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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 Nov 06. 2019

폐허

한 바닥 소설집

'폐허는 우리가 다시 돌아가야 하는 근원을 제공하며, 우리로 하여금 무의의 상태로 들어가 그 일부로 느끼게 한다. - 존 B. 잭슨, 폐허의 풍경'



평소와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형과 나는 식탁에 앉아 시리얼에 우유를 부어 한 그릇씩 먹고 있었다.


- 토스트 먹을래?

- 그럴까?


형이 자리에서 일어나 빵 봉지를 열었다.


- 껍데기? 3분?


반듯하게 썰어진 식빵의 맨 앞부분을 형은 질기다고 좋아하지 않았고 나는 바삭하게 구우면 제일 맛있는 부분이라고 우겼다. 실은 나도 질겨서 좋아하지 않았지만, 형이 좋아하지 않는 것을 나는 좋아해야 할 것 만 같았다. 형은 딱 3분 타이밍을 맞춰 굽는 걸 좋아했고, 나는 대부분 따랐다. 하지만 형이 없을 때에는 3분에 맞춰 놓고 1분쯤 남았을 때 정지 버튼을 누르곤 했다. 3분에 맞춰 구운 빵은 식으면 금세 딱딱해져서 보통 시리얼을 다 먹은 후 남은 우유와 함께 빵을 먹던 나에게 3분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 시간이었다.


- 아니, 2분 만!


그날, 평소와 달랐던 점이라면 내가 2분을 외쳤고, 형이 끄덕였다는 것 하나였다. 맨 앞 장부터 차례로 두 장의 식빵이 흰색 토스터기에 들어갔다.


- 그거 알아? 이런 전열기는 예열 시간이 있어서 굽기엔 3분이 딱 좋은 거야.

- 식으면 딱딱해진다고.

- 식어서 맛있는 게 뭐가 있냐? 처음에 따끈할 때 먹어야지. 기다리면…….


마침 형의 입안에 토스트가 들어가는 순간이어서 말이 끊겼다고만 생각했다.

그날의 아침을 떠올릴 때면, 형의 뒷말이 궁금했다. 기다리면……. 식어버린 빵이 다시 촉촉해질 리 없잖아.


- 설거지는 내가 할 테니까, 학교 잘 갔다 와. 졸지 말고.

- 오오, 오케이.


보통 때와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형과의 아침 식탁에서 나는 어떤 이물질도 발견할 수 없었다. 삶의 이물질, 균열이 일어나는 지점, 작은 틈, 혹은 갑자기 눈 속으로 날아 들어온 벌레, 식빵 모서리의 푸른 균, 하얀 곰팡이.

그리고 그 날, 형은 돌아오지 않았다.

집 안에 있는 형의 물건은 그대로였다. 옷가지 하나, 책 한 권도 사라지지 않았고 오직 형 만 사라진 그 날.



- 준희, 비행기 탔어요.


사실 형이 사라졌다는 것을 그날 바로 안 것은 아니었다. 형은 스무 살이었고, 불 꺼진 형의 방문 옆을 지나치며 스무 살이 하는 놀이를 상상했다. 나도 스무 살이 되면 형처럼 늦도록 전화 없이 친구들과 술을 마실 수 있겠지.

새벽녘에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오던 참에 불 꺼진 안방 깊숙한 곳에서 속삭이는 낮은 음의 어머니 목소리를 들었다. 형은 밤 비행기를 탔고, 아홉 시간쯤 걸릴 거라고. 아홉 시간, 여기에서 그만큼 떨어진 곳은 어딜까? 열일곱의 나는 아는 게 많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형의 친아버지도, 형의 할머니도 알지 못했다. 형은 또 다른 형제가 있는지, 형은 왜 우리 형이 되었는지도. 형에 대해 아는 것은 나와 같은 혈액형과 어깨를 부딪칠 때 맞닿았던 단단한 뼈와 온기, 내 손에 겹치던 형의 가늘고 얇은 손바닥의 감촉.

나는 체구에 비해 작은 손을 가졌고, 그 때문에 농구공이나 야구공 같은 걸 쥘 때 친구들에게 놀림받기도 했는데, 키가 자라면 손도 커질 거라 당연히 믿고 있었다. 그래서 형과 뒤통수를 마주 대고 키를 잴 때면 손 크기도 같이 재곤 했다. 대여섯 살 이후로 형과 손을 잡고 다닌 적은 없었지만 그런 이유로 나는 꽤 오래 형의 손을 잊지 않을 수 있었다. 형의 손은 어머니를 닮았다. 가늘고 긴 손가락과 얇은 손바닥.

