와 달콤한 아침식사를 하고, 손잡고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요가원에 가서 조용히 차를 마시고, 요가를 하고, 집에 돌아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청소와 설거지, 빨래 등의 집안일을 하고, 낮잠을 자거나 책을 읽고, 혼자 사부작 거리면서 저녁을 준비하던 나의 소중한 일상. 다행히도 아이는 밖에 나가서 노는 것만큼이나 집에서 로봇, 미니카, 블럭(그 외 갖가지 집안 소품과 책, 종이 등등) 등으로 이야기를 만들어서 노는 것을 좋아해서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목요일 오후가 되자 친구들 이름을 하나씩 부르면서 "xx랑 OO가 보고 싶다. 같이 놀면 훨씬 재미있을 텐데"며 "도대체 코로나 바이러스는 언제 없어지는 거야? 19에서 100이 되면 없어지는 거야?"라고 묻는다. 아마 '코로나-19'라고 하는 어른들의 말을 듣고 숫자가 점점 커지면 펑하고 터져 없어진다고 생각했던 걸까?


"오늘의 미세먼지는 어때요?" 보다 더 마음이 아픈 말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언제 없어져요?" 고작 6살 아이의 머릿속에 '바이러스=위험한 것=무서워'라고 입력이 되어버렸다.


겨울 흰 눈이 쌓인 곳에서 썰매를 타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이번 겨울엔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았다. 봄이 되면 예쁘게 꽃이 핀 곳으로 소풍을 가서 예쁜 색깔의 꽃과 새로 난 연둣빛 작은 나뭇잎을 보여주고 싶다. 여름엔 덥지만 시원한 바다에 가서 모래놀이를 하고, 가을엔 작년처럼 단풍잎을 모아 더 멋진 작품을 만들자고 이미 약속했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세상은 따뜻하고 아름다운데 아이가 만나는 세상은 곳곳에 무서운 것들이 있다.


이 모든 것이 공포나 혐오로 각인되지 않기를,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사는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임을, 그저 너와 내가 살아가는 동안 좋은 일과 좋지 않은 일이 반복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길 바라본다. 나의 공포와 불안함이 아이에게 전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머릿속과 마음속 잡념을 떨쳐본다.


나마스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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