형의 손은 하나의 사건으로 기억되기도 했다. 봄이었고, 그날 어머니는 무슨 일인지 우리 둘을 모두 데리고 시장에 갔다. 평소에는 나만 데리고 가서 어머니가 장을 볼 동안 혼자 지루하게 시간을 견뎠던 터라, 형과 둘이 간다는 생각에 엄청 신이 났다. 머리 위 나무에서 분홍 꽃잎이 하나 둘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형의 손을 잡고 앞서 가는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보며 걸었다. 어머니는 시장 입구 첫 가게에 멈춰 섰고 주인아주머니에게 생선이며 콩나물 등을 담아 달라 했다. 그곳은 어머니의 단골 가게여서 나는 몇 번 그 옆에 서서 자두나 옥수수 등을 얻어먹은 적이 있었다. 아주머니는 나를 보고 내 옆의 형을 보더니 대뜸, ‘이 아이는 처음 보네? 안 닮은 걸 보니 친형제는 아닌 것 같고, 친척이니?’라고 물었다. 형제냐고 물었을 법도 한데, 그때 아주머니는 뭘 봤길래 우리를 사촌지간으로 여긴 건지 모르겠다. 나는 내 손을 쥐고 있던 형의 손이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형은 조금 떨고 있었다. 손이 차가웠다. 나는 잘 쥐어지지 않는 형의 손을 꽉 잡고 그보다 더 큰 힘으로 소리쳤다.


“내 형이에요, 우리 형이라고요!”


그리고 울었다. 형의 손을 놓칠까 봐 눈물을 닦지도 못하고, 아줌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우리 형인데,라고 중얼대며. 어머니가 계산을 마칠 때까지, 주인아주머니가 미안해하며 연신 사과를 하고 내 주머니와 형 주머니에 토마토를 하나씩 넣어줄 때까지 씩씩거리며 울었다. 울면서도 형의 손을, 힘을 주지 않는 형의 손을 움켜쥐었다.

어머니는 그때 어떤 표정도 없이 우는 나와 침묵하는 형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우리 둘 다 목욕탕에 밀어 넣고 욕조에 물을 받았다. 형은 여전히 말이 없었고, 나는 조금 더 훌쩍 대다 멈췄다. 한참을 탕 안에서 놀다 나온 우리는 로션을 바르려고 어머니 앞에 서 있었다. 어머니는 쪼글쪼글 물에 불은 형의 손바닥 위에 로션을 덜어주며 '손까지 똑 닮을 건 뭐니?'라고 했다. 형은 재빨리 손을 허리 뒤로 감췄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너는.

형은 어머니의 첫 아이이자, 실패로 끝난 첫 결혼의 흔적이었다.  처음엔 친 아버지와 지냈는데, 하필이면 어머니를 꼭 빼닮아서 형의 친가에서 환영받지 못한 채로 어머니에게 보내졌다. 어머니는 재혼했고, 성(姓)만큼은 포기하지 않은 형의 친가 때문에 우리는 성이 다른 채로 자랐다. 나는 이 씨였고, 형은 최 씨였다.     

형이 사라지고 한 달쯤 후, 엽서 한 장을 받았다. 발신인 최준희, 수신인 이재윤. 내 앞으로 보낸 형의 엽서였다.



나는 지금 몰락한 제국의 옛 성터에 앉아있어. 도시가 번성하는 수 천년 동안 이 터전은 왜 밀어내지 않았을까? 이 폐허 입구 돌 더미에 앉아서 끝없이 들고 나는 사람들을 본다. 그들은 잡초가 무성한 돌무덤을 사진으로 남기고 서로를 찍고 찍으며 또 무엇을 남기고 있어. 건물의 무너진 잔해 속, 세월이 지나고 흩어진 시간들 속에서 나와 너를 떠올렸어. 어머니. 우리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어머니의 영토에서 이런 폐허였을 거야. 지나치고 외면하고 싶은 땅 말이지. 그러나 도시는 재건되고, 사람들은 폐허 더미를 딛고 살아간다. 재윤아, 나는 이제야 나로 살 수 있을 것 같아. 돌아가지 못해 미안해. 하지만 보고 싶다.



폐허 없이 도시를 말할 순 없다는 걸 어머니는 정말 몰랐을까. 형이 사라진 후로 나는 내내 형을 생각한다. 형과 폐허와 형이 찾아간 근원. 나는 여전히 아는 게 많지 않고, 시장 길에서 움켜줬던 형의 손과 감촉만을 복기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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